이육사. 李陸史 (1904.5.18~1944.1.16)
경북 안동 도산면 출생. 본명은 이원록(李源祿) 또는 이원삼(李源三). 한학을 수학하다가 도산공립보통학교에 진학하여 신학문을 배움.1925년 의열단에 가입, 1927년 10월 18일 장진홍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 이때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받은 수인 번호 '264'의 음을 따 필명이 이육사(二六四'에서 나왔으며, 나중에 이육사(李戮史), 이육사(李陸史)로 고침. 또다른 필명으로 이활(李活)이 있음. 문단 등단 시기는《조선일보》에『말』(1930)을 발표하여 문단 등단. 시인부락, 자오선 동인으로 작품도 발표. 1932년 6월 초 중국 북경에서 만국빈의사에서 노신을 만나, 동양의 정세를 논하다 노신이 사망하자 조선일보에 추도문을 게재하고 그의 작품 《고향》을 번역하여 국내에 소개. 1943년 국내에서 체포되어 베이징으로 압송, 1944년 1월 16일 구금 중에 사망. 유고시집으로 《육사시집》(1946)이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