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그림들/외국의화가의 작품

귀스타브 카유보트 Gustave Caillebotte <오르막길>

조용한ㅁ 2008. 10. 23. 15:13


귀스타브 카유보트 Gustave Caillebotte <오르막길> 1848-1894년   프랑스 파리, 개인소장

 

화창한 어느 날 오후 가벼운 오르막길의 산책에 나선 한 쌍의 남녀를 보여 주는 <오르막길>은 숲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의 느낌을 전해 준다. 햇살과 그림자가 보�빛 음영으로 뒤섞이는 화면 전경의 커다란 그늘은 자칫 가벼워지기 쉬운 야외 풍경의 밝은 계조를 진정시킨다. 그리고 바로 그림자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려한다. 화면 왼쪽 건물의 주황색 벽돌과 덧창은 노르망디 해변가에 한창 유향하던 영국식 별장의 한 단면이겠다.

카유보트는 보트 놀이에 광적으로 몰두했고 또 여름을 노르망디의 휴양지인 투르빌 등지에서 보내곤 했다.

벽돌색의 흐름을 이어주며 강조점이 되는 양산이 화면 전체의 균형을 잡아 주면서, 전후경의 들판과 자디잘고 경쾌한 붓 놀림으로 그려진 잎새들과 풀들은 뙤약볕 속에서도 산들거리는 신선한 미풍을 차분하게 재현한다.

남자 주인공은 뱃놀이할 때 쓰는 맥고 모자에, 그 한쪽 손에는 파이프 담배를 쥐고 있음을 암시한다. 바로 이 모습 때문에 이 인물은 파이프 담배를 즐겼던 작가 자신의 모습으로 보인다. 한편 여인은 하체에 비중을 두는 드레스 차림인데 이는 전형적인 중산층 복장이다. 치맛자락 끝을 화려하게 장식한 수는 그녀의 우아한 발걸음을 돋보이게 한다.

 

낮고 길게 여운을 주는 그림자로 미루어, 오후 끝무렵 같은 이 시간에. 늦은 점심을 마치고 산보에 나선 모습이 완연하다. 밀어를 속삭일 숲 어딘가의 명당을 찾아 나서는 참이다. 아마 막연히 산책 자체를 즐기려는 것이리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서 걷는 것은 당시 중산층 남녀 사이에서 지켜지는 예절이었고 또 이런 풍습은 보통 부부들 사이의 관행이기도 했다. 그런 흔한 한 장면이 그림으로 옮겨지자 가볍지 않은 신화의 무게를 띠게 된다. 여기서는 서먹한 거리 두기가 아니라 오래 함께한 사이에서나 나타날 여유로움과 친숙함이 느껴진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멀어지는  듯하다가도 가까워지는..........

 

두 인물을 정면이나 측면 대신 완전히 뒷모습으로 묘사한 점도 재미있다. 이보다 몇십년 뒤에야 사진가들이 처음 시도했던 관점이다. 또 최근에도 독일 사진가들을 비롯해서 한국 사진가들이 새삼 즐겨 포착하는 관점이다. 그러나 오랜 수작업이 요구되는 그림에서는 극히 이례적인 접근이자 파격이다. 화가가 이와 유사한 그림들을 통해 전경을 압박해 오는 화면 대신 후경으로 관객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특이한 기법을 구사한 점은 그의 또 다른 개성의 발산이다.

이응 물론 관점은 다르지만 사진 이이지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 분명하다. 사진은 시진에 찍히는 사람을 전경에 바짝 끌어당겨 가득 채우는 대신,렌즈가 요구하는 일정한 거리 두기로 인해 어느정도 화면 속으로 주인공을 물러서게 하며, 그렇게 해서 그림에서처럼 답답하게 주인공으로 꽉 막혔던 전경의 공간은 상당히 시원하게 비워진다. 화가는 이렇게 사진이라는 기계적 이미지가 보여 주는 영상 효과를 이 그림은 물론 다른 그림속에서도 집요하게 탐구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며, 실험적 화풍을 개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그 몇해 뒤에도 뒷짐을 지고서 산책길에 나선 마글루아르 신부를 그렸다.그 그림에서도 화가는 신부의 등뒤에서 함께 멀리 앞서가는 양산을 받쳐 든 여인과  너무 단조롭고 평온한 나머지 울적해 보이는 풍겨을 그렸다. 어쨌든 그림 속으로 천천히 빨려 드는 듯한 그 뒷모습에서 관객은 오히려 그들의 꽁무니를 따라 이미지의 수수께기를 줄긴다는 과외소득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그의 산책은 단순한 소득 이상의 미학이다. 그는 풍경이 인물을 스쳐 지나가도록 보여 주는 산책자의 이미지를 줄기차게 그렸다. 느림과 여유에 대한 그의 조숙한 관점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생활 속에서 건강이 차지하는 무게로 기울었던 그의 인상관이다. 그는 병약했던 밀년에 퇴폐로 기울거나 도피하지 않았다. 그는 산책에 나서 맑은 공기를 쐬는 사람처럼 살고 또 작업했다.

