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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글/수필.기타

해질녘에 아픈 사람 (신현림

해질녘에 아픈 사람 (신현림)
아무것도 아닌 것의 힘
사람이 그리운 싱글맘
 
유명은 기자
▲     © 세종신문
늦은 밤, 책장 앞에서 서성거리다 시집 한 권을 꺼내들었다. 겉장은 때가 묻고 누렇게 변색 되었다. 세월의 흐름 앞에 눈가의 주름이 늘 듯, 신현림 시인의 <해질녘에 아픈 사람>도 내 책장에서 늙어가고 있었다.

가끔,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보다보면 눈물이 핑 돌때가 있다. 이불을 차내고 잠든 어린 딸을 보다가, 동그란 눈으로 말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강아지를 보다가 느닷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다.

책장에서 <해질녘에 아픈 사람>을 꺼내 들었을 때, 그때 역시 가슴이 먹먹했을 것이다. 
삶이 벼랑이라고 느껴졌을 때, 나는 해질녘의 창가에 앉아 이 시집을 읽으며 참 많이도 울었다. 나와 그녀의 처지가 같기도 했지만, 강하게 살아남은 그녀와 달리 나는 절벽에 매달린 자신을 내려다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 한 몸 뜨겁게 해다오
지푸라기처럼 힘없는 몸을
강렬히 살아 있다 느껴지게
꿈꾸기엔 늦지 않다 위로하게
나를 두렵게 하는 모든 것 속에서
불황과 실업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두가 떠나간 자리에서
나는 홀로 춥고 무섭다
옷장 속처럼 캄캄한 날에
내게서 해와 강물이 빠져나가고

-‘꿈꾸기엔 늦지 않아’ 중에서

그랬다. 정말이지 너무도 춥고 무서운 세월이었다. 무력한 자신에게 굴복하며 한없는 독기만 뿜어내던 가엾은 시절...
그러다가 <해질녘에 아픈 사람>이 출판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러저런 일로 신현림 시인을 두어번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의 아픔에 대해 보듬고 시큰해 했다.

그녀는 가식없고 솔직했다. 그녀의 시 또한 솔직하다. 어느면에서는 대담하기도 하다. 여린 감성위에 우뚝 선 칼날같은 슬픔이 그녀를 더 강하게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내가 비관적이고 시니컬했다면 지금은 편안해졌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생겼고, 무엇보다 삶이란 지금 이 순간, 최대한 충실해야 한다는 것과 다른 사람과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하는 그녀.

상처와 실패와 좌절과 무서움조차 그녀앞에선 견고해지지 못한다.
“여자에게 독신은 홀로 광야에서 우는 일이고, 결혼은 홀로 한평짜리 감옥에서 우는 일이 아닐까”라고 말하던 그녀는 헤어지는게 힘들어서 계속 살다, 남은 생의 실타래가 엉키는 건 싫어 결국 싱글맘이 되어 씩씩하게 살고 있다.
그런 그녀의 시집을 읽다 보면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게 되고 더불어 내 삶, 이웃의 아픔을 돌아보게 된다.

서녘 하늘로 지는 노을이 가슴을 메어지게 한다면 신현림의 서녘하늘은 서늘하게 아름답다.  징하게 눈물나게 하는 서늘하고 알싸한 그녀의 삶을 엿보다 보면 산다는 것이 그렇지. 그래, 그렇구나. 나만 아픈 것이 아니라 너도 그렇게 아팠구나, 라고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곰팡이처럼 푸른 단어조차 말끔한 시어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재주를 신현림은 지녔다. 그래서 더욱 그녀가 부럽다.

불안하다고?
인생은 원래 불안의 목마 타기잖아
낭떠러지에 선 느낌이라고?
떨어져 보는 거야
그렇다고 죽진 말구
떨어지면 더 이상 나빠질 것도 없어
칡넝쿨처럼 뻗쳐오르는 거야
희망의 푸른 지평선이 보일 때까지
다시 힘내는 거야

- ‘너는 약해도 강하다’ 중에서

삶이 고단하고 신산하다고 느껴질 때, 한 번쯤 신현림을 만나보자.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침대를 타고 달렸어’ 외 사진 에세이, 미술 에세이 등 여러 분야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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