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스크랩] 풍장(風葬) - 황동규

조용한ㅁ 2013. 3. 28. 17:53
 

                                                       황동규 시인

 

1938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영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고, 영국 에딘버러 대학 등에서 수학했다. 1958년 <현대문학>추천으로 등단한 이래 <어떤 개인 날><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풍장><외계인><버클리풍의 사랑 노래> 등 11권의 시집과 산문집 <겨울 노래><젖은 손으로 돌아보라> 등을 펴냈다.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風 葬 (풍장)  /  황동규

 

 

[최보식 기자 직격 인터뷰] 등단 50년 황동규 시인

 

그 중에서도 선생님 시의 백미가 바로

이 '풍장' 연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처음 이 시집을 읽다가 지하철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을 정도로 감동받은 기억이 있네요.

 

풍장 연작은 처음에는 다섯 편 정도로 끝날 듯한 시였으나

시인의 의도를 넘어 14년의 세월 동안

70편의 크고 작은 별들이 되어버린 작품입니다.

 

70편의 시를 통하고 있는 공통된 주제는

바로 '풍장'이라는 제목이 보여주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이 연작시들은 죽음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으로

받아들인 채 삶을 비극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삶 속에서 죽음을 바라보며 죽음을 통해 삶의 비극을 넘어서는,

오히려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로 삼는 화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14년이란 세월 동안 씌어진 시라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구체적인 시선에는 변화가 있지만

그것에 대한 자세만은 여전히 같은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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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죽음과 삶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고

그저 삶의 연장선 혹은 또 하나의 삶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죽더라도 옷도 벗기지 말고 시계도 풀지 않은 채

장지(葬地)인 무인도로 데려다 달라고 하는 것이지요.

현실적으로는 사체를 가방에 넣어 어딘가로 가져간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 의심받을 일이지만 그것조차도 가볍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봅니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무인도로 가는 모습을 보고 평론가

남진우는 어미의 자궁/모태(바다로 둘러싸인 섬)로 돌아가는

태아(시체)의 모습을 읽었다는데 그 해석이 가장 납득할 만한 것

같네요. 

모태인 무인도에 도착한 화자는 이제 더 이상 육신의 흔적이

불필요하기에 가방과 옷을 벗고, 가을 햇빛 속에서 서서히 말라갑니다.

손목시계는 부서져 시간마저 흐르는지 마는지를 알지 못하는 곳

(-알 필요가 없는 곳)에서는 해골 속에 녹스는 백금조각조차도

바람 속에 빛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바람'을 이불처럼 덮기도 하고 어울려 같이 놀기도 하는 곳에서

화장도 필요없이, 해탈의 의미도 필요없이 죽음을 죽음으로서

받아들이겠다는 말을 하며 끝을 맺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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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 葬 (풍장)  /  황동규

 

1
내 세상 뜨면 풍장시켜다오
섭섭하지 않게
옷은 입은 채로 전자시계는 가는 채로
손목에 달아 놓고
아주 춥지는 않게
가죽가방에 넣어 전세 택시에 싣고
군산(群山)에 가서
검색이 심하면
곰소쯤에 가서
통통배에 옮겨 실어다오
가방 속에서 다리 오그리고
그러나 편안히 누워 있다가
선유도 지나 무인도 지나 통통소리 지나
배가 육지에 허리 대는 기척에
잠시 정신을 잃고
가방 벗기우고 옷 벗기우고
무인도의 늦가을 차가운 햇빛 속에
구두와 양말도 벗기우고
손목시계 부서질 때
남몰래 시간을 떨어트리고
바람 속에 익은 붉은 열매에서 툭툭 튕기는 씨들을
무연히 안 보이듯 바라보며
살을 말리게 해다오
어금니에 박혀 녹스는 백금(白金)조각도
바람 속에 빛나게 해 다오
바람 이불처럼 덮고
화장(化粧)도 해탈(解脫)도 없이
이불 여미듯 바람을 여미고
마지막으로 몸의 피가 다 마를 때까지
바람과 놀게 해다오

 

2
아 색깔의 장마비!
바람 속에 판자 휘듯
목이 뒤틀려 퀭하니 눈뜨고 바라보는
저 옷벗는 색깔들
흙과 담싼 모래 그 너머
바다빛 바다!
그 위에 떠다니는 가을 햇빛의 알갱이들
소주가 소주에 취해 술의 숨길 되듯
바싹 마른 몸이 마름에 취해 색깔의 바람 속에 둥실 떠……


