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화단 '큰별' 지다
기사입력 2008-12-11 15:09 고선주 rainidea@gwangnam.co.kr
'수채화 1인자' 배동신 화백 어제 별세
독창적 화풍.. 광주 최초 개인전도
10일 타계한 배동신(裵東信, 1920~2008) 화백은 한국 현대미술계의 1세대 화가로 수채화의 지평을 넓힌 화단의 큰별로 평가받아왔다.
평생 수채화만을 고집해온 화가 배동신 화백은 근대기 서양화단의 형성 과정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수채화 외길을 걸어온 수채화의 산증인으로 70여년동안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추구해왔다.
그래서 한국 근·현대화단의 ‘수채화 1인자’로 자리매김됐다.
유년시절 제도교육을 받지 못한 배동신은 가출해 금강산에서 박수근을 만나 그림의 기초를 익힌데 이어 평양에서 장이석을 만나 그림공부에 더욱 매진했다.
또 문학수로부터 일본유학을 권유받고 화가로서 인생길을 걷게 되면서 한국근·현대화단의 기라성 같은 화우들과의 조우, 화업 밑천이 됐다는 평이다.
배동신은 1920년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서 출생, 부친이 한약방을 운영해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했으며 17세에 그림 공부를 위해 일본 유학길에 올라 1939년 가와바다화학교(川端畵學校)에 입학, 1년 동안 데생 등 그림의 기본기를 배웠다.
해방 직전인 1945년 2월 귀국해 전남 나주시 금천의 한 농가에 화실을 마련해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 1947년 10월 제1회 수채화 개인전을 광주도서관에서 열어 해방 이후 광주 첫 개인전을 기록했다. 이후 1986년까지 26회의 수채화 개인전을 열었다.
배동신은 1978년 광주를 떠나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1989년 다시 전남 여수로 옮겨 수채화 작업을 지속해왔다.
그의 작품세계는 ‘독창적 수채화 세계 확립’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림의 대상을 수직으로 정착시키는 힘이 있고 이를 평면화해 표현하는 것과 화면에 물감을 두텁게 칠해 심층을 만드는 두 가지 큰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런 두 가지 특성 때문에 인물이나 대상이 대단히 환상적인 존재로 표현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가 즐겨 사용한 소재는 고향의 명산 무등산을 물론이고 목포항과 정물, 여인상, 비정형적으로 가슴이 확대된 누드 등이 작업 대상이었다.
누드는 마치 무등산처럼 펑퍼짐하고 이상한 비례를 보이고 있는데 꺾이고 접힌 흔적과 긁어내고 문지른 표면 효과가 곧 인체를 통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조형성을 드러내는 점이 특징으로 꼽혔다.
한편 빈소는 여수성심병원 장례식으로 발인은 12일 치러지며 장지는 여수문수동 성당 묘원이다. (061)653-0699.
◇故 배동신 화백 주요 약력
▲1920년 광주 광산구 송정동 출생
▲금강산서 박수근과 조우, 그림지도 받음
▲1939년 일본 가와바다(川端)화학교 입학
▲1943년 일본 자유미술가협회전 출품
▲1945년 귀국하여 나주 금천에 정착
▲1947년 광주에서 제1회 개인전 가짐
▲1968년 수채화 창작가 협회 창립전 참가
▲1970년 황토회 창립전 참가
▲1977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미술대상전 초대
▲1985년 한국현매미술 40년전
▲1989년 광주전남미술50년전
▲1996년 한국누드미술 80년전
▲1998년 오지호미술상 수상 기념 ‘수채화 60년전’
독창적 화풍.. 광주 최초 개인전도
최효삼씨와 광주시립미술관 전시장을 둘러보던 생전의 배동신 화백(왼쪽). |
10일 타계한 배동신(裵東信, 1920~2008) 화백은 한국 현대미술계의 1세대 화가로 수채화의 지평을 넓힌 화단의 큰별로 평가받아왔다.
평생 수채화만을 고집해온 화가 배동신 화백은 근대기 서양화단의 형성 과정에서 출발해 지금까지 수채화 외길을 걸어온 수채화의 산증인으로 70여년동안 동양과 서양의 조화를 추구해왔다.
