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을 훌훌 벗어버린 사람이 되어 모처럼 오름을 쏘다닌 하루…. 먼저 용담꽃을 기대하며 영주산엘 허위허위 올랐다. 오름엔 일년내내 소를 가두어 놓아 등성이가 거의 다 벗겨지고, 전에 보았던 곳에선 아예 기대하지 못할 정도로 황폐해버렸다. 내려오는 길 쇠똥 무더기 옆에 어렵게 위 사진 모습을 발견해 찍었다. 다음에 간 모구리오름, 야영장으로 변해버린 곳에서 옛 기억을 더듬으며 찾아보았으나 허탕.
꽃을 잊고 그냥 오름만 즐기자며 한 바퀴 돌고 내려와 분화구에 앉아 한 잔하고 돌아오다가 아무래도 미련이 남아 서바이벌 게임장을 돌아 나오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때가 늦어 조금 덜 싱싱했으나 몇 무더기 보인다. 먼저 가버린 동료들이 기다림 때문에 재빨리 찍고 나왔다. 다음에 유건에와 승마장으로 사용하는 나시리오름을 들르고 일찍 돌아와 맛난 점심을 먹고 헤어졌다.
용담(龍膽)은 용담과에 속하는 다년생초로 키는 30~50㎝로 줄기에 가는 줄이 있으며, 굵은 뿌리를 가진다. 잎은 마주나지만 잎자루가 없고 2개의 잎 기부가 만나 서로 줄기를 감싸고 있으며 잎가장자리는 밋밋하다. 종(鐘)처럼 생긴 꽃은 8~10월 무렵 줄기 끝이나 잎겨드랑이에 몇 송이씩 모여 푸른빛이 도는 자색으로 핀다. 통꽃이지만 꽃부리는 5갈래로 조금 갈라지고 갈라진 사이에 조그만 돌기가 있다.
수술은 5개로 꽃통에 붙어 있다. 암술은 1개이며 열매는 삭과로 익는다. 뿌리를 가을철 그늘에 말린 용담은 한방에서 식욕부진이나 소화불량에 사용하며, 건위제나 이뇨제로 쓰기도 한다. 용(龍)의 쓸개처럼 맛이 쓰다고 하여 용담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재배하기는 힘들지만 가을철을 아름답게 꾸미기 때문에 관상식물로 정원에 심기에 적당하며, 반그늘지고 조금 축축하면서도 배수가 잘되는 기름진 곳에서 잘 자란다. (申鉉哲 글)
♧ 龍膽용담 - 홍해리(洪海里)
떠나가도 눈에 선히 밟히는 사람아
돌아와 서성이는 텅 빈 안마당에
스산히 마른 가슴만 홀로 서걱이는데
소리치며 달리던 초록빛 바람하며
이제와 불꽃 육신 스스로 태우는 산천
서리하늘 찬바람에 기러기 떠도
입 꼭꼭 다물고 떠나버린 사람아
달빛에 젖은 몸이 허기가 져서
너울너울 천지간에 흐늑이는데
잔칫집 불빛처럼 화안히 피어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하리라’
떠나가도 눈에 선히 밟히는 사람아.
♧ 용담꽃은 용담꽃 아니었다 - 한영옥
당신은 당신 아니었다.
흙담집 창호문 안에서
쏟아지는 눈발을 바라다보는
가만한 웃음 당신을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 보았다
눈발마다 묻어나는 그 웃음 따라가다
나는 그만 그 방에 들었다
그런데 마주친 당신은 당신 아니었다
당신 비슷하긴 했어도……
용담꽃은 용담꽃 아니었다
청보라빛 입술에 산그늘을 걸치고
가을 풀섶으로 몸을 다 가린 용담꽃을
흔들리던 하루가 잦아드는 어스름에
나는 그만 꺾어들고 말았다
그런데 용담꽃은 용담꽃 아니었다
용담꽃 비슷하긴 했어도……
♧ 두고 온 용담 - 서연정
산행 때마다 보게 되는 몸부림이 있다
예순 나이가 넘어도
뵈는 것이 예쁜 그만큼
몸서리치게 가지고 싶어서
욕심은 또 젊을 적 육욕처럼 거칠어서는
눈독들인 것마다 움켜쥐려는 저 갈퀴손
뿌리째 내 뜰에 옮겨오고 싶은 꽃이 왜 없으랴
고스란히 두고 온 용담
이윽하게 바라만보는 날
끌어안고 싶은 갈비뼈가 홀로 으스러진다
♧ 산정(山頂) 노숙(露宿) - 권경업
어둡지만 맑은 밤은
감춘 눈물
용담꽃 이슬로 내리는
내 어머니의 생애
가난의 한 길은
쏟아질 듯 별빛에
아린 눈 쉬이
잠 못 드는 곳
♧ 용담꽃 - 홍해리(洪海里)
비어 있는
바당으로
홀로 내리는
가을볕 같이
먼저 간 이를
땅에 묻고 돌아와
바라보는
하늘빛 같이
이냥
서럽고 쓸쓸한
이
가을의 서정
슬픔도 슬픔으로 되돌아가고
아아
비어 있는 마음 한 자락
홀로 가득하다.
♬ 가는 가을의 서정 10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