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따라 가며 읽는 詩
황동규 시인의 小유언 詩를 되새기며 아침 5시 서산 가로림만의 웅도를 향해 출발했다.
[답사 2007년 12월 16일 일요일. 날씨 영하 3도 안개 맑음 한국의산천]
출발하면서 방송에서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 적자생존
적자생존(適者生存) : 글씨로 적어야만 (Memo) 살아 남을 수 있다. 본 뜻과는 전혀 다르지만, 일리있는 말 같아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몇자 적습니다.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산천을 수놓았던 가을은 저만치 가고 아직은 눈이 없는 겨울이다. 나뭇잎이 떨어진 앙상한 가지에 하얀 눈이라도 소담스럽게 엊혀있다면 이렇게 쓸쓸해 보이는 스산하게 느껴지는 날씨는 아닐터인데..
그래 바다를 보러 떠나자.
서산에 위치한 웅도(곰섬)는 지리적으로 서산 북쪽지역의 육지와 700m 떨어져 있으며 썰물시에는 차량이 드나들 수있도록 차량 1대가 지날 수 있는 시멘트포장이 되어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곰이 웅크리고 앉은 형태와 같다고 하여 웅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 북서쪽으로 보이는 가로림만 입구 ⓒ 2007 한국의산천
서산 수당리 안국사지를 둘러보고 대산에 도착하니 아침해가 구름속에 떠오르고 있다.서산을 지나 지곡을 거쳐서 대산에서 웅도로 들어갔다.
작년 봄 답사때는 대산에서 웅도를 돌아본 후 가로림만의 해안을 따라 이원면까지 둘러보았다.
태안에서 지방도를 타고 이원면 만대까지 가면서 우측으로 잔잔하게 펼쳐진 바다가 가로림만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안도로가 없어 멀리서 가로림만의 겉모습 만을 스쳐볼 뿐이었는데 지금은 다행이 이원면 사창리에서 가로림만 쪽으로 우회하는 도로가 뚫려 바다와 접하면서 호수의 섬들을 대할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 가로림만 주변 위성지도 ⓒ 2007 한국의산천
아름다운 바다와 해안선 가로림만 (加露林灣).
숲에 이슬을 더하는 바다라는 뜻인가?
충남 태안반도의 중북부 서산시와 태안군 사이에는 가로림만이라는 바다가 놓여 있다. 태안반도의 크고 작은 만들이 대부분 간척사업에 의해 육지로 바뀌었지만, 가로림만은 아직까지 자연 상태를 유지하며 남아있는 태안반도의 가장 큰 만이다.
내륙으로 깊숙히 들어와 있으면서 서해 바다와 만나는 지점은 그 폭이 불과 2.5km 정도밖에 되지 않아 늘 잔잔한 물결을 자랑한다.
해안선 길이 약 길이 25 km. 너비 2~3 km. 태안반도의 지협부(地峽部)를 끼고 남쪽 천수만의 반대쪽에 만입하여 태안군 이원면, 원북면, 태안읍, 서산시 팔봉면, 지곡면, 대산면(大山面)으로 둘러싸여 있다.
남서 연안의 함평만과 함께 전형적인 호리병형(gourd type) 또는 병목형(bottle-necked type)의 폐쇄형 만이며 복잡하게 굴곡된 해안선이 발달하고 평균조차는 4.7m에 달하며 광활한 갯벌이 형성되어있는 곳이다. 부근 해안에서 성행하는 어업의 중심지이며, 굴 김 양식업도 성하다. 이북면을 건너 태안반도 서안은 태안해안국립공원의 일부를 이루며, 만리포 천리포 학암포 해수욕장이 있다.
▲ 아침햇살 비치는 가로림만 ⓒ 2007 한국의산천
소유언시(小遺言詩) (1번부터 8번까지 이어지는 詩입니다)
- 황동규-
열반에 머문다는 것은 열반에 속박되는 것이다 - 원효
1
살기 점점 더 덤덤해지면,
부음(訃音)이 겹으로 몰려올 때
잠들 때쯤 죽은 자들의 삶이 떠오르고
그들이 좀 무례하게 앞서갔구나 싶어지면,
관광객도 나대지 않는 서산 가로림만(灣)쯤에 가서
썰물 때 곰섬(熊島)에 건너가
살가운 비린내
평상 위에 생선들이 누워 쉬고 있는 집들을 지나
섬 끝에 신발 벗어놓고
갯벌에 들어
무릎까지 뻘이 차와도
아무도 눈 주지 않는 섬 한구석에
잊힌 듯 꽂혀 있다가
물때 놓치고 세상에 나오지 못하듯이.
