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e Laurencin의 작품세계
Marie Laurencin photographed
by Carl Van Vechten, 1949
1883-1956, 파리 출생. 평범한 중류가정에서 사생아로 태어 난 그녀는 윙바르의 회화연구소에서 소묘(素描)를 배웠다. 처음에는 툴루즈로트레크와 마네의 작품에서 감화를 받았다. 그러나 브라크와 피카소 등과 알게 되고, 아폴리네르와 살몽 등의 시인들과도 접하여 큐비즘(입체파) 운동이 일어나는 와중에서 가장 첨단적인 예술론에 촉발되면서 자랐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큐비스트는 되지 못하고, 형태와 색채의 단순화와 양식화 속에 자기의 진로를 개척하여, 감각적이며 유연하고 독특한 화풍을 만들어냈다. 흑인예술이나 페르시아의 세밀화에 영향을 받아, 점차 자유로운 화풍 속에서 여성다운 섬세한 관능을 표현하게 되었다. 소박하고 유연한 묘법(描法)과 담홍 ·담청 ·회백색의 유려하고 감미로운 색채배합이 특징이며, 즐겨 꿈꾸는 듯한 소녀상을 테마로 하여 환상적이고 ·감상적인 작품을 남겼다.
그녀는 또 양탄자와 벽지의 무늬를 고안하거나, 책의 삽화, 석판화, 발레의 무대장치를 그리거나 복식(服飾)도안도 하여, 현대 일류의 여류화가로서 다채로운 활동을 했다.
그녀의 그림은 형태와 색채의 단순화와 양식화로요약할 수 있다. 또한, 흑인예술과 페르시아의 세밀화에 영향을 받은 자유로운 화풍으로 여성의 섬세한 관능미를 표현한다.
그녀의 화풍은 처음에는 툴루즈로트레크와 마의 작품에서 감화를 받지만, 이내 화가 브라크, 피카소, 시인 알폴리네르와 살몽과 교제를 갖게 되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당시 유행하던 큐비즘(입체파) 운동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녀는 완전한 큐비스트가 아닌, 자신만의 감각적이고 유연한 화풍을 만들어 낸다.
나이 70에 이르러서도 자신에게 진정한 재능이 있기를 소망했던 그녀 여류 화가가 흔지 않았던 시대 속에서도 그 어떤 남성 화가들 못지 않게 당당하고 독특한 그림세계로 자신만의 삶의 방식과 내면세계를 표현해낸 그녀
그녀의 그림에는 소녀와 여인이 자주 등장한다. 결코 여자로서 평범하지 않았던 - 때로 조국을 잃기까지 해야 했던 그녀의 삶을 대변해주는 듯한 그녀의 그림만의 독특한 매력에 마리로랑셍은 시인 아폴리네르의 연인이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녀는 시인이기도 했다
오! 당신은 알기를 원하십니까?
권태보다
그리고 슬픔보다도
왜 불행이 더 나쁜지를
하지만 불행보다
더 나쁜 것은 아픔입니다
오! 당신은 알기를 원하십니까?
왜 아픔보다 버려짐이 더 나쁜지를
하지만 버려짐보다도 더 나쁜 것은
외톨이가 되는 것입니다
오 당신은 알기를 원하십니까?
외톨이가 되는것 보다 더 불행한 것을
그것은 바로 유랑생활입니다
하지만 유랑생활보다도 불행한 것은
죽음이랍니다
그렇지만 죽음보다도 더 불행한 것은
바로 잊혀지는 것입니다.
마리 로랑생
Artemis
Bacchante
Blue Ribbon, 1938
Bouquet, 1922
Feme a la Mantille
Fish
Jeune femme au chapeau
Jeune fille au chapeau
Jeune fille au collier
Juene fille au collier de
Mademoiselle Coco Chanel
Mme Domenica Paul
Mother and child, 1928
The Kiss
Two young girls in a landscape
Valentine, 1924
Woman with a dog
Women in the woods, 1913
Young girl with a dove
사랑과 조국을 떠나서는 살아 갈 수 있으나, 결코 그림을 떠나서는 살 수 없었던 여인 마리 로랑생. 다만 아폴리네르의 연인으로 흔히 알려졌으나 그녀는 20세기초 피카소와 장 콕토들의 살롱에서 가장 환영받는 파리의 뮤즈였다
미라보 다리 / G. 아폴리 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은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흘러내린다
내 마음 속에 깊이 아로새기리
기쁨은 언제나 괴로움에 이어옴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 보면
우리네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살이
저렇듯이 천천히 흘러내린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사랑은 흘러간다 이 물결처럼.
