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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폴의 강

 






      


책소개

강(江)의 상징성과 불이(不二)의 세계관을 보여 주는

구도자적 연작시

  

구상과 강(江)

구상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함경남도 원산 교외의 덕원에서 성장했다. 덕원은 매우 아름다운 농촌 마을로, 마식령산맥에서 흘러나와 원산의 송도원으로 향하는 적전강을 바라보며 구상은 마음의 해방감을 맛보았다고 한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이후 구상은 경상북도 왜관에 정착하여 1974년까지 살았는데, 왜관의 자택도 낙동강에 인접해 있어서 낙동강을 바라보며 20여 년을 보냈다. 1974년 서울로 이주한 후에는 2004년 타계할 때까지 여의도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살았다. 이렇게 보면 그의 술회대로 강은 평생에 걸쳐 그의 삶과 문학을 관장한 ‘회심(回心)의 일터’가 된다. 설창수 시인이 써 보냈다는 ‘관수재(觀水齋)’라는 현판은 구상 시인의 생활을 한 마디로 압축한 글귀라 하겠다.

연작시 개척자

구상은 한국문학에서 연작시 양식을 개척한 시인으로 평가된다. 50년대의 연작시 <초토의 시>와 60년대의 연작시 <밭 일기>를 거쳐 70년대에 들어서서 그가 연작의 소재로 선택한 것이 바로 강이다. 강이 그의 삶의 중심에 있었고 시적 사유와 상상력을 견인하는 작용을 하였기 때문에 그는 ‘강(江)’ 연작을 시도한 것이다. 1975년에 간행된 《구상문학선》(성바오로출판사)에는 <江> 연작 10편이 실려 있다. 이 책에 실린 <그리스도 폴의 江>이라는 산문에 의하면 그는 이 당시 20여 편의 연작시를 이미 써 놓았다고 했고 그중 한 편의 시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그 시는 그 후 지면에 발표된 연작시에는 들어 있지 않다. <그리스도 폴의 江>이라는 제목으로 연작시가 다시 발표된 것은 1983년 5월부터 1985년 6월까지의 일이다. 《시문학》에 25개월간 연재하여 기존 발표작 10편에 50편을 더한 60편 연작시를 완성한 것이다. 1986년에 간행된 《구상시전집》(서문당)에는 <그리스도 폴의 江> 연작 60편이 실려 있고 2004년에 간행된 구상문학총서 3권 《개똥밭》(홍성사)에는 다섯 편이 추가된 65편이 실려 <그리스도 폴의 江> 연작 65편이 확정되었다.

그리스도폴과 구상

연작시의 제목이 ‘江’에서 ‘그리스도 폴의 江’으로 바뀐 것은 ‘그리스도폴’이라는 성인의 일화에서 얻은 감회를 강조하기 위함이다. 가톨릭 ‘14성인’의 한 사람인 그리스도폴은 크리스토포루스(Christophorus)라는 희랍식 이름에서 온 것이다. 그는 3세기 데키우스(Decius) 황제 때 순교한 성인이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힘이 장사인 거인인데, 젊은 시절 힘만 믿고 악행을 저지르며 향락에 빠져 살다가 어느 수행자를 만나 감화를 받고 사람들을 어깨에 업고 강을 건네주는 일을 하며 살게 되었다. 그는 자기보다 더 힘센 사람이 나타나면 그를 주인으로 섬기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힘 있는 자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을 듣고 예수를 기다리며 살아갔다. 어느 날 밤 조그마한 어린아이가 나타나 강을 건너게 해 달라고 청했다. 어린아이를 어깨에 메고 강을 건너는데 물속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더 무거워져서 나중에는 물속으로 고꾸라질 지경이었다. 견디다 못한 거인은 너는 도대체 어떤 아이이기에 이렇게도 무거우냐고 소리쳤다. 그러자 어린아이는 “당신은 이 세상 전체보다도 훨씬 더 무거운 존재, 예수 그리스도를 어깨에 메고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대답하고 소년 예수는 그 자리에서 손에 물을 적셔서 세례를 베풀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크리스토포루스가 되었다. ‘포루스(phorus)’는 ‘~을 지탱하다’라는 뜻의 말이므로 크리스토포루스는 ‘그리스도를 어깨에 멘 사람’이라는 뜻이다. 크리스토포루스라는 이름은 영어의 크리스토퍼로 정착되었다. 유럽의 성인상 중에는 지팡이를 짚고 한 소년을 어깨에 메고 강물을 건너는 사람의 형상을 흔히 볼 수 있는데 그가 바로 성 크리스토퍼(Saint Christopher)이다.

