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강연호
이제는 행복해졌느냐는 안부가 그에게 온다
혓바늘이라도 일 것 같은 저녁의 비애 속으로
뚝뚝 떨어지는 질문의 풍경
행복? 그가 낮게 되뇌여 보는 입술의 움직임을
귀청이 따라가다 포기한다
별들이 빛나 보이는 건 멀리 있기 때문일까
멀리서는 그 역시 빛나 보일까
생각은 삼십 촉 알전구보다 길게 그늘을 드리우고
한때는 그에게도 서늘한 추억이었을
연애나 정열 같은 것들이
읽다 놓친 신문의 부고란같이 싸늘하다
기를 쓰고 행복해지고 싶었고
어쩔 수 없이 행복해져야 했지만
그는 안부가 숨겨놓은 행간이 문득 궁금해진다
세월은 너그럽지 않았다고
자책인지 불화인지 뚜렷하지 않은 날숨이 터진다
행복이라는 낱말 근처에는
그의 눈시울을 적시는 무엇인가가 어려 있다
그는 이제 주간지의 현란한 고백처럼 텅 빈다
묘비명-강연호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이
나는 살았다 집도 애인도 하나가 아니라서
더러 버리고 버림받았지만
그때마다 죽고 싶었지만
목숨은 하나라서 나는 죽지 않았다
내 목숨, 내 사랑하는 감옥에 갇혀
나는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죽은 듯이 살았다
때 맞춰 밥 꾸역꾸역 우겨넣으며
대충 행복했고 병신같이 바보같이
이제 내 목숨 건 탈옥에 대하여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소한 몇 개의 그리움
아직도 기억나는 몇 개의 전화번호
그리고 몇 사람의 슬픈 조문에 대해
나는 단호히 말할 수 있다
가장 자유롭게 살고 싶어
나 목숨 걸고 여기 누웠다
세상은 너무 큰 감옥
그 바깥이 아니면 자유는 없다
나는 탈옥했을 뿐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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