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밥따는 아가씨(采蓮曲) 허 난설헌 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한데 맑은 가을호수 옥처럼 새파란데 蓮花深處繫蘭舟(연화심처계란주)라 연꽃 무성한 곳에 목란배를 매었네 逢郞隔水投蓮子(봉랑격수투련자)하고 물건너 임을 만나 연밥 따서 던지고는 或被人知半日羞(혹피인지반일수)하네 행여 남이 알까봐 반나절 부끄러웠네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오늘은 이맘때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자태를 드러내는 연꽃을 노래한 시를 소개합니다. 이 꽃은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두는 숱한 고사를 남겼습니다. 시인들도 이 꽃을 빌어 그들의 정한을 표현하였습니다. 당나라 이백의 채련곡은 너무 유명해 아직까지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 시의 제목을 <연밥따는 아가씨>라고 붙인것도 그러한 연유때문입니다. 중국강남에서는 아가씨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을 사랑한다’는 의미로 연밥을 주었다고 합니다. 요즘 발렌타인데이에 쵸크릿을 주는 것처럼요. 조선 시대 신분이 뚜렷한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마음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초가을 맑은 하늘이 호수에 비쳐 파아란 구슬처럼 영롱할 때 너른 연잎 사이로 꽃이 우거진 곳에 혼자서 타는 작은 쪽딱배(목란배)를 매어두고 님을 기다리는 아가씨. 그녀는 막상 호수 저쪽에 그리워하는 님이 보이지만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사랑의 정표인 연밥만 따서 슬쩍 던져두고는 달아납니다. 혹시 남이 그걸 보았을까 혼자서 반나절 동안 붉은 볼로 부끄러워한다는 마지막 구에서 그 아가씨의 심정이 잘 드러납니다. 조선 시대 사랑을 고백한 뒤 부끄러워하는 아가씨의 수줍음과 서정적 자아의 환희를 감칠맛나게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시의 작자인 허 초희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불운의 여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당시에도 현모양처의 대표감으로는 신사임당, 사랑받는 애인의 대표감으로는 황진이가 꼽혔다고 합니다. 그러나 허 초희는 신분이 뚜렷한 조선이라는 숨막히는 나라에서 여자로 태어났고, 더구나 바람둥이 김성립의 아내로서 살아야 했으며, 두 아이마져 잃어버린 한많은 여성이었습니다. 그녀의 한이 이 시로 승화된 것은 아닐까요. 이 시는 초희의 남동생인 허균이 수집해서 간행한 《난설헌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조선 중기 시인.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의 누이이며 짧고도 불행한 일생을 보냈지만 우리나라 여성사를 빛낸 대표적인 천재 여류시인이었다. 사후에 그의 시를 모은 <<난설헌집>>이 발간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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