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상과 화가 김환기의 아내였던 수필가 김향안(본명 변동림) 여사가 2004년 2월 29일 88세로 뉴욕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장례식은 지난 3일 아들 김화영씨등 친지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고, 김여사의 유해는 뉴욕 근교 김환기화백의 묘소옆에 묻혔다.
경기고녀와 이화여전 영문과 출신인 김여사는 1936년 18세 문학소녀시절에 오빠인 화가 구본웅(1906~1953)의 친구였던 천재시인 이상(1910~1937)을 만나 짧은 결혼생활을 거쳐 다음해 사별했다.
-구본웅은 김향안의 오빠가 아니라,
김향안-본명 변동림의 이복언니 변동숙의 의붓아들이다-
수화 김환기(1913~1974)와는 1944년 결혼후 56년 파리를 거쳐 60년대 이후 말년까지 뉴욕에 체류했다. 그는 파리 체류시절 미술 평론을 공부했으며, 김화백의 20주기인 94년 김환기전기‘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를 펴냈고, 95년엔 수필집 ‘카페와 참종이’를 출간했다.
임종을 지켰던 첫 남편 이상에 대해 김여사는 86년 ‘문학사상’에‘재능있는 시인과 문학소녀의 만남’이었다며
, ‘그는 가장 천재적인 황홀한 일생을 마쳤다. 그가 살다간 27년은 천재가 완성되어 소멸되는 충분한 시간이다… 천재는 또 미완성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일본 시인의 소개로 처음 만난 김화백은 당시 서울대 미대, 홍익대 미대교수였으며, 결혼후 두사람은 파리와 뉴욕에서 줄곧 이국생활을 했다. 74년 김화백이 뉴욕서 임종한 뒤에도 김여사는 그와 살던 뉴욕 아파트에 30년간 거주하며 1년에 한 두차례 서울을 찾았다.
김화백 사후 그의 유작과 유품을 관리해온 김여사는 지난 92년 11월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건립, 기획전및 출판 세미나등의 사업을 펼쳐왔다. 90년대 환기미술관 관장직을 맡았던 미술평론가 오광수씨는 “고인은 남편인 수화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기리기 위한 집념과 일념이 남달랐다”며 회고했다. 환기미술관은 유화 300여점과 데생 500여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최근 ‘1965~68, 산월과 문자그림전’을 열고 있다.
이상, 김환기의 뮤즈 김향안.
김향안-변동림-과 이상, 김환기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나고 싶다.
김환기와 김향안의 결혼식
나는 수필가 김향안을 수화(樹話) 김환기 화백의 아내요,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하며 주로 파리를 소재로 글을 쓴 수필가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이상(李箱)의 아내였던 변동림이라니.
두번째 각혈을 하게 된 이상은 1936년 여름, 변동림과 돈암동 흥천사에서 혼인했다. 생활은 궁핍했고 몸은 극도로 허약해진 상태에서 그는 도약을 위한 탈출로 일본행을 결심했다.
궂은 비가 축축히 내리는 플랫폼에서 결혼한 지 반년도 못된 어린 신부와 동생,그리고 몇 사람의 친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헙수룩한 가방을 들고 그는 기차에 올랐다. 6개월 뒤,이상은 고국 땅 미아리 공동묘지로 와서 묻혔다. 그의 아내가 일본에 달려가 임종을 지켜보았다.
화장된 남편의 유해를 안고 돌아온 변동림을 나는 남달리 기억하고 있었다. 그 뒤 필명 김향안으로 수필을 계속 써왔고 8년 뒤인 1944년 김환기와 결혼했다. 소르본느대학 및 에콜 드 루브르에서 미술사와 미술평론을 공부했고 김환기 그림의 지평을 전 세계로 넓힌 ‘김환기 미술’의 완성자이기도 했다.
천재 시인의 어린 아내로,그리고 천재 화가의 반려자로서 예술적 영감을 그들에게 전해 준 우리 예술계의 뮤즈였다. 이에 또 한 사람의 *뮤즈*가 떠오른다. 시인 알프레드 뮈세와 음악가 쇼팽을 사랑한 조르주 상드.
일찍이 자유 연애를 구가하며 문필가로 이름을 날린 이 남장 여인, 조르주 상드는 연하의 이 두 남성을 극진히 사랑하고 돌보았다. 상드와 사랑에 빠진 동안 쇼팽의 창작의 샘은 넘쳐흘렀다.
뮈세도 의욕적으로 글을 썼다. 하건만 그녀에게 버림받은 뒤 쇼팽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고 음악의 샘도 말라 버렸다. 뮈세도 상드와의 어긋난 사랑으로 무절제한 퇴폐에 빠져 비참한 생애를 마감했다.
몇 해 전, 공교롭게도 나는 뮈세와 쇼팽의 동상이 마주 바라다 보이는 페르 라셰즈 무덤 안에 서 있었다. 쇼팽의 죽은 나이는 39세. 뮈세는 44세였다. 상드와의 파국은 이 천재 예술가들의 심신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김향안 여사는 1992년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건립하면서 마루 한쪽 한쪽에까지 환기 그림의 느낌과 결을 맞추느라고 애썼다는 일화는 우리를 감동스럽게 하고 있다.
88세의 천수를 누리다가 3월 3일 뉴욕 근교에 있는 김환기 화백의 무덤 옆으로 돌아간 김향안 여사. 30여년 만에 만난 수화와 다시는 이별 없는 ‘수향(樹鄕)산방’에서 영생의 복을 누리시기를 빈다.
<김향안과 조르주 상드 : 맹난자 / 수필가 2004년>
수화 김환기(樹話 金煥基 1913. 2. 27 ~ 1974. 7 25)
'어디서 무엇이 되어다시 만나랴' 1970, 136x172, Oil on cotton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김광섭(이산 怡山 金光燮 1905.9.22 ~1977)
김향안 여사
(사진 왼쪽 부터 이상, 박태원, 김소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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