3
희미한 길 하나
골목에 들어가 길 잃었다가
환한 한길로 열리듯
아픈 이 하나
턱 속에 사라졌다가 바람 불 때
확하고 뇌 속으로 타오르듯이
세상이 세워지다 말고
헐리다 말고
외롭다 말고, 세상이
우리 모여 떠들던 광교의 술집과
잠 못 들다 홀로 몸 붙이고 잠든 방 사이
어디선가 타오른다
인왕산일까 남산쯤 혹은 낙산 그 너머일까
낙산 밑에 밀주 팔던 그 술집일까
안방에 담요 뒤집어 쓰고 화끈 달던
술항아리일까
혹은 우리들보다 더 뜨거운 우리의 골목일까
그런 골목, 우리 코트 버리고
웃옷 벗어 머리에 쓰고 허리 낮추고
불타는 마루를 빠져나와 마당을 빠져나와
대문턱에 걸려 넘어져 엎어진 채로
세상이 마르고, 세상을 태우고, 세상에 물뿌리는 소리를 듣는다
 

4
쓸쓸한 화령길
어려운 길 석천(石川)길
반야사(般若寺)는 초행길
황간(黃澗)지나 막눈길
돌다리 위에 뜬 어리숙한 달
(그 달?)
등지고
난간 위에 눈을 조금 쓸고
목숨 내려놓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루카치 만나면 루카칠
바슐라르 만나면 바슐라를
놀부를 만나면 흥부를……
이번엔 달을 내려놓고

 

7
풍란(風蘭)이 터진다
손가락을 넣으면
빵꾸난 주머니 시원 너덜너덜 너덜
옷꿰맨 곳 터져
살 드러나고
살 꿰맨 곳 터져
뼈 드러나는가
가만,
말 꿰맨 곳 터질 때
드러나는 말의 뼈
실과 바람사이
바람과 난(蘭)사이
풍란(風蘭)과 향기 사이
에서 흰 빛깔과 초록빛깔이 알록달록 가벼이 춤추는
뼈들이 골수속에 코를 박고 벌름대는
이 향기

 

12
이 세상 가볍게 떠돌기란
양말 몇 켤레면 족한 것을
헤어지면
기워신고
귀찮아지면
해어지고
(소금장이처럼 가볍게
길 위에 떠서)
아 안 보이던 것이 보인다
콘크리트 터진 틈새로
노란 꽃대를 단 푸른 싹이
간질간질 비집고 나온다
공중에선
조그만 동작을 하면서
기쁨에 떠는 새들
호랑나비 바람이 달려와
마음의 바탕에
호랑무늬를 찍는다
찍어라, 삶의 무늬를,
어느날 누워 깊은 잠 들 때
머릿속을 꽉 채울 숨결의 무늬를,
그 무늬 밖에서 숨죽인 가을비 내릴 때

 

14
오늘 낮에 새들한테 당했다
섬 밖 사방에서 날아와
떼지어 맴돌다
한꺼번에 나에게 달려든
저 갈매기표(標) 칼새표(標) 심장들
두둥 두둥둥
마싹 마른 다리로 벌떡 일어나
뒤를 보며 달리다
바닷가에 널어논 그물에 걸려
벌렁 나자빠져 춤추듯 누웠다
온통 맥박투성이의 하늘

 

15
숲에서 나와
가까이,
땅의 얼굴에 얼굴 가까이,
그 얼굴에 볼에 가볍게 볼 비비고
그 얼굴에 입에 입 가까이
혀 가까이,
목구멍 가까이,
가볍게
몸이 가벼워져 거꾸로 빙빙 돌며 떠오르는 곳
회오리 바람이는 곳 내 죽음 통하지 않고 고장 승천하는 곳
 
 
16
어젯밤에는
흐르는 별을 세 채나 만났다
서로 다른 하늘에서
세 편(篇)의 생(生)이 시작되다가
확 타며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오늘 오후 만조(滿潮) 때는
좁은 포구에 봄물이 밀어오고
죽었던 나무토막들이 되살아나
이리저리 헤엄쳐 다녔다
허리께 해파리를 띠로 두른 놈도 있었다
맥을 놓고 있는 사이
밤비 뿌리는 소리가 왜 이리 편안한가?
 