구상은 그리스도폴의 젊은 날의 방탕한 생활과 그 이후의 소박한 구도의 삶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보고 ‘강’을 그의 회심(回心)의 일터로 삼아 연작시를 써 갈 것을 기약하고 있다. 강은 실제의 삶이 전개되는 생활의 현장이자 구세주를 기다리며 헌신하는 구도의 공간이기도 하다. 강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의 삶을 직시하며 새날의 영광을 추구하려 한다. ‘관수재’라는 말의 뜻 그대로 강물을 바라보며 거기서 삶의 진실을 발견하고 신앙의 진수를 성찰하는 은수자(隱修者)의 행적을 본받으려 한다. 연작시의 첫 장을 여는 작품을 보면 시인의 의도를 선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영원을 발견케 하는 음성

영원한 우주의 무한한 허공을 생각하면 인간의 삶이 극히 짧은 순간 같으나 순간의 삶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무(無)가 아니기에 분명히 실재하는 것이다. 한 방울의 물이 큰 바다를 이루며 바다와 물방울이 둘이 아니듯, 우리의 순간의 삶이 영원한 우주를 이루며 그러기에 순간과 영원이 둘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순간의 삶을 살면서도 영원과 통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구상 시인은 “허무(虛無)의 실유(實有)”라고 표현했다. 실재의 삶에서 벗어나 영원의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 실재의 삶이 이어져 영원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죽고 나서부터가 아니라/오늘로서부터 영원을 살아야”(<오늘>) 한다고 말하였다.

그는 구도적 수행의 삶을 살아가면서 이러한 진리의 체현에 도달했다. 지금 하루하루의 삶이 영원의 일부임을 깨달은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사변이나 머리 굴림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경지다. 그런 점에서 구상의 시는 감동을 주는 시가 아니라 실천을 요구하는 시다. 그의 음성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무상하게 변화하는 현상 속에서 영원의 기미를 발견하여 그것과 하나가 되도록 지금도 우리를 이끌어가고 있다.

  

※ 이 글은 《그리스도 폴의 江》 117~140쪽에 실린 문학평론가 이숭원 교수님의 “강(江)의 상징성과 불이(不二)의 세계관”을 요약 발췌했으며, 중간 제목은 편집자가 넣은 것입니다.

 





저자

구상
동서양의 철학이나 종교에 조예(造詣)가 깊어 존재론적ㆍ형이상학적 인식에 기반한 독보적인 시 세계를 이룩한 시인. 현대사의 고비마다 강렬한 역사의식으로 사회 현실에 문필로 대응, 남북에서 필화(筆禍)를 입고 옥고를 치르면서까지 지조를 지켜 온 현대 한국의 대표적인 전인적 지성이다.
1919년 서울 이화동에서 출생. 본명은 구상준(具常浚). 원산 근교 덕원의 성 베네딕도 수도원 부설 신학교 중등과 수료 후 일본으로 밀항, 1941년 일본 니혼 대학(日本大) 전문부 종교과 졸업. 1946년 원산에서 시집 《응향(凝香)》 필화사건으로 월남, <북선매일신문> 기자생활을 시작으로 20여 년 넘게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시와 사회평론을 씀. 영국, 프랑스, 스웨덴,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에서 시집 출간. 금성화랑무공훈장, 대한민국 문학상, 대한민국 예술원상, 국민훈장 동백장 등 수상. 2004년 5월 11일 작고, 금관 문화훈장이 추서됨.









내용발췌

그리스도 폴!
나도 당신처럼 강을
회심(回心)의 일터로 삼습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처럼
사람들을 등에서 업어서
물을 건네주기는커녕
나룻배를 만들어 저을
힘도 재주도 없고

당신처럼 그렇듯 순수한 마음으로
남을 위하여 시중을 들
지향(志向)도 정침(定針)도 못 가졌습니다.

또한 나는 강에 나가서도
당신처럼 세상 일체를 끊어버리기는커녕
속정(俗情)의 밧줄에 칭칭 휘감겨 있어
꼭두각시 모양 줄이 잡아당기는 대로
쪼르르, 쪼르르 되돌아서곤 합니다.

그리스도 폴!
이런 내가 당신을 따라
강에 나아갑니다.

당신의 그 단순하고 소박한
수행(修行)을 흉내라도 내 가노라면
당신이 그 어느 날 지친 끝에
고대하던 사랑의 화신을 만나듯
나의 시도 구원의 빛을 보리라는
그런 바람과 믿음 속에서
당신을 따라 강에 나아갑니다.

<그리스도 폴의 江― 프롤로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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