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이 수동의 그림에 서 정윤의 시를 붙임

조용한ㅁ 2008. 5. 15. 20:36

글...서정윤

 

그림 ...이수

 

 

 

 



그대를 사랑하는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건
그대의 빛나는 눈만이 아니었습니다.

내 그대를 사랑하는 건
그대의 따스한 가슴만이 아니었습니다.

가지와 잎, 뿌리까지 모여서
살아 있는 '나무'라는 말이 생깁니다.
그대 뒤에 서 있는 우울한 그림자,
쓸쓸한 고통까지 모두 보았기에
나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대는 나에게 전부로 와 닿았습니다.
나는 그대의 아름다움만을 사랑하진 않습니다.
그대가 완벽하게 베풀기만 했다면
나는 그대를 좋은 친구로 대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대가 나에게
즐겨 할 수 있는 부분을 남겨 두었습니다.
내가 그대에게 무엇이 될 수 있겠기에
나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홀로서기

1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매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러져 있었다.

3

지우고 싶다
이 표정 없는 얼굴을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수렁 속으로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내 손엔 아무것도 없으니
미소를 지으며
체념할 수밖에......
위태위태하게 부여잡고 있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져 버린 어느날, 나는
허전한 뒷모습을 보이며
돌아서고 있었다.

4

누군가가
나를 향해 다가오면
나는 <움찔> 뒤로 물러난다.
그러다가 그가
나에게서 떨어져 갈 땐
발을 동동 구르며 손짓을 한다.

만날 때 이미
헤어질 준비를 하는 우리는,
아주 냉담하게 돌아설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파오는 가슴 한 구석의 나무는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떠나는 사람은 잡을 수 없고
떠날 사람을 잡는 것만큼
자신이 초라할 수 없다.
떠날 사람은 보내어야 한다.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일지라도.

5

나를 지켜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차지하려 해도
그 허전한 아픔을
또다시 느끼지 않기 위해
마음의 창을 꼭꼭 닫아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은 이 절실한 결론을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며 여겨보아도
결국 인간에게서는
더이상 바랄 수 없음을 깨달은 날
나는 비록 공허한 웃음이지만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아무도 대신 죽어주지 않는
나의 삶,
좀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6

나의 전부를 벗고
알몸뚱이로 모두를 대하고 싶다.
그것조차
가면이라고 말할지라도
변명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그 끝없는 고독과의 투쟁을
혼자의 힘으로 견디어야 한다.
부리에,
발톱에 피가 맺혀도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 서기>를 익혀야 한다.

7

죽음이
인생의 종말이 아니기에
이 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아 있다.
나의 얼굴에 대해
내가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홀로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홀로 서고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해
촛불을 들자.
허전한 가슴을 메울 수는 없지만
<이것이다> 하며
살아가고 싶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랑을 하자.





소나기같이, 이제는 가랑비같이


소나기같이 내리는 사랑에 빠져
온몸을 불길에 던졌다.
꿈과 이상조차 화염 회오리에 녹아 없어지고
나의 생명은 잠시 반짝이다 사라지는
불꽃이 되어 이글거렸다.

오래지 않아 불꽃은 사그라지고
회색빛 흔적만이 바람에 날리는
그런 차가운 자신이 되어 있었다.
돌아보면
누구라도 그 자리에선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만
순간의 눈빛이 빛나는 것만으로
사랑의 짧은 행복에 빠져들며
수많은 내일의 고통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폭풍 지나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자리
나의 황폐함에 놀란다.
이미 차가워진 자신의 내부에서
조그마한 온기라도 찾는다.
겨우 이어진 목숨의 따스함이 고맙다.

이제는 그 불길을 맞을 자신이 없다.
소나기보다는 가랑비 같은 사랑.
언제인지도 모르게 흠뻑 젖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반갑다.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잔잔함을 지닌 채
다가오는 가랑비
한없이 가슴을 파고드는 그대의
여린 날갯짓이 눈부시다.
은은한 그 사랑에 젖어 있는 미소가
가랑비에 펼쳐진다.

 

 



수채화로 그린 절망 1

내가 묻기도 전에 해는 서산에 진다.
시간의 질문들이 줄지어 따라간다.
결국 그대는 흑백사진의 한 장면으로
기억의 한쪽 면을 차지할 것이다.