 
17
땅에 떨어지는
아무렇지도 않은 물방울
사진으로 잡으면 얼마나 황홀한가?
(마음으로 잡으면!)
순간 튀어올라
왕관을 만들기도 하고
꽃밭에 물안개로 흩어져
꽃 호흡기의 목마름이 되기도 한다
땅에 닿는 순간
내려온 것은 황홀하다
익은 사과는 낙하하여
무아경(無我境)으로 한번 튀었다가
천천히 굴러
편안히 눕는다
 


20
바다는 젖어 있었다
바다와 해가 맞물려 출렁거려
그 속에서 해당화가
왕보석처럼 빛났다.
색의 창을 슬쩍 여닫는 색의 눈,
해당화를 보다 말고
인간을 향해
그냥 인간의 눈 속으로!

 

21
인간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속에 사는,
미물(微物) 속에서도 쉬지 않고 숨쉬는,
혹은 채 살아 있지 않은 신소재(新素材)도
날카로이 깎아놓으면
원래의 편안한 모습으로 되돌아가려는,
저 본능!
바람에 흔들리는 저 나무, 저 꽃, 저 풀,
도토리를 먹는 다람쥐의 오르내리는 저 목젖이
동식물도감의 정밀한 사진들 속에 숨지 않으려는
바로 그것!

 

22
무작정 떠 있다
멍텅구리배
오늘은 흔들리지도 않는다
허리 근질거림 참다보면
바다에 떴는지 하는에 떴는지
열(熱)에 떴는지
처음으로 나무에서 내려와
땅 위에 정신없이 발디딘 원숭이처럼
땅 위에 떴는지
 
인간으로 그냥 낡기 싫어
뒤로 돌아
생명의 최초로 되밟아가려다
생명 속에 떴는지

 

24
베란다에 함박꽃 필 때
멀리 있는 친구에게
친구 하나 죽었다는 편지 쓰고
편지 속에 죽은 친구 욕 좀 쓰려다
대신 함박꽃 피었다는 얘기를 자세히 적었다
밤세수하고 머리 새로 씻으니
달이 막 지고 지구가 떠오른다

 

25
희양산 봉암사에 다가갔다.
늦가을 저녁
발목이 깊은 낙엽에 빠지고
시냇물 소리도 낙엽에 빠지고
바람 소리까지 낙엽에 빠지는
늦가을 저녁
검음 멈추면
소리내던 모든 것의 소리 소멸,
움직이던 모든 것의 기척 소멸,
문득 얼굴 들면
하얗게 타는 희양산 봉우리,
소리없이 환한
주위엔 저 옥보라색
빛들이 몸 가벼운 쪽으로 쏠리다 맑아져
分光 그만두고 스펙트럼 벗어나 우주 속에 사라졌다가
지구의 하늘이 그리워 돌아온
저 색!
때맞춰 하얗게 타는 산봉우리

 

26
달마는 면벽(面壁) 구 년에 왜 마르지 않았는가?
달마는 마르는 대신 왜 사지(四肢)의 퇴화를 택했는가?
사지는 말없이 그의 고통과 법열(法悅) 속에
(저 소리없는 신음소리, 아악 소리,
내장(內臟)의 웃음소리, 생명의 폭발소리)
그 모두를 참으며 세포 하나하나에
미소 보내며 기다렸을까?
기다림이란 무엇인가? 퇴화란 무엇인가?
혹시 진화란 퇴화로부터 뒷걸음질치는 것?
발 헛디디며 계속 뒷걸음질치다
벽에 등대고 선 나의 머리와 사지

 

27
내 세상 뜰 때
우선 두 손과 두 발, 그리고 입을 가지고 가리
어둑해진 눈도 소중히 거풀 덮어 지니고 가리
허나 가을의 어깨를 부축이고
때늦게 오는 저 밤비 소리에
기울이고 있는 귀는 두고 가리
소리만 듣고도 비맞는 가을 나무의 이름을 알아맞히는
귀 그냥 두고 가리

 

28
내 마지막 길 떠날 때
모든 것 버리고 가도
혀끝에 남은 물기까지 말리고 가도
마지막으로 양 허파에 담았던 공기는
그냥 지니고 가리
가슴 좀 갑갑하겠지만
그냥 담고 가리
가다가 잠시 발목 주무르며 세상 뒤돌아볼 때
도시마다 사람들 가득 담겨 시시덕거리는 것 내려다보며
한번 웃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번 배 잡고 낄길대기 위해
지니고 가리

 

30
함박꽃 가지에서
사마귀가 성교 도중 암컷에게 먹히기 시작했다,
머리부터
머리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이 쾌감!
하늘과 땅 사이에 기댈 마른 풀 한 가닥 없이
몸뚱어리 몽땅 꺼내놓고
우주의 공간 전부와 한번 몸 부비는
저 경련!

