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조

채련곡(采蓮曲) / 해설;시인 임보

조용한ㅁ 2016. 7. 12. 01:23

채련곡(采蓮曲) /  해설;시인 임보

 

선조 때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이라는 뛰어난 천품을 갖춘 미모의 여류 시인이 있었다. 본명은 허초희(許楚姬), 난설헌은 그의 호다. 강릉 사람으로 경상감사를 지낸 허엽(許曄)의 딸이며,『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許筠)의 누님이다. 8세에 이미 월궁(月宮)의 광한전백옥루(廣寒殿白玉樓)를 상상하여 그 상량문을 지었다고 하니 그녀의 문재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당대의 호방한 천재 시인이었던 손곡(蓀谷) 이달(李達)에게서 동생 허균과 함께 시를 익혔다. 15세에 안동 김씨 성립(誠立)에게 출가를 하지만 결혼 생활은 원만했던 것 같지 않다. 성품이 예민해서 그랬던 것일까, 부군과 시모의 사랑을 얻기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남매를 생산했으나 1년 간격으로 횡사하는 아픔을 겪는다. 한편 18세에 친정아버지를 잃고, 21세에는 그의 후원자라고 할 수 있는 오라비 허봉(許篈)이 율곡을 탄핵하다 갑산으로 유배되는 환란을 맞는다. 26세에는 그 오라비 허봉마저 고질을 이기지 못해 38세로 병사한다. 겹치는 역경의 괴로움을 그는 시로써 이겨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스물일곱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이승을 하직하고 만다. 전하는 얘기로는 그녀는 꿈속에서 광상산(廣桑山)이라는 황홀한 선계(仙界)를 구경하고 한 수의 절구를 지었는데, 그 시에

 

                          碧海浸瑤海  푸른 바다는 선계에 이어졌고

                          靑鸞倚彩鸞  빛깔 고운 난새들 서로 기댔는데

                          芙蓉三九朶  부용꽃 삼구화 스물일곱 송이

                          紅墮月霜寒  찬 서리 달 아래 붉게 떨어지네 (몽유광상산)

 

라고 노래했다. 그런데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찬 서리 달 아래 붉게 떨어진다’라는 구절이 바로 스물일곱에 자신이 요절할 걸 예감한 참시(讖詩)라고 말하기도 한다.

 

난설헌이 지은 시는 수천 수에 달한다고 하지만 그의 유언에 따라 불에 태워져 거의 소실되고 현재 전하는 것은 200여 수에 불과하다. 사후에 그의 동생 허균이 남은 자료와 그의 기억을 더듬어『난설헌집』을 묶어냈다. 허균은 이 문집을 중국에 가지고 가서 자랑하며 중국 문사들의 서문을 받아왔다. 이로써 난설헌은 한시의 본향인 중국에까지도 알려져 국제적으로 시의 이름을 얻게 되기에 이른다. 난설헌의 이름으로 전해오는 작품 가운데는 표절의 시비가 있는 작품들도 없지 않은데, 이는 허균이 수집하는 과정에서 난설헌이 적어 놓은 고시(古詩)가 잘못 끼어든 것으로 짐작된다.

아름다운 시들이 적지 않지만 이 자리에서는「채련곡(연밥 따는 노래)」한 수를 감상해 보려고 한다.

 

秋淨長湖碧玉流   가을 긴 호수에 옥 같은 물 흐르는데

荷花深處係蘭舟   연꽃 깊은 곳에 목란배 매어두고

逢郞隔水投蓮子   님을 만나 물 건너로 연밥을 던지다가

遙被人知半日羞   남의 눈에 띄었을까 반나절 무안했네 (정민 역)

 

앞의 번역문을 좇아 이 시를 좀 부연해서 감상하면 다음과 같다.

맑은 가을날이다. 길게 펼쳐진 호수의 물결이 벽옥처럼 푸르다. 그 호수 위에 수천 평의 무성한 연밭이 어우러져 있다. 한 낭자가 연밥을 따기 위해 난주(蘭舟)를 타고 연밭으로 들어간다. 난주란 목련나무로 지은 배인가? 굳이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여인이 타고 있는 배이니 고운 치장을 한 작은 배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리라. 그 배가 연밭 깊숙한 곳에 이르러 정박한다. 그런데 연밭 너머 저 물 건너에 님이 있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그 님은 낚싯대라도 드리우고 있을 것만 같다. 여기서 님을 보게 될 줄이야. 어쩌면 주인공은 연밥을 따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님이 있을 것을 미리 짐작하고 그 님을 보기 위해 왔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드러나지 않은 곳에 배를 세우고 숨어서 님의 동정을 살핀다. 그런데 님은 드리우고 있는 낚싯줄에만 마음을 두고 있을 뿐 주위의 정황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낭자는 연밥을 따서 가만히 님이 있는 곳으로 던진다. 연밥은 님이 있는 곳까지 미치지 못하고 그만 물에 떨어지고 만다. 그렇게 연이어 던져보지만 야속하게도 님은 눈치채지 못한다. 멀리서라도 누가 보면 어떻게 하지? 낭자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반나절을 그렇게 보낸다.

 

위에 번역한 시의 내용은 대강 이렇다. 두 청춘 남녀가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반일수(半日羞)’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는 의미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즉 반나절 동안 화자를 부끄럽게 만든 요인을 무엇으로 볼 것인가? 다음의 세 가지를 상정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1) 반나절 동안 계속 님이 있는 곳에 연밥을 던지며 부끄러워함.

2) 몇 번 던지고는 그것을 누가 보았을까 봐 반나절 동안 내내 부끄러워함.

3) 두 사람이 만나 반나절 동안 사랑을 속삭이며 남의 눈에 띌까봐 부끄러워함.

반나절 동안 계속 연밥을 던졌다는 1)의 경우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처럼 감각이 무딘 님은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2)는 앞의 번역과 같이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정황이다. 그렇지만 부끄러워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따라서 3)의 경우도 배제할 수는 없다. 연밥을 던지자 님이 알아차려 두 사람은 연밭의 난주 속에 숨어서 반나절 동안 사랑을 나누며 가슴을 조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다음과 같이 옮겨보면 어떨까?

 

맑은 가을 긴 호수 물결은 푸른데

연꽃 우거진 속에 고운 배 감춰놓고

물 건너 님에게 연밥을 던지고선

남의 눈에 띌까 봐 반나절 낯붉혔네.

 

이렇게 옮겨 놓으면 제4행(결구)은 2)와 3)의 의미를 아우르는 은근한 맛을 지니게 된다. 이것이 바로 한시가 지닌 모호성(ambiguity)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난설헌은 마치 천상의 선녀가 잠시 지상에 내려왔다가 서둘러 돌아간 시선(詩仙)인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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