 

전문가들은 그림속의 여주인공이 화가와 동거 중이었던 샬로트 베르티에(본명은 안 마리 아장)일 것이라는 심증을 갖고 있다. 바로 이런 심증이 이 그림에 특별한 매력을 보태 준다. 화가 자신이 겪고 수용한 사랑의 방식을 거울처럼 비쳐 내기 때문이다. 어느시대에나 화가, 그것도 최상급 화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분명 불운은 아니다. 하지만 무능한 데에다 가난하기까지 한 화가의 애인으로서 모델이 된다면 사정은 판이하다. 종종 허영심이 많고 자기 도취가 심한, 시쳇말로 일종의 공주병 증세라도 있는 여인이라면 자신의 모습을 영원히  한폭의 화면 속의 이미지로 새겨 줄 화가를 일시적으로라도 유혹하혀 하지 않을까? 도구나 카유보트처럼 부유하고 재능 있는 화가의 애인으로서 그의 모델이 된 경우라면 그녀의 걸작 속의 여주인공으로 세속적 욕심 이상을 채울 테니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그녀의 나이는 열여덞 살이었다. 그녀는 그다지 내세울 만한 집안 출신이 아니었다고 하며, 건강이 좋지 않았던 화가가 사망할때까지 함께 생활했다. 화가는 이 그림이 그려진 때로부터 단 두해를 더 살았다. 그녀에게는 또 다는 축복도 있었다. 화가와 절친한 동료 화가로 여인의 초상화가로서는 애호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르누아르가 친구의 동거녀였던 그녀의 초상을 그려 주었기 때문이다.

1880년대에 프랑스에서는 결혼의 결정권은 여전히 가문의 문제였기 때문에 정식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동거에 들어가는 일이 심심치 않았었다. 우리가 그 이름을 알 만한 화가들 가운데에서도 가문의 반대를 무릎쓰고 동거 생활을 하고 사생아를 낳은 이들이 여럿 있었다. 카유보트는 부친의 스무 살 어린 세 번째 부인과의 결혼으로 얻은 아들이었고 그의 이복형은 파리 주교를 지내기도 했으므로 그 완고한 분위기를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화가 자신은 이복형인 마르시알과 늘 우애 좋게 지냈고 형수의 초상을 그리고 함께 집안과 정원 손질을 즐기곤 했던 가족적인 타입이었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는 그 시대의 분위기와 그의 인격과 또 그의 삶의 그림자라면 그림자가 잔잔하게 출렁인다. 비극적이었던 파리 코뮌의 여파도 가라앉고 그 상처도 점점 아물어 해외로 도피했던 인사들이 속속 귀환하고 공화정도 안정을 되찾고 경제 역시 활기를 되찾아 가던 그때, 화가는 출신도 분명치 않고 거의 알려진 것이 없는 단 한 사람의 여인과 더불어 담담한 일상을 지내면서 또 바로 그렇게 담담한 일상을 재현하는 데로 돌아섰다. 요란한 파티와 논쟁과 애증과 질시, 출세와 몰락이 엇갈리는 파리 사교계를 뒤로하고서, 덧없는 햇살만큼이나 덧없는 사랑의 그림자를 그리면서 말이다. 결국 그는 세속성의 한복판에서 그런 것들을 뛰어넘었다. 세간의 윤리적 잣대가 어찌되었건 간에 그는 자신의 예술속에 자신의 시각과 삶, 그리고 어떤 것도 문제될 것이 없는 사랑에 대한 신념을 그의 성품만큼이나 차분하게 그려 나갔다. 마구 끌어 안고 좀 더 가깝게 밀착되길 바라는 방식이 아니라, 이 그림에서처럼 적당한 거리를 둠으로써 그는 더 큰 사랑을 키웠을까?

                                                                   사랑의 이미지 中에서- 정진국-


                                                                              제 2악장  아다지오, E장조, 3/4박자, 세도막 형식


Cello,Rostropov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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