  

31
마른 국화를 비벼서
향내를 낸다
꽃의 체취가 그토록 가벼울 수 있을지
손바닥을 들여다 보다가
마음이 쏟아진다
나비나 하루살이 몸에
식물의 마음 심은 가벼운 것이 되어
떠돌리라
비벼진 꽃 냄새 살짝 띠고

 

34
옷을 벗어버린 눈송이들이
지구의 하늘에서보다 더 살아 춤추는
우주의 변두리,
혹은 서울의 변두리 밖으로,
가고 싶다
확대경 속에서처럼
큰 눈송이들이
공해에 찌든 몸의 옷 벗어버리고
속옷도 모두 벗어버리고
속살 그대로 날으며 춤추는
춤추다 춤추다 몸째 춤이 되는 그곳으로,
여섯 개의 수정(水晶)깃만 단 눈송이들이

 

35
친구 사진 앞에서 두 번 절을 한다
친구 사진이 웃는다,
달라진 게 없다고.
몸 속 원자들 자리 좀 바꿨을 뿐,
영안실 밖에 내리는 빗소리도
옆방에서 술 마시고 화투치는 조객들의 소리도
화장실 가기 위해 슬리퍼 끄는 소리까지도
다 그대로 있다고
 


36
내 마지막 기쁨은
시(詩)의 액셀러레이터 밟고 또 밟아
시계(視界) 좁아질 만큼 내리 밟아
한 무리 환한 참단풍에 눈이 열려
벨트 맨 채 한계령 절벽 너머로
다이빙.
몸과 허공 0밀리 간격 만남
아 내 눈!
속에서 타는
단풍

 

37
땅속에 발목뼈 채 묻히지 못해
한없이 떠도는 원혼(寃魂)이 된들 어떠리
원혼 가운데서도
새처럼 가벼운 원혼,
슬피 울지도 못하고
잠투정하듯
초저녁에 잠시 우는,
울다 문득 고막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38
아침에 커피 끓여 마실 때
내 입은 위(胃)와 통화한다,
"지금 커피 한잔 발송한다."
조금 있다가 위는 창자와 통화할 것이다.
"점막질에 약간 유해한 액체 바로 통과했음."
저녁쯤 항문은 입에게 팩시를 보낼 것이다
"숙주(宿主)에 불면증 있음."

 

40
선암사 매화 처음 만나 수인사 나누고
그 향기 가슴으로 마시고
피부로 마시고
내장(內臟)으로 마시고
꿀에 취한 벌처럼 흐늘흐늘대다
진짜 꿀벌들을 만났다.
벌들이 별안간 공중에 떠서
배들을 내밀고 웃었다
벌들의 배들이 하나씩 뒤집히며
매화의 내장으로 피어……
나는 매화의 내장 밖에 있는가,
선암사가 온통 매화,
안에 있는가?

 

44
바람 소리
저 마을 뒤에 엉거주춤 서 있는 산,
낯익어 고향 같다
개울 간신히 건너는 돌다리
낯익어 돌다리 같다
눈 반쯤 감고 보면 모두 낯익다
바람 소리에 흔들릴까 말까 주저하는
저 나무의 몸짓도
언젠가 하루 구름 갠 날
눈 한번 아주 감으면
모든 게 몸서리치게 낯익어지지 않을까?
아 환한 사람 소리
눈 지긋 감아라

 

46
며칠 병(病)없이 앓았다
책장문들이 모두 열렸고
책들은 길 떠날 채비하고 줄 서 있었다
더러 외투 껴입고 있는 놈도 있었다
문밖을 나서니 시야의 초점 계속 녹이는 가을 햇빛
간판들이 선명해라
지나치는 사람들도 선명해라
책을 들고 걷는 저 여자의 긴 손
차도(車道)에 바싹 나와 아슬아슬 서 있는
저 흙덩이의 어깨까지 선명해라
눈이 밝아졌구나,
아 눈이

 

