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그림/때로는 나도

시증조부 기일

조용한ㅁ 2013. 9. 29. 15:09

결혼해서 첫 제사를 지내는데, 젯상 귀퉁이가 떨어져나가고 없었다.

제기도 없어서 식구들이 사용하는 식기를 쓰고, 향로도 촛대도 없었다.

"제기를 마련해야겠어요" 내가 말하자, 남편은

"이젠 제사 대신 연미사를 드릴거니까 그럴 필요 없어"라고 말했고, 시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그 시어머님 돌아가시고,  내가 당시의 시어머님 나이가 된 오늘까지, 연미사는 커녕, 일년내내 제사와 명절만 되면 나는 음식 장만에

집안 정리에 쌓이는 스트레스로 몸살을 앓았다.

 

남편은 돈을 벌지도 못하지만,

쓰는데 대한 거부감? 혹은 두려움을 병처럼 안고 산다.

작년 추석을 앞두고, 명절 음식거리를 사러 가려는데,남편이 가풍을 가르쳐야 한다며,  둘째 며느리를 데리고 가자고 했다.

이것저것 제수용품을 사는 동안, 새며느리 앞에서 차마 사지못하게 옆구리 찌르기를 못하던 남편, 더는 참지 못하겠는지,

"이제 제사는 않지내고 미사로 바꿀겨~"한다.

"그려? 하이고, 여태 있다가 웬일?."

"아가, 이건 순전히 네 복이다. 가진게 일복 밖에 없는지 내겐 이 나이 되도록 뼛골 빠지게 제사 지내게 하더니.... 어쨋거나 반갑네~"

빈정거리며, 더 사려던 제사용품을 단념했던 그 이후. 

시증조부의 기일인 오늘, 성당에서 연미사로 지내게 된것이다.

아이들에겐 올것없다, 추석에 일렀으므로 우리 두 늙은이만 미사에 참례하면 되었다.

 

 

평일이어서 한적한 성당 입구엔 나팔꽃이 한창이었는데, 내겐  제사로부터의 "해방"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나는듯했다.

 

'성모님, 저 이젠 제사 땜에 스트레스 안받게 됬어요. 고맙습니다. 이제라도 일을 덜어주셔서요'

꾸뻑 인사하는데, 성모님이 '그래, 고생했다. 잘 참아줘서 기특하다' 그러시는것 같았다.

 

 

여기는 조상님들의 유골이 안치되어있는 납골당.

지금 사는 아파트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추석 성묘도 못 갔으니 겸사겸사 가자는 남편 말에 묵묵히 따라와 돌집에 대고 두번 절 했다.

 

 

초가을 햇빛이 눈부신 오후,

 남편은 20년째 타고 있는 자동차의 창문이 안 열린다며,수리공장으로 가면서 나를 이 연못에 내려놓고 갔다.

지난 여름에 여기와서 연꽃이랑 해바라기를 사진 찍었었는데, 연꽃은 씨앗이 되어 영글고 해바라기를 심었던 주변엔 코스모스가 한창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귀찮으니 저녁 사 먹고 가자는 내 말에, 남편은

 "그럴까? 돼지머리 순대국밥?" 한다.

"나, 그거 먹기 싫어. 좀 더 가다가 아파트 옆에 있는 동까스 집에 가". 내 말에

"에이, 난 그런거 싫은데..." 하면서도 차를 동까스 집앞에 세우는 남편.

자식들은 하나도 오지않고, 늙은 마누라만 덜렁 데리고 미사에 성묘까지, 

기가 죽었나.... 내심 고소해하는 나.

 

집에 돌아와  작은집 동서가 꾸려준 밤이며 버섯을 꺼내 냉장고에 넣고, 고추는 꼭지 따고 깨끗히 씻어서 냉동실에 넣었다.

이 고추는 일년 내내 된장찌개나 생선 매운탕 등에  요긴하게 쓰일것이다.

 

다음은 아침에 사다놓은 무우와 배추로 나박김치 담기.

무우 하나 배추 한통이지만, 추석에 쓰고 남은 당근, 오이,배와 밤을 넣고, 잣까지 띄워, 한통 더 만들어 바로 윗층에 사는 새댁에게도 줄것이다.

대천이 친정이라며 수시로 시금치며 상추며..... 한 보다리씩 가져다 준 답례로..... 

 

이것으로 오늘 일기 끝.

69살 끄트머리에서야 제사에서 놓여난 이 한심한 해방감,

이런것두 행복인겨??   ㅋㅋㅋ

 

 

 

 After All These Years / Barbara Mandr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