그래서 한국 근·현대화단의 ‘수채화 1인자’로 자리매김됐다.
유년시절 제도교육을 받지 못한 배동신은 가출해 금강산에서 박수근을 만나 그림의 기초를 익힌데 이어 평양에서 장이석을 만나 그림공부에 더욱 매진했다.
또 문학수로부터 일본유학을 권유받고 화가로서 인생길을 걷게 되면서 한국근·현대화단의 기라성 같은 화우들과의 조우, 화업 밑천이 됐다는 평이다.
배동신은 1920년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에서 출생, 부친이 한약방을 운영해 비교적 부유한 집안에서 성장했으며 17세에 그림 공부를 위해 일본 유학길에 올라 1939년 가와바다화학교(川端畵學校)에 입학, 1년 동안 데생 등 그림의 기본기를 배웠다.
해방 직전인 1945년 2월 귀국해 전남 나주시 금천의 한 농가에 화실을 마련해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 1947년 10월 제1회 수채화 개인전을 광주도서관에서 열어 해방 이후 광주 첫 개인전을 기록했다. 이후 1986년까지 26회의 수채화 개인전을 열었다.
배동신 작 '누드' |
배동신은 1978년 광주를 떠나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1989년 다시 전남 여수로 옮겨 수채화 작업을 지속해왔다.
그의 작품세계는 ‘독창적 수채화 세계 확립’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림의 대상을 수직으로 정착시키는 힘이 있고 이를 평면화해 표현하는 것과 화면에 물감을 두텁게 칠해 심층을 만드는 두 가지 큰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런 두 가지 특성 때문에 인물이나 대상이 대단히 환상적인 존재로 표현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가 즐겨 사용한 소재는 고향의 명산 무등산을 물론이고 목포항과 정물, 여인상, 비정형적으로 가슴이 확대된 누드 등이 작업 대상이었다.
누드는 마치 무등산처럼 펑퍼짐하고 이상한 비례를 보이고 있는데 꺾이고 접힌 흔적과 긁어내고 문지른 표면 효과가 곧 인체를 통해 투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조형성을 드러내는 점이 특징으로 꼽혔다.
한편 빈소는 여수성심병원 장례식으로 발인은 12일 치러지며 장지는 여수문수동 성당 묘원이다. (061)653-0699.
◇故 배동신 화백 주요 약력
▲1920년 광주 광산구 송정동 출생
▲금강산서 박수근과 조우, 그림지도 받음
▲1939년 일본 가와바다(川端)화학교 입학
▲1943년 일본 자유미술가협회전 출품
▲1945년 귀국하여 나주 금천에 정착
▲1947년 광주에서 제1회 개인전 가짐
▲1968년 수채화 창작가 협회 창립전 참가
▲1970년 황토회 창립전 참가
▲1977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미술대상전 초대
▲1985년 한국현매미술 40년전
▲1989년 광주전남미술50년전
▲1996년 한국누드미술 80년전
▲1998년 오지호미술상 수상 기념 ‘수채화 60년전’
▲2003년 부산수가화랑 초대전
배 동 신
자화상 / 1953 / 52x74cm
자화상 / 1953 / 38x27cm
여인상 / 1954 / 13x21cm
소녀상 / 1954 / 45x40cm
누드 / 1959 / 64x45cm
서 있는여인 / 1964 / 62x29cm
의자에 앉은 여인 / 1964 / 62x40cm
적의의 여인 / 1964 / 62x40cm
여인좌상 / 1966 / 33x23.5cm
누드 / 1970 / 63.5x47cm
누드 / 1970 / 26x18cm
누드 / 1970 / 19x27cm
누드 / 1975 / 38x27cm
크로키 / 1976
크로키 / 1976
사람 Ⅴ / 1977 / 25x32cm
누드뎃생 / 1978 / 78x55cm
스케치 / 1978
인물-좌상 / 1980 / 75.5x52cm
누드뎃생 / 1982 / 78x55cm
누드 / 1983 / 78x55cm
나부A / 1985 / 50x67cm
여인-인물 / 1995 / 27x24cm
여인-인물 / 1995 / 27x24cm
여인-인물 / 1995 / 27x24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