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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관 이 야 기

조용한ㅁ 2013. 12. 9. 15:09

남 관 이 야 기

 

 

백 영 수
현대추상미술화가


남관 선생과의 인연은 1947년부터이다.
그해 화신백화점 전시장에서 가진 내 서울 첫 전시회에 이응노선생을 선두로 이쾌대·배운성·남관……. 그리고 또 많은 서울 작가들을 알게 되었다.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 당시 예술인들은 삼삼오오 다방에 몰려다니며 각 분야의 모임과 단체를 만들었다.
화신백화점 전시 이후 나는 10년 이상씩이나 나이가 위였던 선배들이 이상하리만큼 아껴주는 행운을 가졌다. 특히 남선생과는 11년이나 차이가 났지만 함께 있으면 서로가 별로 말을 하지 않아도 편안하였다. 그래서인지 누구보다도 남선생의 생각이 많이 떠오른다.
그 첫 시절 오전 중에 명동에서 우연히 만나 그가 흑석동 그의 집에 가서 점심을 먹자고 하였다. 별 말 없이 명동에서 한강철교를 건너 흑석동까지 걸었다. 포장이 되어있지 않던 길을 일본식 슬리퍼를 신고 한여름 뙤약볕 밑을 걸었다. 이 광경을 마침 전차를 타고 가던 이화여전의 한 학생이 봤다며,‘두 사람의 발과 종아리가 허옇게 먼지에 쌓여 터벅터벅 걷는 것을 보고 눈물이 났어요.’하고 전해주었다. 아무튼 그날 흑석동에서 부인이 말아준 맑은 국물의 국수 맛은 지금도 잊혀지질 않는다.

6.25때 나는 모르고 서울에 남았다가 혼이 나고 1.4후퇴 때엔 제일 먼저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산을 서울보다 더 복잡하게 끼리끼리 몰려다녔는데 우리는 모두“제 2 국민병”에 징집될 만큼 젊은 나이였다.  그 와중에 이종우·남관·김환기·강신석·임완규나 나는“해군종군 화가단”의 신분 속에 제 2 국민병징집을 피하며 LST를 타고 다도해를 다녔다. 그때 배급받았던 팽팽한 군모와 군복이 김환기에게 썩 잘 어울렸고 그는 종종 이 군복을 입고 광복동에 나타나곤 하였다. 그리고 1954년 남선생은 혈혈단신 낯선 파리에 몇 달이 걸리는 배를 타고 떠났다. 그의 용기가 놀라울 뿐이었다.

1968년 귀국한 그는 홍대에서 후학을 가르쳤고, 국전 심사위원장도 하였다.
어느 해인가 심사위원장을 맡은 그가 심사도 하기 전에 상 받을 사람이 정해진 것에 대노하여 심사위원장직을 사퇴해 버렸다.  목소리도 크지 않고 상냥한 눈웃음을 짓는 그가 불의 앞에서 누구보다 강했던 일이다. 그의 깨끗하고 올곧은 성격에 친구가 많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후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작품에 전념하였다. 내가 1977년 파리에 와서 남선생을 만난 것은 더없이 즐거운 일이었고, 그 역시 옛 벗을 만났다며 특유의 눈웃음을 보내곤 하였다. 더하여 우리가 정착한 집과 그의 아틀리에는 도보로 5분이 걸리지 않는 곳이었다. 이때 우리는 참 많은 만남을 가졌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특히 남선생은 1954년 처음 파리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불안과 가난과 외로움을 이야기하였고, 파리화단과의 인연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홍대에 적을 둔 것은 잘못한 일이며“한국에 가지 말았어야 하는데…….”라며“10년만 더 젊었다면 다시 시작하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하였다.

명동에서 흑석동까지 먼지에 덮여 뙤약볕 속을 걷던 두 젊음은 간데가 없고 키를 넘는 나무들이 울창한 룩셈부르크 공원을 산책하는 촌노가 있었다.
따스한 햇볕속의 튈르리공원 벤치에 앉아 두런두런 옛날을 회상하는 초노가 있었다. 한가한 노천카페에서 진한 커피를 앞에 놓고 지나가는 동네 노인들을 바라보고 그것도 모자라 늦은 시간까지 우리 집 살롱에서 옛날로 돌아가던 우리가 있었다. 그 후 남선생은 파리의 아틀리에를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보내는 마음이 섭섭하였지만 “내가 더 오래 살면 남선생 이야기를 후세들에게 남기겠다.”는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몇 번 서울을 방문했을 때 반갑게 만났고,  얼마 후엔 평창동에 집을 짓는다며 눈웃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가 80을 채우지도 못하고 우리를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말을 잊었었다.

그가 떠난 지 20년이 되도록 그의 작품을 대할 기회가 없어 안타까워했는데 이번 환기미술관에서 남관선생 전시를 마련했다 하여 반갑고 고마울 뿐이다. 그의 상냥하고 부드러운 눈웃음 속에 숨어있는 그의 강인함과 열정과 정의로움을 일반적인 세상사와는 담을 쌓고 오로지 그의 작품세계에 몰두했던 진정한 예술가를, 누구의 것을 막론하고 근검절약했던 인간 남관의 이야기를 후세에 전하겠다는 약속은 아직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