▲ 웅도가 보이는 건너해변에서 ⓒ 2007 한국의산천
웅도(곰섬 : 서산시 대산읍 웅도리)
웅도는 지리적으로 서산의 최 북쪽 지역에 위치해 있다. 해안선 길이 5km의 드넓고 오염되지 않은 신선한 갯벌이 최근 관광객들로부터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물이 빠지는 간조시에는 바닥이 드러나 육지가 되는 장관이 펼쳐지고 사람들은 걸어서 또는 자동차를 이용해 웅도에 갈 수 있다.
전형적인 어촌마을로 아직도 훈훈하고 넉넉한 인심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척박한 환경속에서 생활하는 섬사람들은 억척스럽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어촌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또한 어린 자녀들과 자연학습을 겸한 관광을 즐길수 있는 곳이다.그러나 갯벌의 일부지역은 지역주민의 양식장으로 사용되어 갯벌을 출입 할 시에는 현지 주민에게 문의하여야 한다.
2
그냥 가기 뭣하면
중간에 안국사지(安國寺址)쯤에 들러
크고 못생긴 보물 고려 불상과 탑을 건성 보고
화사하게 핀 나무 백일홍들
그 뒤에 편안히 누워 있는 거대한 자연석(自然石) 남근을 만나
생전 알고 싶던 얘기나 하나 묻고
대답은 못 듣고.
▲ 수당리에 있는 안국사지 보물 102호 안국사지석탑 ⓒ 2007 한국의산천
▲ 수당리 안국사지의 불상과 배바위 ⓒ 2007 한국의산천
1963년 보물 100호로 지정된 안국사지 삼존석불은 고려말경에 건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5m 높이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보살상이 놓여있다. 특히 지난 2004년의 시굴조사에서 땅에 묻혀 있던 ‘발’이 발견됐는데 이와 같이 ‘발’을 가진 불상은 전국에서도 안국사지 석불이 거의 유일하다. 석불 밑에는 보물 102호인 안국사지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고려 말엽에 건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탑은 탑신에 불상 1구씩을 양각해 놓은 것이 특징이다.
▲ 안국사지 불상뒤 매향비, 배바위 안내문ⓒ 2007한국의산천
매향비를 품은 ‘배바위’
안국사지에는 ‘배바위’ 혹은 ‘고래바위’라고 부르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얼핏 보더라도 그 크기는 사람 수십명이 둘러야 할 정도로 크다. 가로로 길게 누워 있는 모양이 흡사 배와 같거나 고래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배바위에는 ‘미륵매향비’가 새겨져 있는데 그것도 두 개의 매향비가 새겨져 있다. 국내 4곳 북한 2곳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연대는 고려말(1310년)로 추정되며 유일하게 매향비가 2개나 새겨져 있다. 매향비란 매향의식을 행하고 이 사실을 기록한 돌을 말하며 돌을 다듬어서 세우거나 자연석에 그대로 암각하기도 한다.
배바위에는 ‘경술시월일, 염솔서촌출유, 목공합매, 경오이월일, 여미북천구, 포동제매향, 일구화주연, 결웅향도’라는 글이 새겨져있다.
이것을 풀이하면 ‘경술년 시월 서쪽의 염솔마을에 나다니던 목공이 이곳에 묻혔노라.’ ‘경오년 이월 여미 북쪽 마을 입구의 동쪽갯가에 결웅스님의 향을 삼가 묻고 한 언덕인 아미타불 고을 앞에 향도일동이 비석을 세워 표하노라’라는 뜻이다.
3
길 잃고 휘 둘러가는 길 즐기기.
때로 새 길 들어가 길 잃고 헤매기.
어쩌다 500년 넘은 느티도 만나고
개심사의 키 너무 커 일부러 허리 구부린 기둥들도 만나리.
처음 만나 서로 어색한 새들도 있으리.
혹시 못 만나면 어떤가.
우리는 너무 많은 사람,
나무, 집과 새들을 만났다.
이제 그들 없이 헤맬 곳을 찾아서.
▲ 개심사의 나무기둥 ⓒ 2007 한국의산천
못생긴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듯이 굽은 나무라도 대단히 큰 역활을 하는 기둥으로 자리하고 있다.
