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종 식
"물처럼 그려라"
내게 수채화를 가르치던 K선생은 우리들 등뒤를 서성이며 말하곤 했다.
'삶도 그러해야 하겠지' 나는 생각하곤 했지만,
삶도 그림도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일상은 혼탁했으며, 열기로 펄펄 끓었다.
그 열기로 나는 무엇을 이루어 냈던가?
이윽고 가을이 왔으며 삶이란 열기로 익는게 아니라는걸 알게 될 즈음,
나는 내가 너무 늦게 출발점에 도착했음 또한 알게 되었고, 하여...... 혼돈의 안개속에 갖힌듯 허우적이곤 했다.
안개속에서 어느덧 나는 나목이 되어있었고, 한 잎 떨어져 내리는 꽃같은 눈발들이 시린 발등을 덮어주었다.
비로소 나는 온기를 느끼게 되었고 가시 대신 연두색 잎을 내밀어 보이는 작은 나무인 나를 볼 수 있었다.
사랑도 소망도 다 지나가게 되어있지만, 슬픔과 좌절 또한 지나간다.
시린 손을 마주 비비며, "이게 끝이 아니야"라고 절규하던 나의 손은 지금, 사라져가는것들에게는 잘 가라고,
다가오는것들에겐 어서 오라고. 다정히 인사할 수 있게 되었다.
When I dream- Carol Kidd
글:오래 된 가을중에서.... 예원
그림 : 신종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