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루즈 로트렉 - 낮은 키 그러나 따듯한 눈
1890년 11월 어느 날, 이른 저녁이었습니다. 파리 몽마르뜨에 있는 물랭루즈 홀은 가득 찬 손님들의 이야기와 음악으로 후텁지근했습니다. 홀의 출입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 쪽에 앉아 있던 몇몇 손님들이 그를 보고 가볍게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그 사내는 그런 반응에 익숙한 듯 손님들 앞을 지나 구석에 비어 있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압셍트 한 병을 주문하고는 테이블 위에 스케치북을 올려 놓았습니다. 키가 150cm나 될까? 언뜻 난쟁이 같아 보였는데 그 사내는 허리 위는 정상적인 성인의 몸이었지만 허리 아래는 아이의 몸이었습니다. ‘ 저 사람, 누군가?’ 입구 쪽 테이블에 앉은 손님이 지나가는 웨이터를 붙잡고 그 남자에 대해 물었습니다. ‘ 저 분 말씀이세요? 손님, 여기 처음이시군요. 저 분은 알퐁소 백작의 큰 아드님인데 유명한 화가죠. 우리 지배인님하고는 물랭루즈 포스터를 그려주는 대신 아무 때나 이 곳에서 술을 드실 수 있는 약속을 하셨답니다. 지금 앉아 있는 저 자리가 저 분의 지정석이죠. ‘ 구석에 앉은 남자를 힐끗 거리며 손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 재미있군, 저 양반 이름은?’ ‘ 툴루즈 로트렉 입니다. 그런데 여기 몽마르뜨에서는 옷걸이나 커피포트, 몽마르뜨 귀신 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부르고 있습니다. 이 근처 홀에서 일하는 아가씨들하고도 아주 친한 사이죠’ 구석에 앉은 사내는 벌써 압셍트를 반 병 넘게 비우고 있었고, 한 손으로는 스케치북에 뭔가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사진)
앙리 마리 레이몽드 드 툴루즈 로트렉 (Henri Marie Raymond de Toulouse Lautrec)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그의 가문은 남부 프랑스에 기반을 둔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었습니다. 명랑하고 활기찬 로트렉에게 비극이 시작된 것은 7살부터였습니다. 계단에서 넘어진 후 기본적인 성장이 멈추기 시작했는데, 12살 때 왼쪽, 14살 때 오른쪽 대퇴골이 부서지는 일이 발생합니다. 접골의 문제가 있었는지 그 때부터 로트렉의 다리는 성장을 멈춥니다. 성인이 되었을 때 그의 키는 154cm였는데 허리 위는 성인의 몸이었지만 허리 아래는 아이인 상태였습니다. 당시에는 접골의 문제라고 알려졌지만 현대 의학에서는 로트렉 집안의 특이한 유전병이 원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집안의 순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행해졌던 가족 간의 결혼으로 인한 문제라는 것이죠. 로트렉의 부모도 친 사촌간이었습니다. 로트렉보다 3년 뒤 태어난 동생도 1년이 안되어서 죽고 마는데 ‘툴루즈로트렉 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오늘 날 불리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에 대한 절망이 로트렉을 덮쳤습니다. 난폭하고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었고 성적으로 자유분방 했으며 알코올 중독이었던 그의 인생은, 그가 의도하지 않은 것에 기인합니다. 저라도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말롬의 살롱 안의 툴루즈 로트렉 백작부인 Comtess a. Toulouse-Lautrec in the Salon ah Malome /1887)
로트렉 어머니의 초상화입니다. 로트렉이 미술에 재능이 있음을 알고 10살 때부터 미술을 배우게 했고,
성장이 멈춘 아들에 대한 집안의 시선을 피해 몽마르뜨에 집을 얻어 아들과 함께 지냈던 어머니였습니다.
젊은 나이로 죽어 가는 아들을 지켜봐야 했고 아들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위한 미술관 건립을 위해
동분서주 했던 어머니였습니다. 눈길을 책에 맞추고 있는 그녀의 옆모습이 참 단아합니다.
