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등잔

조용한ㅁ 2010. 5. 22. 08:09

 

                                          등 잔 

 

 

                           

 

 

 

 

     
    등잔 - 도종환   
     
    
     
    심지를 조금 내려야겠다
    내가 밝힐 수 있는 만큼의 빛이 있는데
    심지만 뽑아 올려 등잔불 더 밝히려 하다
    그을음만 내는 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잠깐 더 태우며 빛을 낸들 무엇 하랴
    욕심으로 나는 연기에 눈 제대로 뜰 수 없는데
    결국은 심지만 못 쓰게 되고 마는데
    들기름 콩기름 더 많이 넣지 않아서
    방 안 하나 겨우 비추고 있는 게 아니다
    내 등잔이 이 정도 담으면 
    넉넉하기 때문이다
    넘치면 나를 태우고 
    소나무 등잔대 쓰러뜨리고
    창호지와 문설주 불사르기 때문이다
    욕심부리지 않으면 
    은은히 밝은 내 마음의 등잔이여
    분에 넘치지 않으면 법구경 한 권
    거뜬히 읽을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의 빛이여
    

 

 

 

 

 

등잔/신달자

 

-= IMAGE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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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상가에서 싼값에 들었던
백자 등잔 하나
근 십 년 넘게 내 집 귀퉁이에
허옇게 잊혀져 있었다
어느 날 눈 마주쳐 고요히 들여다보니
아직은 살이 뽀얗게 도톰한 몸이
꺼멓게 죽은 심지를 물고 있는 것이
왠지 미안하고 안쓰러워
다시 보고 다시 보다가
기름 한 줌 흘리고 불을 켜보니


처음엔 당혹한 듯 눈을 가리다가
이내
발끝까지 저린 황홀한 불빛


아 불을 당기면
불이 켜지는
아직은 여자인 그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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