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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글/수필.기타


지금 나는 꼬불꼬불하고 건조하고 인적 없는 낡은 길을 그리워한다. 
그 길은 마을 먼 곳으로 나를 이끈다. 
나를 지구 너머 우주로 인도하는 길, 
그러나 유혹하지 않는 길, 
여행자의 이름을 생각하지 않아도 좋은 길, 
농부가 자신의 농작물을 짓밟는다고 불평하지 않는 길, 
자신의 시골 별장을 무단으로 침입했다고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 길, 
마을에 작별을 고하고 걸음을 재촉해도 좋은 길, 
순례자처럼 정처 없이 떠나는 여행의 길, 
여행자와 부딪치기 어려운 길, 
영혼이 자유로운 길, 
벽과 울타리가 무너져 있는 길,
발이 땅을 닫고 있다기보다는 머리가 하늘로 향해 있는 길, 
다른 행인을 만나기 전에 멀리서 그를 발견하고 인사 나눌 준비를 할 만큼 넓은 길, 
사람들이 탐을 내 서둘러 이주할 정도로 토양이 비옥하지 않은 길, 
보살필 필요가 없는 나무뿌리와 그루터기 울타리들이 있는 길, 
여행자가 그저 몸 가는대로 마음을 맡길 수 있는 길, 
어디를 행해 가든 오든, 아침이든, 저녁이든, 정오든, 자정이든 별 차이가 없는 길, 
만인의 땅이어서 값이 헐한 길, 
얼마만큼 왔나 따져볼 필요 없이 편안하게 걸으면서 생각에 몰두할 수 있는 길, 
숨이 차면 천천히 왔다 갔다 하는 변덕마저도 소중한 길, 
사람들과 만나 억지로 저녁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거짓 관계를 맺지 않아도 좋은 길, 
지구의 가장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갈 수 있는 길, 
그 길은 넓다. 
그 길에 서면 떠오르는 생각도 크고 넓어진다. 
그길로 바람이 불어와 여행객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러고 나서 나의 인생이 나에게로 온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