어머니의 눈과 입술 그리고 머리를 그리면서 로트렉은 자신이 어머니 보다 먼저 죽을 걸 알았을까요?
뻑뻑한 붓 터치의 흔적들을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로트렉의 마음이라고 본다면----
어머니, 아드님을 참 잘 지켜주셨군요.
(물랭 루즈 Moulin Rouge /1891)
몽마르뜨에 문을 연 물랭 루즈 (빨간 풍차 라는 뜻입니다)의 포스터입니다.
M을 크게 사용하여 물랭 루즈의 상호를 세 번 표현했는데 춤을 추는 여자 위의 라 글뤼 (La Goulue)는
물랭 루즈의 유명한 댄서 이름입니다. 처음 3,000장 정도를 제작해서 파리 시내 곳곳에 붙인 이 포스터는
로트렉의 첫 번째 채색 석판화였습니다. 포스터가 붙고 난 다음 날 로트렉의 이름은 파리 시내에 쫙 퍼지게
되었습니다. 유명해지는 것 잠깐인가요?
‘거리의 예술’이라고 하는 현대 길거리 포스터의 시초가 아닐까 싶은 이 작품은, 아무리 캉캉 춤을 추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댄서의 몸 동작은 ------ 좀 그렇습니다
(물랭 루즈를 출발하는 잔 아브릴 Jane Avril Leaving the Moulin Rouge / 1892)
약간 고개를 숙이고 걷는 여인의 이름은 잔 아브빌, 역시 물랭 루즈의 댄서입니다. 예쁘장한 그녀 얼굴이
심각합니다. 죽죽 내려 그은 붓 칠은 그녀의 옷과 배경에 비가 내리는 느낌을 남겨 주었고 바닥에 흰 점들은
떨어진 꽃 잎 같습니다. 그래서 쓸쓸해 보입니다. 등을 보이고 가는 사람은 방향도 반대편이지만 옷 색깔
마저 선명하게 구별됩니다. 일을 끝내고 가는 잔 아브릴의 어깨가 너무 좁습니다.
잔 아브릴은 우아한 스타일의 여자였는데 요염함과 동시에 정숙함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춤 실력은 라 글뤼보다 뛰어났다고 하는데 자주 ‘미친 잔’ ‘이상한 사람’ 이라고 불렸다고 하니까,
제 생각에는------- 아마도 ‘한 성격’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한 성격’ 한다고 다 미친 것은 아니니까
오해 하시면 안됩니다.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 1887)
고흐가 앉아 있습니다. 로트렉은 잠시 고흐와 함께 몽마르뜨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같은 듯 하면서도
다른 두 사람이었습니다. 고흐는 세상과의 갈등과 좌절 그리고 분노를 그림에 녹여 넣었지만 로트렉은
세상 속으로 들어 가 버렸습니다. 그것도 아주 낮은 세상 속으로 말입니다.
물론 둘 다 압셍트를 좋아했고 중독성 강한 그 술이 두 사람의 정신 착란을 가져 왔다는 주장도 있지만요.
로사 라 루즈 Rosa la Rouge / 1887)
로사 라 루즈 라고 불렸던 여인입니다. 헝클어진 앞 머리와 꼭 다문 입, 그리고 걷어 올린 옷 소매에서
상처 입은 영혼이 느껴졌습니다. 그녀가 세상을 보는 눈은 머리카락에 감춰 있습니다. 앞 머리를
가지런히 해주고 난 뒤 그녀의 눈을 보고 싶습니다. 로사 라 루즈는 매춘부였습니다.
(로사 라 루즈 Rosa la Rouge )
창 가를 향한 그녀의 얼굴이 좀 더 밝아졌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탁자를 누르고 있는 손에는 힘이 들어가
있습니다. 왜 이 여인을 볼 때마다 분노를 속으로 감추고 있다고 생각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로사 라 루즈는 로트렉이 가장 좋아했던 모델이었는데 그녀는 빨강 머리였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빨강 머리 여인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빨강 머리를 성적인 것과 연결한 그의 취향 때문이었습니다.
