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기억해내길 바래요-원성스님
조용한ㅁ
2013. 5. 15. 23:24
선생님께 구구단을 못 외운다고 손바닥 맞고
사내 녀석이 눈물 보인다고 또 맞고
눈 퉁퉁 부어 집으로 오던 길에 비 맞고
집에선 꼬리치며 달려들던 바둑이 발길질에 맞고
아무리 불러봐도 엄마는 대답이 없고
찬장을 열어봐도 푹 익어 쉰내 나는 김치밖에 없고
자꾸만 뱃속에선 꼬르륵 소리나고
기억해내길 바래요
끝내 9x9=81까지 다 외워서 선생님이 흐믓한 미소로 날 보시던 날을
내 짝꿍 무거운 준비물 들어주던 내 어린 사내다움을
소독약 차에 흥분하며 옆 동네까지 뛰어가던 비 갠 다음날의 그 길을
나한테 그렇게 맞고도 늘 내 옆에 다가와 손을 핥던 바둑이의 눈빛을
아득해지는 골목길에서 두 손 가득 내 좋아하는 갈치를 들고
나를 부르시던 엄마 목소리를
기억해내길 바래요
울었던 그날도
웃었던 그날도
모두 내겐 소중한 하루였음을
오늘 아주 많이 속상한 날이라면
내일은 오늘이 무척이나 소중한 하루가 될 것임을
꼭 기억해주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