영혼을 학대하기 위해 육신을
팽개쳐 버린 모습으로
내 앞에 섰을 때 나는
그대의 고통을 읽기에 앞서
가슴아리는 절망으로 빠져들었다.
내 짊어져야 할 그 짐들을
그대에게만 맡겨두고, 나는
잘도 잠을 잤구나. 그대 지친 몸으로
잠 이루지 못해 뒤척일 때도
나는 어줍잖은 낱말이나 맞추며,
싸구려 추억에 잠겨 잔을 들었구나.
내 앞에서 말없이 흐르는 그 흔적들과
함께 추락하며
여기쯤에서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억겁 윤회로 인해 나 여기 서 있다면
앞 생의 어떤 인연의 끈으로 나는 그대에게
이만큼의 고통을 안겨 주었나.
시간의 흐름은 거역할 수 없고
이미 예약된 다음 생을 느끼면서도
구름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나를 본다






수채화로 그린 절망 2

이제 강가에는 아무도 없고
아직 그대의 절망은 끝나지 않아
나의 가장 아픈 곳에 남아 있다.

어쩌면 바람으로 흩어지고 싶어도
흙의 일을 흙으로 돌리는 일과
하늘에 노을 그리는 일이 남았다는 핑계로
조금만 더 참아 달라고
지친 그대를 힘들게 한다.

강가에 선 나무들은
철새의 약속을 믿지 않지만
흐르는 강물을 보며 기다린다.
기다릴 수밖에 다른 일은 없다고
어린 나무들을 돌아보며
타이르고 있다.





수채화로 그린 절망 3

우리는 전생에 어떤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았나.
말로도 남의 가슴에 상처주지 않고
미소로 그들을 도우며
그들의 고통으로 밤을 새웠다면,

다른 누가 우리의 다정함에
시기하는 말을 하늘에다 했는가.
그로 인해 이 생을 받았다면
자랑하지 말아야 했어.
내 삶이 남과 다름을 말하지 말아야 했다.

이번 생에 이 고통 다 지나면
이젠 윤회의 테두리 벗어나
바람으로 흩어지고 싶다.
이 욕심 다시 씨앗이 된다면
다음 생엔 아주 조그만 절망으로
마무리지으며 살고 싶다.







수채화로 그린 절망 4

자신을 잊기 위해 애쓰던
차가운 바람의 날들
말못하고 돌아서던 순간이 있었다.
가슴속 수많은 단어들이
서로 먼저 나오려고 부딪치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초라하지 말라고
하늘의 푸른 절망이
먼저 손을 내민다.
내 가진 건 그대의 맑은 웃음,
고통스런 변명은
건너뛰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것으로 충분히 말했다.
아니 충분히 비참했다.
이제는 시간이 낯설 게 느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내 절망의 끝이 보인다





사랑한다는 말은

사랑한다는 말은
기다린다는 말인 줄 알았다.
가장 절망적일 때 떠오른 얼굴
그 기다림으로 하여
살아갈 용기를 얻었었다.

기다릴 수 없으면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줄 알았다.
아무리 멀리 떠나 있어도
마음은 늘 그대 곁에 있는데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살았다.

그대도 세월을 살아가는 한 방황자인걸
내 슬픔 속에서 알았다.
스스로 와 부딪치는 삶의 무게에
그렇게 고통스러워한 줄도 모른 채
나는 그대를 무지개로 그려두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떠나갈 수 있음을 이제야 알았다.






그대에게

무엇을 원하는 것으로
소유하려는 것조차
나의 욕심이라고 깨닫고
시인하며
가슴을 털며 돌아서면
사랑은 조건이 없는, 아니
진정한 사랑의 조건은
진실
그 하나만으로 족한 것
가면의 사랑으로 우리는
자기마저 속이려는 숱한
가여운 영원을 본다
사랑 없는 삶은
죽음보다 무의미한 것이기에
우선은
내 마음의 진실을 찾아
아픈 추억들 뒤지고 있다.

 

 





눈 물

아직도 가슴에 거짓을
숨기고 있습니다.
늘상 진실을 생각하는 척하며
바로 사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나만은 그 거짓을 알고 있습니다.

나조차 싫어지는 나의 얼굴
아니 어쩌면
싫어하는 척하며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내 속에 잇는 인간적,
인간적이라는 말로써
인간적이지 못한 것까지 용납하려는
알량한 <나>가 보입니다.

자신도 속이지 못하고
얼굴 붉히며 들키는 바보가
꽃을, 나무를,
하늘을 속이려고 합니다
그들은 나를 보며 웃습니다.
비웃음이 아닌 그냥 웃음이기에
더욱 아픕니다.

