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일 - 박수근 그림에서 - 장석남
박수근 <강변>
인쇄한 박수근 화백 그림을 하나 사다가 걸어 놓고는 물끄러미 그걸 치어다보면서 나는 그 그림의 제목도 여러가지로 바꾸어 보곤
하는데 원래 제목인 「강변」도 좋지만은 「할머니」라든가 「손주」라는 제목을 붙여보아도 가슴이 알알한 것이 여간 좋은 게 아
닙니다. 그러다가는 나도 모르게 한 가지 장면이 떠오릅니다. 그가 술을 드시러 저녁 무렵 외출할 때는 마당에 널린 빨래를 걷어다
개어 놓곤 했다는 것입니다. 그 빨래를 개는 손이 참 커다랗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장엄하기까지 한 것이어서 聖者의 그것처럼 느
껴지기도 합니다. 그는 멋쟁이이긴 멋쟁이였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또한 참으로 궁금한 것은 그 커다란 손등 위에서 같이 꼼지락 거렸을 햇빛들이며는 그가 죽은 후에 그를 쫓아갔는가 아니면
이승에 아직 남아서 어느 그러한, 장엄한 손길 위에 다시 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가 마른 빨래를 개며 들었을지 모르는 뻐꾹새
소리 같은 것들은 다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궁금한 일들은 그러한 궁금한 일들입니다. 그가 가지고 갔을 가난이며 그리움 같은 것
들은 다 무엇이 되어 오는지...... 저녁이 되어 오는지 ....... 가을이 되어 오는지....... 궁금한 일들은 다 슬픈 일들입니다.
궁금한 일
- 박수근 그림에서 - 장석남
이 시를 접하고 우선은 참 반가웠다.
그래, 이런 우연도 있구나........
사실인즉 나도 시인과 똑같은 복사본을 산 적이 있는데, (아래사진) 아마 한10년전쯤,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전일것이다.
그즈음 나는 만성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경복궁 앞에 있는 갤러리 현대에서 전시되고 있는 박수근전에 갔다가 이 그림을
샀었다.
액자 포함해도 10호도 채 않되는 소품이었지만, 그 많은 복사본 가운데서 이 그림을 고른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어쨋거나 이 그림은 작기도 하거니와 아주 가벼워서 부엌 식탁 옆 벽에 걸기에 알맞았다.
그렇게 그림을 걸어놓고, 보고 또 보며, 밤이 다 가고 새벽이 되었다.
그리고 방에 들어가서 아침까지 잤는지, 아니면 그대로 아침식사 준비를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참 신기한것은 그 후로 두통이
맑끔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잎을 다 버린 나무가 서 있는 강변엔 나룻배들이 정박해 있고, 아이를 업고 걸린 여인네가 머리에 광주리를 이고 걸어가고 있다.
그 뒤로 또 다른 여인이 광주리를 이고 가고 있고 검둥이도 따라간다.
내가 정작 눈길을 거두지 못한 부분은 강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 댕기머리 여자였다.
날은 저물고, 배들은 다 들어와 강가에 매여있는데,
강 저편의 배들도 모두 매여져있는데,
저 처자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기다리고 있을까....
강쪽을 바라보고 있는것은 아직 오지않은 그 누구를 기다리고 있슴일까?
기다리는 이는 오기는 올까.... 뭐 이런 상념에 빠져있었던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어째서 내 두통을 사라지게 했을까?
어쩌면, 나는 그때, 나와 같은 한 대상에게서 위안을 얻은듯도 하다.
딱히 기다리는 그 무엇이 있는것도, 바라는것이 있는것도 아니었으나, 어쨋던 나는 실망과 단념과, 그래도 거두지 못하는 그리움이랄까,
뭐, 이런것들을 그림속의 처녀와 공유하고 있는것 같았고, 이윽고 혼자가 아님이 .... ... 나의 외로움은 나 혼자만 겪는것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안고 살아가는 것임을 느꼈던것같다.
이후로 마뜩찮아하던 "미술치료"의 효과에 대해 호의적이 된것은 물론이다.
따라서, 원예치료니, 음악치료니...하는것들에 대해서도 상당히 긍정적이게 되었다.
2013년11월.... 조용한.. .........
- 내가 산 박수근의 "강변" 복사본. 오래되어 색깔이 바랬다. -
<사랑은 단지 꿈이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