그나저나 로사 라 루즈는 로트렉에게 매독을 안겨 준 여인으로 되어있고 매독은 로트렉을 죽음으로 몰고
간 질병 중의 하나였습니다. 사랑한 댓가가 ------ 매독?
(술 마시는 여인 The Drinker / 1889)
입 꼬리가 처진 걸 보니 방금 술을 삼킨 모양입니다. 옷차림이나 머리 스타일로 봐서는 로사 라 루즈
같지만 확증은 없습니다. 반 넘게 비운 술병과 빈 잔이 그녀의 고민을 아직 못 가져간 모양입니다.
눈 가를 좁히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예전의 제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
저렇게 술을 마시다 보면 감정과 술이 뒤섞여 켜켜이 가슴에 쌓였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것들이 가슴 속
지층이 되었지요. 요즘 간혹 가슴을 쪼개 화석으로 남은 예전의 것들을 보면, 희미한 형태만 남았습니다.
모든 것들이 날아가고 형태만 말입니다.
저 여인에게 ‘지금 힘든 것, 그냥 가슴에 담아 놓으세요.’ 그렇게 말하면 뺨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랭 루즈에서 At the Moulin Rouge / 1892)
무대에서 홀의 풍경을 찍으려고 카메라 플레쉬를 누르는 순간 한 여인이 머리를 갑자기 쳐든 모양이
되었습니다. 그림을 볼 수록 여인의 정체와 뜻을 알 수 가 없습니다. 건너편 여인의 얼굴도 하얗게
된 것을 보면 아마 테이블 위의 불 빛이 얼굴에 비친 것이 아닐까 싶은데, 그렇다면 오른쪽 여인의
얼굴도 화면에는 보이지 않는 불 빛 때문이라고 이해는 되지만 어색함은 그대로 남습니다.
무언가요? 도대체 이 불편한 느낌은 ----. 물론 로트렉의 그림이 원근법이나 미술 이론에 충실한 것은
아니지만요.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몸 짓과 표정은 생생합니다.
몽마르드에 자리를 잡은 로트렉은 알코올과 성에 빠져듭니다. 근처의 사창가에서 한 번 가면 몇 주일씩
머물곤 했는데 그 곳의 매춘부들은 로트렉을 믿을 만한 그녀들의 친구라고 여겼고, 때문에 거부감 없이
그들의 일상을 로트렉과 공유하였습니다. 상황은 다르지만 동병상련의 느낌이 바탕에 있었겠지요.
(커피 포트 Coffee Pot / 1884)
커피 포트는 그의 별명 중의 하나였습니다. 큰 몸통과 짧은 다리를 가진 커피 포트는 또 다른 그의
몸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닮은 커피 포트를 그리면서 로트렉은 아마 울었겠지요.
어두운 배경 속에서 앞의 모습을 반사 시키고 있는 로트렉이 서 있습니다.
37살 생일을 석 달도 남겨 놓지 않았는데, 로트렉은 매독과 알코올 중독으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습니다.
발작이 계속되면서 숨이 끊어져 갈 때 너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아버지가 찾아 왔습니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안 죽은 걸 알고 있었어요’
아버지는 죽기 전에 아들의 수염을 잘라야 한다는 등 괴상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괴상한
행동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죠. 그런 아버지를 보고 로트렉은 한 마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납니다
‘ 아버지, 늙은 멍청이’
그의 어머니와 친구들이 그의 침대 곁에 서 있었습니다.
광대 차우 카 우 ? At the Moulin Rouge, The Clowness Cha-U-Kao)
키는 남보다 30cm 정도 작았지만 세상을 보는 눈은 어느 누구보다 넓고 따듯했던 로트렉이었습니다.
감출 것 없는 세상을 화폭에 옮겼고, 그 때문에 그렇게 남겨진 사람들은 박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 옆에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그건 그가 그들에게 준 생명력입니다.