우리네 사랑도 흘러만 간다.
어쩌면 삶이란 이다지도 지루한가
희망이란 왜 이렇게 격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나날은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다
우리네 사랑은 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이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미라보 다리의 여인이라 불리웠으며, 기욤 아폴리네르의 연인으로 알려진 그녀, 마리 로랑생. 아폴리네르가 그녀와의 이별후에 그리움으로 써내려 갔다는 ‘미라보 다리’는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사람들의 뇌리에 파리와, 세느강 그리고 이별의 낭만을 이야기 할 때면 함께 떠올리는 시이다.
마리 로랑생
다만 아폴리네르의 연인으로 흔히 알려졌으나, 그녀는 20세기초 피카소와 장 콕토들의 살롱에서 가장 환영받는 파리의 뮤즈였으며, 로댕으로부터 ‘야수파의 소녀’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던, 예술의 기량이 절정에 달한 화가였는지 아는 이는 드물다. 나는 유약하게 부서져 버린 ‘까미유 끌로델’보다 이 생동감 넘치는 화가에게 알 수 없는 애정을 느끼곤 한다. 그녀는 온 유럽과 파리가 입체파와 야수파의 물결이 넘칠 때 독특한 그녀만의 화풍을 만들어낸 보기 드문 재능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온 시대가 인상주의 화풍에 넘쳐날 때, 크림트의 빈화파가 독특함과 새로운 화풍으로 그림예술의 다양성을 마련해주었듯, 모두가 한 방향으로 휠쓸려가는 사조가 만연한 시절에 그녀만의 감각적이며 유연한 화풍을 남겼다는 것은 대단히 인상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화가란 당연히 남성이고 "여성 화가"는 희귀한 예외적 존재였던 시절에 살았다. 그녀의 예술 세계가 남성 화가들의 세계와 같은 척도로 평가될 수 없다 해서, 그녀의 재능이 평가절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태어나면서 사생아라는 불운을 타고 났으나, 연인이었던 아폴리네르가 사생아라는 출신성분을 끝까지 극구 감추려 한 반면 그녀는 오히려 당당했었다 전해진다
비슷한 동시대를 살았던 ‘까미유 끌로델’은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 났으나, 연인이었던 로뎅에게 집착과도 같은 사랑, 그리고 섬세하지만 유약한 본인의 정신상태를 이기지 못해 비참하게 정신병원에서 일생을 마친 것과는 대조가 된다
누구보다도 사랑했으나 서로의 예술세계가 만개할 무렵, 돌연히 그를 떠난 ‘마리 로랑생’은 아폴리네르를 떠나서 여러가지 인생의 굴곡을 겪으면서도 결코 붓을 놓지 않고, 자신의 세계를 건강히 가꾸어 나간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이듬해에는 독일사람인 오토 폰 바트겐과 결혼함으로써 그녀 조국에서조차 발붙일 수 없는 처치가 되고 만다. 적대국의 남자와 결혼을 해서 전쟁중에도, 전쟁이 끝난 후에도 조국에 갈수 없는 유랑자와 같은 시간을 보낸 후에야 겨우 조국에 돌아오는 것을 허락받게 되는 그녀.... 전쟁중 아폴리네르는 사망하고, 독일인 남편과의 이혼후 많은 사랑과 이별을 겪었으나 그녀에게 항상 변함이 없던 것은 그림에 대한 열정이 아니었을까?
우리를 열광시키는 것은 오직 그림밖에 없으며, 따라서 그림만이 영원토록 나를 괴롭히는 진정한 가치이다. 70세가 넘어 사망하기까지 그녀의 소망은 “나에게 진정한 재능이 있기를…”이었다고 한다. 일생을 당당하며, 사랑과 그림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던 그녀가 마음 한구석에 그런 의아심을 가지고 일생을 살았다니....
감정, 삶의 방식, 그리고 재능에서 그녀는 독특한 인물이었고, 그녀의 예술 세계는 시대를 초월하여 독창적인 면이 있었음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러한 그녀가 젊은날 봄바람과도 같은 시절에, 꿈곁같이 나누었을 아폴리네르와의 밀어들.
너는 나의 마리
세느강변에서 속삭이던 그 말이
바람불면 귓가로 스쳐가는데
나는 너의 아폴리네르
이 미라보다리 아래
마르지 않는 그 강물은 흐르는데
오늘도 내일도 흘러만갈텐데
사랑하고 사랑하였던 나의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