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름다운글/수필.기타

네가 어떤 삶을 살든 중에서

 

 

 

 

유령 같은 사랑.
  당신은 그런 사랑을 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렇게 유령 같은 사랑에 시달리고 있었다.

형체도 없고 소리도 없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죽음 같은 사랑.

나는 사랑을 하였지만 그것은 나의 사랑이 아니었다.

사랑은 희미하게 내 주위를 떠돌고 있었을 뿐,

나를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것을 지켜볼 수만 있었다.


  당신은 그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그것을 향해 손을 내밀 수도 없었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나는 사랑 속에 빠진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부터 한 걸음

혹은 그 이상을 떨어져서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것은 마치 사랑이 아닌 것처럼 내 눈에 비쳐졌다.


  나는 객관적이고 냉정한 마음으로 나의 사랑이 제멋대로 놀아나는 것을 보았다.

제발 그러지 말아라, 내가 아무리 빌어도 그것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생명으로 충만한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얼마 못 가 힘을 다하고 사라지리라고 믿었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심심한 일상으로 돌아오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유령 같은 나의 사랑은 그것조차 허락해주지 않았다.


  참을 수 없는 밤이 되면, 나는 때때로 그것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제 끝을 내!
  그러나 그것은 잔인하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끝을 낼 수는 없어. 처음부터 시작이 없었으니까.


  생각해보면, 나는 그의 눈빛 하나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그의 나이조차 몰랐다.

그가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무슨 음식을 잘 먹는지, 집에서는 어떤 음악을 듣는지, 아니 듣지 않는지,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무슨 비디오를 빌리는지, 아니 빌리지 않는지,

그의 방은 지하인지 일층인지 아니면 이십층짜리 아파트의 꼭대기인지,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그의 푸른 야구모자밖에 없었다.
  나는 출구가 없는 미로 속에서 길을 잃었다.


- [나는 하나의 레몬에서 시작되었다] pp.197 - 200
 

하지만 지금 나는, 사랑이란 물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생겨나고,

우리가 모르는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 사랑의 본질이다.

 

흐르고 흐르다가 끝내 이르게 되는 곳이 어디인지,

사랑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결코 알 수 없다.

 

그 사랑은 깊은 산속에서 길을 잃고

홀로 고립되어 말라버릴 수도 있고,

 

혹은 무한한 축복을 입어 큰 바다로 스며들 수도 있다.

 

기억하라, 사랑은 흐르는 것이다.

 

-

 

 

황경신 [PAPER] 2006.02월호.24p중 

사랑한다는 말,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
변했다는 말, 변하지 않았다는 말,
잊었다는 말, 잊지 않았다는 말.
 
어느 쪽이 더 새빨간 거짓말일까.
 
 
_ 황경신 PAPER June  Editor's diary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지워 나가며

체념을 배우는 일이다.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내가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것들을

인생에서 쓸쓸히 지워 나가며

스스로에게 체념을 가르치는 일이다.

 

 

-

 

 

 

박광수 [참 서툰 사람들]중 

바람이 거세다는 사실보다
바람이 거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더 힘들다는 것을 절감하며 산다.

 

사람이 저마다 외롭다는 사실보다
사람이 저마다 외롭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이 더 힘든 것을 말이야.

 

 

-----

 

 네가 힘들다는 사실보다
힘들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너 자신과 화해해야겠지.

 

-

 공지영 산문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것이다] 중 

희망과 소망을 혼동하지 말자.

우리는 온갖 종류의 수천가지 소망을 가질 수 있지만

희망은 단 하나 뿐이다.

우리는 누군가 제 시간에 오길 바라고,

시험에 합격하기를 바라며

르완다에 평화가 찾오기를 소망한다.

이것이 개개인의 소망들이다.

 

희망은 전혀 다른 것이다.

 

-----

 

희망이란 삶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

 

 

공지영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중 

분명히 선택은 자신이 해놓고 나중에 잘못된 선택인 줄 알게 되면 타인을 원망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 자좀심. 그것이 결국 자신의 발등을 찍는

도끼임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평생을 절름거리며 살게 되는 것이다. -p.43

 

이 세상에는 완전한 적군도 존재하지 않고 완전한 아군도 존재하지 않는다.

엄밀히 따지면 내 바깥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른 내 모습에 불과하다. -p.107

 

성공을 위해서는, 기술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을 배우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

모든 성공의 배면에는 언제나 정신이라는 말뚝이 궅건히 박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만을 간절히 원하지 그 말뚝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다. -p.117

 

 

 

하늘 아래 타인은 아무도 없다. 알고 보면 모두 동일한 인연의 거미줄에 연결되어

있는 존재들이다. 다만 그 사실을 인지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드물 뿐이다. -p.218

 

걷는 사람도 넘어질 때가 있고 뛰는 사람도 넘어질 때가 있다.

걷다가 넘어졌든 뛰다가 넘어졌든 넘어졌다고 낙오자는 아니다.

낙오자는 넘어지는 걸 염려해서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이다. -p.226

 

지나간 버스를 세우려면 버스보다 빨리 달리는 수밖에 없다.

치열하게 사는 모습은 아름다운 모습이지 쪽팔리는 모습이 아니다. -p.248

 

 

- 출처 : 아불류 시불류(我不流 時不流), 이외수
 

바람이 부는 것을 보았는가.  이런 것은 아닐까.