47

내 관악산 보이는 곳에 살며
때로는 산이 안개 속에 숨는 것을 보았다
이슬비가 안개를 벗기기도
안개가 이슬비를 다시 감싸기도 했다
언젠가 마음 속 간직해온 것과 헤어져야 할 때,
마음의 것들 책상 위에 벌여 놓을 때,
서가에 꽂힌 책 위에도 얹어 놓을 때,
눈앞에서 금방 사라질 것들!
꺼내 놓으라면,
관악산부터 내어 놓으리
다녀온 암자들도 암자의 약수그릇도 내어 놓고,
가을 저녁 어둡기 직전 남 보지 않을 때 땅을 더듬다 말던
가랑비도

 

 

49
늦가을 저녁 아우라지강을 혼자 만나노니
나의 유해 예까지 끌고 와 부릴 만하이
앞산 한가운덴 잎갈이나무들 위통 벗고 모여
마지막 햇빛 쪼이고 있고,
주위로 침엽수들 침착히 서서
두 강이 약속 없이 만나는 것을 내려다 보고 있다
껄끄러운 두 강 만나
고요한 강 하나 이룬다
빈 배 하나 흔들리며 떠 있다
시간이 고이지 않는다

 

50
오늘 서가의 지도(地圖)를 모두 버렸다
바닷가를 방황하다가
우연히 눈부신 눈을 맞으리
건너편 섬이 은색 익명(匿名)으로 바뀌다가
내리는 눈발 사이로 넌지시 사라지는 것을 보리
사라진 섬을 두고,
마음에 박혔던 섬도 몇 뽑고
마음에 들던 섬부터 뽑고
섬처럼 박혀 있던 시간들도 모두 뽑아버리고
돌아오리
오늘 지도를 모두 버렸다

 

59
그대는 상자 속을 들여다 보았는가?
낡은 티셔츠, 벙어리장갑 한 짝,
흑백 사진 몇 장,
몽당연필 한 자루,
붉은 연필로 겉장에 X표 친 노우트,
벙어리장갑 또 한 짝,
을 들치고 속을 보면
어느날 들어간 인사동 골목길
연탄 난로 위에 우동이 끓고 있는 조그만 노점 앞에서
키 큰 소녀 하나가 떡볶이를 먹고 있다
단발머리 위로
담장 위로
벌겋게 녹슬고 있는 철조망 끝으로
타고 오른
끝이 살짝 말려 있는 나팔꽃 한 줄기
그 위론 예쁘달 것도 귀엽달 것도 없는
낮달 하나
구역질
 
소녀는 계속 먹고 있다
시간이 새어나가고
아무런 부피도 무게도 자리 뜬
한줌의 느낌.

 

풍장 70

 

냇물 위로 뻗은 마른 나뭇가지 끝
저녁 햇빛 속에
조그만 물새 하나 앉아 있다
수척한 물새 하나
생각에 잠겼는가
냇물을 굽어보는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가
조으는가
조으는가
꿈도 없이


 

- 바람속에 풍화시키는 매장형식이라는 풍장의 연작시
70여편의 마지막,14년 세월의 연작시 마지막.-

황동규 연작 시집[풍장]  中..  

 

 

 

 

 

 봄 타령 ( 태평소 시나위 ) - 원장현 

 

연일 추위와 꾸무리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군요.

소설이 지난 "초겨울" 온다던 첫눈 오는둥.. 마는둥..

 

요럴때는 우리가락 봄 타령을 들어보면 어떨런지요.^^

 

새납으로 불리우는 태평소는 흔히 날라리로 알려져 있고

화려하고도 강렬한 음색을 지니고 있는 악기입니다.

 

시나위는 흥이 나는대로 때로는 만취상태처럼 박의 흐름을 무시하며

또는 박과 조화를 이루며 많은 감정을 표현합니다.

 

무거운 겨울 외투를 벗어 던지듯 일상을 내려놓고

대금의  명인 원장현님의 연주에 흥겨움을 느껴보세요.

거문고와 아쟁과 태평소와 함께 대금소리가 어우러져 멋진 한 마당이 펼쳐집니다.

 

 

* 원장현의 앨범 대금소리 '항아의 노래. 7번 트랙에 있는 곡입니다.

     

 
 
 
봄 타령(태평소 시나위/원장현)

                                           

                                           

                                           

                                          출처 : 시나브로
                                          글쓴이 : Break Tim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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