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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의 작품들 3(펌)

야마모토(山本方子)와 1945년 결혼하여 2남을 두었다 1946년 일시 원산사범학교에 미술교사로 있었으나 공산치하가 되어 창작활동에 많은 제한을 받게 되자 1951년 북을 떠나 제주도 서귀포에 도착하여 겨우 한평 남짓한 방한칸에서 일 년여 기간 동안 아내와 함께 피난 생활을 했다 이시기에 그는 '서귀포의 환상' '섶섬이 보이는 풍경' '바닷가와 아이들' 등의 작품을 그렸고 그 해 12월 부산으로 옮겨간다 이무렵 그는 아내와 두아들을 일본으로 떠나 보낸다 홀로 남은 그가 그리움으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다가 결국 1953년 밀항하면서 까지 찾아간 아내가 한나라의 위대한 화가가 그런 치욕적인 밀항을 하여서야 되겠느냐며 다시 돌아가길 권하자 다시 귀국한 후 편지를 통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늘 전했다 한다 그런 그리움을 삭히지 못한 탓인지 최초로 개인전을 치를 때까지 삼 년여 세월 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쇠약해진다 1955년 사촌들이 서울로 이중섭을 데리고 왔는데 자신의 머리를 박박 깎거나 엄지 손가락을 피가 나도록 문지르는 일을 되풀이 하는 격한 행동을 보였다 사람들이 아무리 말려도 소용 없고 이유를 물으면 아내가 미워 죽이려 한다고 했다 한다 지인들이 문병을 오면 화가와 시인들을 욕하며 죽인다고 증오심을 드러내기도 하고 음식도 거부하며 거의 먹지도 않자 몸은 야위고 뼈만 남는 지경에 이른다 그는 현대 미술 작가전과 개인전 등을 개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에 몰두하다가 55년에 정신 착란 증세로 병원에 입원한 후 1956년 서대문 적십자 병원에서 정신 이상과 영양실조로 그토록 그리워하던 가족들과의 오손 도손한 삶을 끝내 이루지 못하고 40세의 짧고 서글픈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가 추구하였던 작품의 소재는 소·닭·어린이〔童子〕·가족 등이 가장 많으며 불상·풍경 등도 몇 점 전하고 있다 소재상의 특징은 향토성을 강하게 띠는 요소와 동화적이며 자전적인 가족에 대한 정감의 요소이다 〈싸우는 소〉·〈흰소〉(이상 홍익대학교박물관 소장) 〈움직이는 흰소〉·〈소와 어린이 황소〉(이상 개인 소장)·〈투계〉(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등은 전자의 대표적인 작품이며 <닭과 가족〉〈사내와 아이들〉〈집떠나는 가족〉(이상 개인 소장)과 은지화(담배갑 속의 은지에다 송곳으로 눌러 그린 선각화)들은 이중섭을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에서 드러난 생시의 많은 인간적인 에피소드와 강한 개성적 작품으로 1970년대에 이르러 갖가지 회고전과 재평가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