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아리안느의 아버지는 남의 사생활을 조사하는 사립 탐정이다. 그런 까닭에 아리안느는 어른들의 남녀 관계에 강한 호기심을 갖고 아버지의 서재에 몰래 들어가 조사 보고서를 훔쳐보는 것이 취미이다. 미국의 억만장자이며 국제적으로 이름높은 플레이 보이인 프랭크 프레너건이 사귀고 있는 애인의 남편에게 사살될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아리안느... 그녀는 격분한 여인의 남편이 살의를 품고 프레너건을 죽이려고 호텔로 가는 것을 알고는 그에게 위급한 사정을 알리고 그의 생명을 구한다.
그러나 이상하게 이러한 사건을 계기로 아리안느는 프레너건을 사랑하기 시작하고, 또 프레너건은 프레너건대로 아리안느의 장난기 서린 요정같은 매력에 사로잡히고 만다. 아리안느는 일부러 그녀 자신도 많은 남성들과 사랑의 불장난을 즐긴 플레이 걸로 가장하여 이 로맨스 그레이의 플레이 보이를 당황하게 만든다.
주객이 뒤바뀐 느낌이 든 프레너건은 플레이 보이답지 않게 질투의 감정으로 고민하게 되고, 급기야는 이 수수께끼 같은 소녀의 정체가 무엇인가 알아보려고 마음 먹는다. 그런데 조사를 의뢰한 사립 탐정이 공교롭게도 아리안느의 아버지였다. 잠복 근무에서 프레너건의 조사 대상이 자기 딸인 것을 알게된 아버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간절하게 프레너건에게 애원했다. "그 애는 철모르는 아이요. 당신이 만약 지성과 양심을 갖춘 신사라면 철부지 내 딸을 더이상 유혹하지 말고 이 곳을 떠나주시오."
어느덧 진정으로 아리안느를 사랑하게 된 프레너건이지만 차마 아버지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파리로 떠나려고 한다. 프레너건을 전송하러 플랫폼(기차 역)에 나온 아리안느는 눈물을 글썽이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는다. "나는 결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어요.. 그건 모두 장난이었어요.. 당신을 골려주려고 그런거죠." 그러나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아리안느는 자기도 모르게 열차 뒤를 쫓는다... 마침내 프레너건은 승강구에 매달린 채 팔을 뻗어 기차를 따라 달음질쳐 오는 아리안느를 잡아 태우고 만다. 둑이 터지듯 쏟아지는 사랑의 격정... 결국 프레너건은 아리안느를 위해 플레이 보이의 이름을 반납할 것을 선언한다.
프랑스의 유명한 작가 끌로드 아리아넷의 소설 '아리안느(Ariane)'를 영화화한 익살스러운 코미디로, 영화 중에서 집시 밴드가 들려 주는 콘티넨탈 왈츠 "매혹(Fascination)"의 감미로운 멜로디와 함께 오늘날까지 팬들의 기억에 생생한 추억의 명화이다. 파리 음악원에서 첼로를 전공하는 히로인 아리안느역을 맡은 오드리 헵번은 이 영화 출연을 위해 앙드레 레비 교수로부터 4주일 동안 첼로를 교습받아 하이든의 심포니 88번을 멋지게 연주해냈다. 물론 아리안느가 첼로를 자연스럽게 연주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트릭 촬영'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오드리 헵번의 열의와 고집은 대단했다.
이 영화를 찍을 무렵의 게리 쿠퍼는 이미 56세였고, 빌리 와일더 감독는 나이 지긋한 배우의 늙은 모습을 감추기 위해 무척 애를 썼으나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그러나 게리 쿠퍼는 만년에 찍은 이 영화에서 그의 완숙하고 소박하고 따뜻한 인간미를 표출하여 인기를 더욱 상승시켰다. 플랫폼에서의 감동적인 이별의 장면을 꼽는다면 <하오의 연정>이 꼭 거론될 정도이다.
<하오의 연정>은 슬픈 이별이라 예상했던 마지막 순간에 행복한 결합으로 바뀌어 버리는 뜻밖의 해피 엔딩으로 더욱 흥미진진한 오락성을 연출했다.
영화 <하오의 연정>에서 프레너건이 아리안느와의 핑크 무드를 조성하기 위해 '올가 바렐리와 집시들'이라는 집시 밴드에게 연주시킨 곡이 바로 <매혹(fascination)의 왈츠>다. <하오의 연정>에서 집시 밴드는 무려 21개의 장면에 나타난다. 플레이 보이 프랭크 프레너건은 샴페인과 왈츠를 사랑의 전술로 이용하였던 것이다.. 얼마나 로맨틱한 수법인가!
로맨틱하고 마음 설레이는 왈츠의 가락은 이 영화를 한층 더 매력적인 것으로만들었으며, 이를 계기로 리바이벌 히트가 되었다. 영화 공개 이후 <매혹의 왈츠>의 인기를 재빨리 간파하고 그에 편승하려는 가수나 오케스트라들도 적지 않았다.. 예를 들면 자클린 프랑소와, 앙드레 크라보 등이 샹송으로 이 노래를 불렀고, Nat King Cole, Pat Boone 등이 영어로 이 노래를 불렀으며, 로렌스 웰크, 만토바니, 퍼시 페이스, 프랑크 프르셀 오케스트라의 유려한 연주도 특기할 만하다.
우리나라의 팬들에게 감미로운 회상으로 떠오르는 이 영화 <하오의 연정>에서 상대보다 나이가 휠씬 어린 아리안느는 연민의 정을 자아내는 애틋한 사랑의 호소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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