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은비령(隱秘領)

조용한ㅁ 2008. 2. 2. 08:02
은비령(隱秘領) ♣
                                  


점봉산과 가리산 사이 아주 깊은 사타구니에
깊숙이 숨어 있는 은비령은
지도에도 없는 산길이다
한계령 허리 중간을 되넘는 샛길에
은비처럼 눈이 내린다
사방을 신비의 세계로 만들고서야
하늘은 별들을 내어 걸었다
밤이 깊어지자 불빛은 사라지고
하늘에 별들만 남는데
들리는 건 숨소리 뿐
은비령 너머의 세상은 깜깜하게 다가오고
문득 흐르던 시간이 멈춘다
흐르지 않는 시간 저편에서 이순원의 "은비령"은
윤회의 윤회를 자꾸만 물래질 하고
2천5백만년이나 지나야 다시 만나게 될
이 시간과의 인연들이 수없이 오고 가는데
이제까지 살아온 길위에서 만났던 사람들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고,
격었던 일을 다시 격게되고,
앞으로 격어야 할 일들을 다시 격게 되고,
또 여기서 누군가를 만난다
누군가가 저기 바람꽃이 되어 피어난다
어쩜 바람꽃을 사랑하게 될지도 모를
인연의 하루가 서서히 밝아오는데
그래, 내 삶이 길지 않듯,
앞으로 기다려야 할 시간도 그리 길지 않으리라                      
창밖에는 다시 은비(銀飛)가 내리고
내 삶을 비켜가는 별들을 나는 또 가슴에 묻는다.

                                                               운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