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크래식

정선 아리랑

조용한ㅁ 2009. 10. 18. 21:25

 

 

 

 
 

정선동강-뱀처럼 구불구불한 사행천(巳行川)의 모습
위치:  강원도 정선군 전선음 신동읍

            한강의 발원지 태백의 검용소에서부터 시작된 골지천이 정선 임계를 지나 여량 아우
           라지에서 대관령에서부터 흘러내려오는 송천과 합류하여 조양강을 이룬다. 조양강은
           다시 나전리에서 오대산 발원의 오대천과 합류하여  수량을 불리우고 곧 정선시내를
           휘돌아 흐른 뒤 가리왕산 회동계곡의 물을 받아 강폭을 더욱 넓힌다. 정선읍 가수리
           에 이르면 태백 고원지역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동남천과 만나고 여기서 비로소 동
           강이 시작된다. 
           멍석을 깔고 누우면 하늘이 멍석만하게 보인다는 첩첩산중의 정선땅을  흐르는 동강
           은 그 이름만큼 사연이 많다. 댐건설로 동강이 동강날 판이었다는 웃지 못할 얘기나
           다시 댐 건설 백지화로 인해 가슴앓이하는 과거 수몰예정지역 주민얘기들 모두 예나 
           지금이나 애환이 섞여있는 듯하다.

          동강은 가수리 동남천과 합류하는 지점부터 장장 51km를 흘러 영월에서 서강과 만나
           남한강이 되어 흐른다. 정선 동강은 가수리부터 강을 따라 약 21km에 이르는 구간이
           다. 정선-평창간 42번 국도 상의 광하교를  건너기 전 조양강 물줄기를 따라 들어가
           면 이내 산과 물이 돌고 도는 강변길이 시작되고 강변 양쪽에 띄엄띄엄 자리한 아담
           한 마을들이 눈에 들어온다. 강마을 중 가장 큰 마을인 가수리를  뒤로 하고 가탄마
           을, 하미마을을 지나 운치리 점재에 이르면 작은 나루터가 있다.

           예전에는 동강변 어디에나 그러하지만 강 건너편 마을을 가기 위해서는 줄배를 타고
           건너가야 했으나 지금은 잠수교가 놓여 있어 배를 타는 정겨운 모습은 볼 수 없다. 
           줄배를 타고 강을 건너 점재마을에서는 동강의 기수라 할 수 있는 백운산(해발 882m)
           에 오를 수 있다. 

           점재마을에서 정상까지는  약 2시간 30분 정도 숨이 턱밑에까지 차오는 급경사 길을 
           올라야 하지만 오름길 도중 보이는 뱀처럼 구불구불 돌아  흐르는 정선 동강의 모습
           은 잊을 수 없는 광경이다. 길이 다소 험하고  급경사 절벽이 많아 조심해야 하지만 
           정선동강의 모습을 한눈에 보기엔 더할나위 없이 좋다.  최근 여러 산악회나 단체에
           서 많이 오가면서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다. 
 
              
긴 정선 아리랑



눈이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검은구름이막모여든다
서산에지는해는 지구싶어 지나 정들이고
가시는님은가고싶어가나


아침 저녁에 돌아가는 구름은 산 끝에서 자고

예와 흐르는 물은 돌부리에서 운다

일년일도에 감자 꽃은 삼재팔난을 적는데
대한의 청년남아는 만고풍상을 다 적네


산천에 올라서 임 생각을 하니 풀잎에
매디매디 찬이슬이 맺혔네

정선 앞 조양강물은 소리없이 흐르고
님향한 충절은 변함이 없네


봄철인지 갈철인지 나는 몰랐더니
뒷동산 행화춘절이 날 알려주네

무릉도원 삼산호수에 도화는 만발했는데
짝을 잃은 외기러기 갈곳이 없구나


한치 뒷산의 곤드레 딱주기 임의 맛만 같다면
올 같은 흉년에도 봄 살아나지

네날 짚세기 육날미투리 신들매 짤끈 매구서
문경새재 넘어가니 눈물이 팽팽 도네


돌담넘어 밭한뙈기를 건너가면 되련만
얼키고 설키었으니 수천리로구나

비봉산 한중 허리에 두견새가 울거든 정든님
영혼이 돌아온 줄 알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정선(旌善) 아리랑
지정번호 :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 
지 정 일 : 1971년 12월 16일 
소 재 지 : 정선군 일원

우리나라 영서·영동지방에 분포(分布)되어 옛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이 고장 민요 정선(旌善) 아리랑은 일명 아라리라 부르고 있다.

정선아리랑이 이 고장에 널리 불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년 전인 조선조 초기(朝鮮 初期)라 전한다.
당시 고려 왕조를 섬기던 선비들 가운데 불사이군 (不事二君)으로
충성을 다짐하며 송도(松都)에서 은신 하다가
정선 (지금의 남면 거칠현동 居七賢洞)으로 은거지를 옮기어
일생 동안 산 나물을 뜯어 먹고 생활하면서
지난날에 모시던 임금을 사모하고 충절(忠節)을 맹세하여
입지 시절의 회상과 가족,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곁들여
고난을 겪어야 하는 심정(心 情)을 한시로 읊은 것이
지금에 정선 아리랑 가사로 인용된 것이 많다.
그때의 선비들은 이러한 비통(悲痛)한 심정을 한시(漢詩)로 지어
율창(律唱)으로 부르던 것을 지방의 선비들이 듣고
한시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풀이하 여 알려 주면서
지방에 구전되던 토착요에 감정을 살려 부른 것이
오늘에 전하여지고 있는 아리랑 가락이며.

그 후 사화(士禍)로 낙향한 선비들과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애창하였고 전란과 폭정시(暴政時)에 고달픈 민성(民聲)을 푸념하며
내려오다가 『아리랑. 아리랑』하는 음율(후렴구)을 붙여 부르 게 된 것은
조선조 후기 (또는 경복궁 중수시)라고 한다.

한일 합방 후부터 일제 말엽까지에는 나라없는 민족(民族)의 서러움과
울분을 애절한 가락에 실어 스스로를 달래 왔었다.
일제를 거치는 동안 사상(思想)이 담긴 노래는 탄압(彈壓)됨에 따라
애정과 남·여 관계의 정한(情恨)을 소재로 한 새로운 노래가
많이 불리어 졌으며. 예로부터 전하여 지는 노래와 함께
오늘날 우리 나라의 독특한 가락을 지닌
민요(民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