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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글/수필.기타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윤동주

권순진의 맛있게 읽는 시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윤동주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 볼

이야기가 몇 가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는지에 대해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꿔가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 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놓은

좋은 말과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 가겠습니다.


이 시 역시 어제 소개한 오세영 시의 경우처럼 그 유명한 ‘서시’와 ‘별 헤는 밤’의 시인 윤동주로 잘 못 알려져 있는 시다. 어제에 이어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드는 것은 이런 시들이 예쁘거나 시 자체의 이야기 꺼리가 있어서는 물론 아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시의 오남용이 현존 시인에겐 정신적 고통을, 윤동주와 같이 대표적 민족시인 에게는 명예에 큰 손상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 ‘맛’이 없더라도 읽는 것이다.


소개한 이 시는 인터넷뿐 아니라 일부 언론과 책에서도 윤동주의 시라면서 인용된 사례가 있다. 아무리 윤동주 시인이 요절하여 20대의 청춘만을 살다간 시인이지만 그의 대표작 몇 편을 알고 이해한다면, 이 시를 읽으며 왠지 윤동주의 작품이라고 보기엔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어야 온당하다. 중고등학교에서 어휘 분석이나 하는 등 입시위주의 교육을 받는 대신 시를 제대로 감상하는 시간만 가졌다면 시의 어조에서 어렵지 않게 의문점을 발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글은 우선 내용의 조잡함(물론 나쁜 글은 아니지만)이 느껴진다. 그리고 표현기법이 얼핏 윤동주의 분위기를 연상케 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주제의 심오함이 현격히 떨어져 윤동주의 시와는 거리가 멀고 동시대와 어울리지 않은 표현도 낯설다.


윤동주 시인은 1945년 사망하여 생전엔 시집을 묶어내지 못하고, 1948년 유고시집인『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이후 여러 판본의『윤동주 시집』이 나왔으나 그 어느 시집 목록에도 이런 제목의 시는 없었다. 윤동주를 연구하는 분이 적지 않고 확실히 정리를 하려고 하면 별로 어려울 일도 아닌데 왜곡이 방치된 채 인터넷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유포되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불법적인 간도협약 체결이 백년을 경과하며 간도는 중국의 영토가 되어 지금 그들은 윤동주를 ‘조선족 시인 윤동주’라고 말하고 있다. 원통한 죽음도 모자라 중국인의 한 종족으로 윤동주가 자리 매김 되고 있는 이 현실에 말로만 우리가 제일 사랑하는 시인이라고 말할 게 아니라 이런 일로인해 우리 스스로 윤동주를 왜곡하고 폄하하는 일은 없어야겠다.

 

http://idaegu.com/index_sub.html?load=su&bcode=AOAB&no=18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