(물랭 루즈에서의 춤 Dance at the Moulin Rouge / 1890)
물랭 루즈 홀에서 댄서가 춤을 추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춤을 추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두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가운데 분홍빛 여인도 춤에는 관심이 없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합니다.
댄서와 주변 사람들은 구별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이 곳에서도 구별되는 것인가요?
로르텍은 다른 후기 인상파 화가들과는 분명히 차별화 되는 화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윤곽선을 그리고
길고 가는 붓으로 채색하는 그의 작업 방법은, 순간 동작을 아주 빠르게 스케치 하는 능력과 어울려
그만의 특이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그의 이런 화풍은 나중에 표현주의 작가들의 전범이 되기도 합니다.
(거울 앞에 선 누드 Nude standing before Mirror / 1897)
한 가운데 당당하게 서 있는 여인의 몸은 하얗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울 속의 여인은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이 여인의 진정한 모습은 흰색인가요, 아니면 거울 속의 모습인가요?
매춘부들에 대한 로트렉의 시선은 연민과 냉정함이 뒤 섞여 있습니다. 제가 자주 애용하는 표현대로
말한다면 연민은 감정이고 냉정함은 이성입니다. 그러나 로트렉의 이성은 거리를 둔 감정이었다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의료 검진 The Medical Inspection / 1894)
매춘부 두 명이 치마를 걷어 올리고 검진 받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성병 검사입니다. 체념한 듯한
얼굴에서 어떤 감정도 느낄 수 없습니다. 인간 존엄의 문제 이전에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일까요?
이 그림을 보면서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여인의 반 나체가 그것을 보는 사람을 이렇게 힘들게 할 수도
있구나 -----. 이 장면을 그리는 순간, 로트렉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휴식 Alone / 1896)
모든 것을 던지고 나면 저렇게 쉴 수 있을까요? 탈진한 듯 누워있는 그녀의 몸과 다리가 너무 얇아
보입니다. 영원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얼굴과 여인의 영혼이 몇 가닥 선 위로 날아 오르고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4년 전부터 로트렉은 화실에 있는 시간보다 바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서 노르망디 근처에 있는 휴양소에서 요양을 했지만 술을 끊을 수는
없었습니다.
(광대 차우 카 우 ? At the Moulin Rouge, The Clowness Cha-U-Kao)
키는 남보다 30cm 정도 작았지만 세상을 보는 눈은 어느 누구보다 넓고 따듯했던 로트렉이었습니다.
감출 것 없는 세상을 화폭에 옮겼고, 그 때문에 그렇게 남겨진 사람들은 박제가 아니라 오늘 우리 옆에
나란히 앉아 있습니다. 그건 그가 그들에게 준 생명력입니다.
침대에서의 키스 In Bed The Kiss / 1892)
두 여인이 키스를 하고 있습니다. 남자에게 시달린 몸이지만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 놓는 상대는, 그러나
동성입니다. 레즈비언은 그가 창녀촌을 주제로 한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주제입니다. 키스는 달콤하다고
하지만 이 두 여인이 나누고 있는 키스는 서로의 생명을 나누는 느낌입니다. 어떻게든 살아 봐야지 ----.
로트렉의 술에 대한 팀닉은 대단했습니다. 불편한 자신의 몸에 쏟아지는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 시작한
술이 도를 넘어섰습니다. 맥주, 와인, 위스키, 브랜디 등 마실 수 있는 모든 술이 동원되었고 마침내는
스스로 새로운 칵테일을 만드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알코올 중독이 그를 찾아 왔습니다.
(침대 속의 로트렉 Lautrec in Bed / 1893)
20년도 안 되는 화가로서의 시간 중에 그는 737점의 유화, 275점의 수채화, 363점의 포스터와 일러스트,
5,084점의 드로잉을 남겼습니다.
이제 편하게 쉬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출처]툴루즈 로트렉 - 낮은 키 그러나 따듯한 눈 작성자 레스카페
'좋은그림들 > 외국의화가의 작품'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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