 세상에 100년에 한 번씩 맥박이 치고, 1000년에 한 번씩 숨을 쉬며, 100000년에 한 번씩 밥을 먹는

거대한 짐승이 있어, 지금 불어가는 저 바람은 어쩌면

그 짐승이 부르는 노래 가운데 한 음절,1000000만 년쯤은

불러야 비로소 한곡이 끝이 나는, 그런 노래 중에 음표 하나가 아닐까.

우리는 알 수 없겠지. 그렇게 거대한 짐승이 산다 해도,

그렇게 큰 짐승이 그렇게 장대한 호흡으로 그렇게 위대한 노래를 불러도, 우리는 알 수 없겠지,

그것이 그 짐승의 노래라는 것은 꿈에도 모르는 채로

더러는 귀찮아 하며, 더러는 황홀해 하며, 때로는 즐거워하고, 가끔은 절망하며 살다 죽겠지.
바람이 불면 "살아 봐야겠다" 하고 말한 시인이 있었다.

나는 바람이 불면 묻고 싶다.저 바람 속에 또 어떤 짐승이 자라는가?

 

최인석 / 내 영혼의 우물 ...서문
 

 

아니오

 

미워한 적 없어요,
산마루
투영한 햇빛 쏟아지는데
차마 어둔 생각했을리야


아니오
괴뤄한 적 없어요,
능선 위
바람같은 음악 흘러가는데
뉘라, 색동 눈물 밖으로 쏟았을리야


아니오
사랑한 적 없어요,
세계의
지붕 혼자 바람 마시며
차마, 옷입은 도시 계집 사랑했을리야.


-신동엽, <아니오>  

그리운 마음 기댈 곳 없어, 동그라미 그리며 달래봅니다.
하고픈 말 동그라미 밖에 있고, 드리고 싶은 마음 동그라미 안에 있습니다.

동그라미 하나는 소첩이고, 동그라미 두개는 당신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저에게 있고, 제 마음은 당신께 있습니다.

달은 기울었다가 다시 차고, 찼다가는 다시 기웁니다.
완전한 동그라미는 우리가 만난 것이며, 반만 그린 동그라미는 헤어진 것입니다.

제가 두 개의 동그라미를 아주 가깝게 그렸기에,
당신은 저의 마음을 아실 것입니다.

말로 다하지 못하는 그리움은 동그라미처럼 돌고 또 돕니다.

 

相思欲寄無從寄,畵個圈兒替。 話在圈兒外,心在圈兒裡。
單圈兒是我,雙圈兒是ni。 ni心中有我,我心中有ni。
月缺了會圓,月圓了會缺。 整圓兒是團圓,半圈兒是別離。
我密密加圈,ni須密密知我意。 還有數不盡的相思情,我一路圈兒圈到底。
........

.<권아사(圈兒詞)> 또는 <상사사(相思詞)>

/주숙진(朱淑眞). 남송(南宋,1091년 좌우) 때의 여류 작가
 

<자책 自責> - 朱淑眞


여자가 시문을 농하는 건 정말 죄스러우니
어찌 달을 읊고 바람을 노래하랴

쇠벼루가 닳도록 글 짓는 건 내 일이 아니니
수 놓다 바늘 분지르는 데 공을 세우리

女子弄文誠可罪, 那堪詠月更吟風.
磨穿鐵硯非吾事, 繡折金針却有功

 울적한 마음 풀 길 없어 시를 읽노니
시 속에는 또 이별의 말만 있어
내 마음은 더욱 쓸쓸해지기만 하니
비로소 알겠네 영리하기 보다는 어리석은 게 좋음을

悶無消遣只看詩, 又見詩中話別離.
添得情懷轉蕭索, 始知伶리不如癡.

[출처] <자책 自責> - 朱淑眞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의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을 갖고

욕심은 없이
결코 성내지 않고
언제나 조용히 웃고 있는
하루에 현미 사홉과
된장국과 조금 야채를 먹고

 

모든 일에
타산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잘 보고 들어 이해를 하고

그리고 잊지 않고

들판의 소나무 숲 그늘
작은 초가집에 살아

 

동쪽에 병든 아이 있으면
가서 간호해 주고


서쪽에 피곤한 어머니 있으면
가서 그 볏짚을 져 주고

남쪽에 죽어가는 사람 있으면
가서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해 주고

북쪽에 싸움과 소송 있으면
부질없는 일이니 그만두라고 말하고

 

가뭄이 들었을 때는 눈물을 흘리고
추운 여름은 허둥지둥 걸어
모든 사람에게 멍청이라고 불리고

칭찬받지도 않고

걱정시키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

난 되고 싶다.

 


---- 미야자와 겐지
 

 

 황 지 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모든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 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바람에 의해 이동하는 사막이 있고;
뿌리 드러내고 쓰러져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 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리는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그 고열(高熱)의
에고가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내가 자청(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녔다
나를 위한 헌신, 나를 위한 나의 희생, 나의 자기 부정;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알을 넣어 주는 바람뿐

 


[출처] 뼈아픈 후회

 

'아름다운글 > 수필.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남자 가을여자  (0) 2010.09.13
정년퇴직을 앞둔 한 중년남자가 가만가만 들려주는 .....  (0) 2010.09.02
내 자신이 싫어질때 외....  (0) 2010.08.25
가던 길 멈춰 서서  (0) 2010.08.12
인연  (0) 2010.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