4
아 언덕이 하나 없어졌다.
십 년 전 이곳을 헤매고 다닐 때
길 양편에 서서 다정히 얘기 주고받던 언덕
서로 반쯤 깨진 바위 얼굴을 돌리기도 했지.
없어진 쪽이 상대에게 고개를 약간 더 기울였던가.
그 자리엔 크레인 한 대가 고개를 휘젓고 있다.
문명은 어딘가 뻔뻔스러운 데가 있다.
남은 언덕이 자기끼리의 대화를 기억하고 있을까.
지난날의 갖은 얘기 이젠 단색(單色) 모놀로그?
▲ 후사경에 비친 가로림만과 웅도 입구 ⓒ 2007 한국의산천
5
한 뼘 채 못 되는 시간이 남아 있다면
대호 방조제까지만이라도 갔다 오자.
언젠가 직선으로 변한 바다에
배들이 어리둥절하여
공연히 옆을 보며 몸짓 사리는 것을 보고 오자.
나이 늘며 삶이 점점 직선으로 바뀐다.
지난 일들이 빤히 건너다보이고.
▲ 대호방조제의 여명 ⓒ 2007 한국의산천
6
곰섬 건너기 직전
물이 차차 무거워지며 다른 칸들로 쫓겨다니다
드디어 소금이 되는 염전이 있다.
산다는 것은 스스로든 억지로든
칸 옮겨 다님,
누군가 되돌아가지 못하게 제때마다 물꼬를 막는다.
자세히 보면
시간에도 칸들이 쳐 있다.
마지막 칸이 허옇다.
▲ 너무 일찍 왔는지 웅도(곰섬)로 건너가는 길은 잠겨있다.ⓒ 2007 한국의산천
앗 ! 건너지 못하네? 못 건너가면 어떠리 다음에 또 오면 되지. 지난해에는 건너갔지 않았는냐..
일요일이지만 출근을 해야하기에 더 기다리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 물이 빠지면 시멘트로 만든 길이 나타난다. 2006년 3월 6일 촬영 ⓒ 2007 한국의산천
웅도 (곰섬)
이곳은 밀물이 되면 건너갈 수가 없다. 또한 서산 어리굴젓 체험장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곳은 개펄에서 경운기 대신에 소 달구지를 이용하여 가로림만에서 조개류와 젓갈을 실어 내온다. 가로림만은 그들에게 있어서 삶의 현장이자 생활 터전이다.
▲ 건너가지 못한 섬 웅도 ⓒ 2007 한국의산천
7
물떼샌가 도요샌가
긴 발로
뻘에 무릎까지 빠진 사람은
생물로 치지 않는다는 듯이
팔 길이 갓 벗어난 곳에서 갯벌을 뒤지고 있다.
바지락 하나가 잡혀 나온다.
다 저녁때
바지락조개들만
살다 들키는 곳.
▲ 가로림만의 풍경 ⓒ 2007 한국의산천
8
어둠이 온다.
달이 떠오르지 않아도
물소리가 바다가 된다.
밤새가 울 만큼 울다 만다.
왜 인간은 살 만큼 살다 말려 않는가?
생선들 누웠던 평상 위
흥건한 소리마당 같은 비릿함,
그 냄새가 바로 우리가 처음 삶에,
삶에 저도 모르게 빠져든 자리!
그 속에 온몸 삭히듯 젖어
육십 년 익힌 삶의 뽄새들을 모두 잊어버린다.
이 멈출 길 없는 떠남! 내 안에서 좀체 말 이루려 않는
한 노엽고, 슬거운 인간을 만난다.
곰처럼 주먹으로 가슴 두들기고
밤새처럼,
울고 싶다. - 황 동 규 -
▲ 길게 누워있는 웅도 ⓒ 2007 한국의산천
가로림만, 웅도가는 길
서산의 정겹던 옛모습을 보려면 대산면 웅도에 들어가면 된다. 웅도 역시 섬이지만 썰물 때에는 400m 정도 시멘트길이 드러난다. 웅도는 작은 섬이다. 해안선을 다 합쳐도 불과 5㎞가 채 되지 않는다. 인구도 150명 안팎. 하지만 개펄은 광활하다. 수백만평은 족히 될 듯하다. 지도를 보면 천수만, 아산만의 크기와 비슷하다. 웅도사람들은 가로림만에 삶을 기대어 살아왔다. 사시사철 바지락이 나온다고 한다.
