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인의 노래 / 이외수
이 하룻밤을 살고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헤어진 사람들은 다시 돌아와
이 등불가에서 만나게 하라
바람 부는 눈밭을 홀로 걸어와
회한만 삽질하던
부질없는 생애여
그래도 그리운 사람 하나 있었더라
밤이면 잠결마다 찾아와 쓰라리게 보고 싶던 그대
살속 깊이 박히는 사금파리도
지나간 한 생애 모진 흔적도
이제는 용서하며 지우게 하라.
아무리 정신이 고결한 도공이라도
영원히 깨지지 않는 도자기를 만든 적이 없듯이
아무리 영혼이 순결한 사랑이라도
언젠가는 금이 가고 마는 줄 알면서도
칸나꽃 놀빛으로 타오르는 저녁나절
그대는 무슨 일로 소리죽여 울고 있나요.
온 세상 푸르던 젊은 날에는 가난에
사랑도 박탈당하고 역마살로 한 세상 떠돌았지요.
걸음마다 그리운 이름들이 떠올라서 하늘을 쳐다보면
눈시울이 젖었지요. 생각하면 부질없이 나이만 먹었습니다.
그래도 이제는 알 수 있지요. 그리운 이름들은 모두
구름 걸린 언덕에서 키 큰 미루나무로 살아갑니다.
바람이 불면 들리시나요. 그대 이름 나지막히 부르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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