언제쯤이면 나도
가슴 다 보여 주며 웃을 수 있을지요

눈물나는 것이
고마울 때가 있습니다...

 




 

가끔 절망하면 황홀하다

가끔 절망하면 황홀하다
나에게서 떠난 먼 여행,
나무들이 구름을 흔들고
햇살은 반갑지 않은 것들로
그물을 짠다

어둠의 먼저 묻어나는 세계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
참새들은 끊임없이 허수아비를 만들고
배신은 어디에서나 이루어진다
반짝이는 눈의 여우가 아닌
본질의 나,
용서할 수 없어도
이해할 수는 있다고 말한다

하늘은 밝음을 향해 선 자의 것이라고
분노하며
다시 허물어지는 그 어디,
체념을 배우며 지나는
설명되어지지 않는 황홀을 느낀다



 

 

 

슬픈 시


술로써
눈물보다 아픈 가슴을
숨길 수 없을 때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적는다
별을 향해
그 아래 서 있기가
그리 부끄러울 때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를 읽는다

그냥 손을 놓으면 그만인 것을
아직 < 나 >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쓰러진 뒷모습을 생각잖고
한쪽 발을 건너 디디면 될것을
뭔가 잃어버릴 것 같은 허전함에
우리는 붙들려 있다

어디엔들
슬프지 않은 사람이 없으랴마는
하늘이 아파, 눈물이 날때
눈물로도 숨길 수 없어
술을 마실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가 되어
누군가에게 읽히고 있다.







들꽃에게

어디에서 피어
언제 지든지
너는 들꽃이다.

내가 너에게 보내는 그리움은
나를 시들게 할 뿐,
들꽃은 논두렁 길가에 피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그저 평범한 곳에서 소리 없이
피었다 지는 들꽃처럼
인간이 살아, 살면서 맺는
숱한 인연의 매듭들을
이제는 풀면서 살아야겠다.

한 하늘 아래 너와 나는 같이 있다.
그것만으로도 아직은 살 이유가 되고
나에게 허락된 시간을
바람 앞에 내어놓지 말아야 한다.

우리 모두 그냥 피었다 지면 그만일
들꽃이지만
가슴에 품은 홀씨들 영글 때까지
햇살 아래 서 있어야 한다.






소망의 시1

하늘처럼 맑은 사람이 되고 싶다
햇살같이 가벼운 몸으로
맑은 하늘을 거닐며
바람처럼 살고 싶다. 언제 어디서나
흔적없이 사라질 수 있는
바람의 뒷보습이고 싶다.

하늘을 보며, 땅을 보며
그리고 살고 싶다
길 위에 떠 있는 하늘, 어디엔가
그리운 얼굴이 숨어있다.
깃털처럼 가볍게 만나는
신의 모습이
인간의 소리들로 지쳐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앞세우고
알타이 산맥을 넘어
약속의 땅에 동굴을 파던 때부터
끈질기게 이어져 오던 사랑의 땅
눈물의 땅에서, 이제는
바다처럼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하고 싶다.
맑은 눈으로 이 땅을 지켜야지


소망의 시2

스쳐 지나는 단 한 순간도
나의 것이 아니고
내 만나는 어떤 사람도
나는 알지 못한다.

나뭇잎이 흔들릴 때라야
바람이 분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햇빛조차
나와는 전혀 무관한 곳에서 빛나고 있었다.

살아 있음이
어떤 죽음의 일부이듯이
죽음 또한 살아 있음의 연속인가,
어디서 시작된지도
어떻게 끝날지도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스스로의 생명을 끈질기게,
지켜보아 왔다.

누군가,
우리 영혼을 거두어 갈 때
구름 낮은 데 버려질지라도 결코
외면하지 않고
연기처럼 사라져도 안타깝지 않은
오늘의 하늘, 나는
이 하늘을 사랑하며 살아야지.


소망의 시3


가끔은 슬픈 얼굴이라도
좋다, 맑은 하늘 아래라면.
어쩌다가 눈물이 굴러 떨어질지라도
가슴의 따스함만으로도
전해질 수 있다, 진실은

늘 웃음을 보이며
웃음보다 더 큰 슬픔이
내 속에 자랄지라도
<웃음>만을 보이며 그대를 대하자.

하늘도 나의 것이 아니고
강물조차 저 혼자 흘러가고 있지만
나는 나의 동그라미를 그리며
내 삶의 전부를
한 개 점으로 나타내야지

지나가는 바람에도 손잡을 수 있는
영혼의 진실을 지니고
이제는 그대를 맞을
준비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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