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 마종기
높고 화려했던 등대는 착각이었을까
가고 싶은 항구는 찬비에 젖어서 지고
아직 믿기지는 않지만
망망한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구나
같이 늙어 가는 사람아
들리냐
바닷바람은 속살같이 부드럽고
잔 물살들 서로 만나 인사 나눌 때
물안개 덮인 집이 불을 낮추고
검푸른 바깥이 천천히 밝아왔다
같이 저녁을 맞는 사람아
들리냐
우리들도 처음에는 모두 새로웠다
그 놀라운 처음의 새로움을 기억하느냐
끊어질 듯 가늘고 가쁜 숨소리 따라
피 흘리던 만조의 바다가 신선해졌다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몰랐다
거기 누군가 귀를 세우고 듣는다
멀리까지 마중 나온 바다의 문 열리고
이승을 건너서 집 없는 추위를 지나서
같은 길 걸어가는 사람아
들리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