물이 빠지면 마을사람들은 소달구지를 끌고 바다로 간다. 배를 판자 바닥에 붙여 썰매처럼 개펄로 나가는 남해안의 ‘뻘차’는 더 독특하다.
▲ 물에 잠겨있는 웅도로 건너가는 길 ⓒ 2007 한국의산천
소달구지는 전국에서 웅도가 유일하다고 한다. 왜 하필 소달구지일까. 개펄이 무르고 질기 때문이다. 50년 전 한 청년이 소달구지를 이용해서 바지락을 싣고 나왔는데 발이 빠지지도 않고 한꺼번에 많은 양을 거둬올 수 있었다고 한다.
경운기는 바닷물에 부식돼 엔진은 금세 망가지고 한번 빠지면 쉽게 빼낼 수 없단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은 집집마다 직접 달구지를 만들었다. 웅도에는 뭐 특별한 풍경이나 구멍가게 하나 없지만 그 정겨운 모습 때문에 관광객들이 꽤 찾는편이다.
▲ 웅도 주변 풍경 ⓒ 2007 한국의산천
가로림만 여행은 원북면 청산리에서부터 시작된다 이곳은 3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해상교통로의 요충지였다. 가까이는 팔봉면 구도와 태안읍 도내를 연결하고, 멀리는 인천을 운항하는 여객선이 있어 항상 분주한 곳이었다 지금은 육상 교통이 발달하여 모든 항로가 폐쇄되었지만 지척에 있는 나루터의 정감이 옛 영화를 그립게 한다.
이곳에서 임도(林道)를 따라 이적산의 안익재를 너머 방파제를 타고 사직재에 다다르면, 군도 12호선인 ‘사관선’과 접하는데 이 길을 따라 관리까지 간 후 다시 지방도 603호선을 타고 만대까지 가면 된다 이 길이 바로 가로림만의 해안도로인 셈이다. 이 도로는 지난 2001년도에 이원면 사창리에서 관리를 잇기 위해 개설한 비포장도로로 가로림만의 해안을 따라 땅끝마을인 ‘만대’까지 연결되는 도로인데 가로림만에 서린 삶과 애환을 함께 느낄 수 있어 좋다.
▲ 웅도 주변 풍경 ⓒ 2007 한국의산천
가로림만의 가장 인상적인 풍경은 섬들의 향연이다. 이곳을 가다보면 무수히 많은 섬들이 우리를 맞는다. 새섬, 율도, 송도, 윗지매, 아래지매, 매구섬, 석능도, 피도, 솔섬,… 그리고 이름 없이 올망졸망 떠있는 애기섬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물이 빠지면 다시 솟아오르는 수많은 여가 있으니 돗다여바위, 상아바위, 삼형제바위, 장안여, 잔여부리, 큰산딴여…등이 그런 이름들이다.
▲ 시원하게 트인 가로림만 ⓒ 2007 한국의산천
멀리 서산시 지곡면을 뒤로한 채 저섬, 매섬, 계도, 분점도, 능도, 조도, 대우도, 소우도, 솜섬, 옥도가 차례로 펼쳐진다.
고파도는 서산시 팔봉면 구도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고 우도와 분점도는 벌천포에서 배를 탄다. 웅도는 썰물 때마다 육지와 이어져 잠시 섬의 운명에서 벗어나는 섬이다.
▲ 웅도 앞에서 ⓒ 2007 한국의산천
웅도 가는 길
서해안 고속도로 - 당진 IC - 서산 - 태안 - 대산방면 - 대산읍내 끝에서 좌회전 - 오지리 - 웅도 - 다시 대산읍으로 나와서 북쪽으로 직진하면 대호 방조제 - 대호방조제를 건너면 - 당진군 도비도 휴양단지(암반해수탕 좋음) - 왜목마을- 당진
웅도를 찾을 때에는 바닷길이 열리는 시간과 물때를 확인해야 한다
국립해양조사원 : www.nori.go.kr/info/divid_forcast.asp?rid=8
이른 아침이라 상당히 손이 시리다. 야외 촬영시에는 장갑과 손난로가 필수품이다.
※ 불행중 다행인지 웅도 주변과 해안선 바위에는 기름 유출사고로 인한 흔적은 크게 눈에 띠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번지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