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성냥개비 / 이외수
조용한ㅁ
2016. 9. 25. 21:57
성냥개비 / 이외수
그대는 알고 있을까
물소리 저 홀로 깊어지는 가을날
그대 유년의 바람부는 벌판에서
나는 한 그루 몽상의 미류나무
가지마다 순금빛 음표들을 나부끼며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네
그러나 지금은 아니라네
유년의 물소리는 머나 먼 바다에 이르러
돌아오지 않고 통로가 보이지 않는
직육면체의 단칸방
나는 전신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쪼개진 채
가느다란 뼈 하나로 남아 있다네
그대 손바닥 위에 내가 놓여 있어도
그대는 기억할 수 없으리
그대 유년의 바람부는 벌판에서
나는 한 그루 몽상의 미류나무
지금은 소멸의 갈망 속에 침묵하다가
그대 가벼운 손짓 한 번에도
점화되는 영혼의 불꽃
그대는 끝내 알지 못하리
어둠이 짙을수록 눈부시게 소멸하고
소멸한 그 자리에
내가 느낌표 하나로 남아 있어도
- 시화집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2000,고려원>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