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堂/서정주 님]
생애 : 1915년 5월 18일 (전북 고창) - 2000년 12월 24일
학력 : 숙명여자대학교 명예문학박사
데뷔 : '동아일보' 신춘문예 '벽' 당선, 문단 등단 (1936년)
저서 : 국화 옆에서 외 온가족 애송시집, 화사집, 미당 서정주 시선집
수상 : 2000년 금관문화훈장
경력 : 1979년 문인협회 명예회장 및 동국대 대학원 명예교수
▒동천(冬天)▒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황혼길▒
새우마냥 허리 오구리고
누엿누엿 저무는 황혼을
언덕 넘어 딸네 집에 가듯이
나도 인제 잠이나 들까
구비구비 등 굽은
근심의 언덕 넘어
골골이 뻗히는 시름의 잔주름뿐
저승에 갈 노자도 내겐 없느니
소태같이 쓴 가문 날들을
역구풀 밑 대어 오던
내 사랑의 보또랑물
인제는 제대로 흘러라 내버려두고
으시시히 깔리는 머언 산 그리메
홑이불처럼 말아서 덮고
옛비슥히 비기어 누어
나도 인제는 잠이나 잘까
▒귀촉도(歸蜀途▒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리...
신이나 삼어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색인 육날 메투리
은장도(銀粧刀)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은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구비구비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참아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학 (鶴)▒
천 년 맺힌 시름을
출렁이는 물살도 없이
고운 강물이 흐르듯 학(鶴)이 나른다.
천 년을 보던 눈이
천년을 파닥 거리던 날개가
또 한 번 천애(天涯)에 맞부딪노나
山덩어리 같아야 할 분노(忿怒)가
초목(草木)도 울려야 할 설움이
저리도 조용히 흐르는구나
보라 옥빛 꼭두서니
보라 옥빛 꼭두서니
누이의 수틀을 보듯 세상을 보자
누이의 어깨 너머
누이의 수틀 속에 꽃밭을 보듯
세상은 보자.
울음은 해일(海溢) 아니면
크나큰 제사(祭祀)와 같이
춤이야 어느 땐들 골라 못 추랴
멍멍히 잦은 목을 제 쭉지에 묻을 바에야
춤이야 어느 술참땐들 골라 못 추랴
긴머리 자진머리 일렁이는 구름 속을
저 울음으로도 춤으로도
참음으로도 다하지 못한 것이
어루만지듯 어루만지듯 저승 곁을 나른다.
▒푸르른 날▒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처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 하리야
봄이 또오면 어이 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입 맞 춤▒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콩밭 속으로만 작구 다라나고
울타리는 막우 자빠트려 노코
오라고 오라고 오라고만 그러면
사랑 사랑의 석류꽃 낭기 낭기
하누바람 이랑 별이 모다 웃습네요
풋풋한 산 노루떼 언덕마다 한마리씩
개고리는 개고리와 머구리는 머구리와
구비 江물은 西天으로 흘러 나려..
땅에 긴 긴 입마춤은 오오 몸서리친
쑥니풀 지근지근 니빨이 히허여케
즘생스런 우슴은 달드라
달드라 우름가치달드라....
▒내 늙은아내▒
내 늙은 아내는
아침저녁으로 내 담배
재떨이를 부시어다 주는데
내가, "야, 이건 양귀비 얼굴보다 곱네
양귀비 얼굴엔 분때라도 묻었을 텐데.. 하면,
꼭 대여섯 살 먹은 계집아이처럼
좋아라고 소리쳐 웃는다.
그래, 나는 천국이나 극락에 가더라도
그녀와 함께 가 볼 생각이다...
▒견우의 노래▒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 갔다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언 허이언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눈썹 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엇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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