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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조용한ㅁ 2010. 7. 17. 10:34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화가명 :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작품명 : 이젤 앞에 있는 달리의 자화상,카다케스
제작년도 : 1919
작품재료 : 유채
작품설명 :

달리의 첫 번째 초상화로 알려져 있는 이 작품에서는 두텁고 풍부한 질감의 사용에 있어 숙달된 테크닉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그림이 성숙해짐에 따라 포기하게 되는데 드로잉을 더욱 중시여기는 엄격하고 정확한 표현 기법들을 선호하게 된다.

 


화가명 :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작품명 : 등을 보이고 앉은 소녀
제작년도 : 1925
작품재료 : 유채

 화가명 :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작품명 : 창가에 서 있는 소녀
제작년도 : 1925
작품재료 : 유채
작품설명 :

달리의 여동생 안나 마리아의 두 초상화는 1925년의 전시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는데

이 전시회에는 파카소도 방문하였다. 정확하고 차가운 이미지의 색조는 이 시기의 몇몇 글에서 논의되었던

"성스러운 객관성"이라는 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감상자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주제는 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로부터 차용된 것인데 불과 일 년 후 초현실주의의 그림 안에서 왕성하게 표현되는 꿈의 해방을 예고하는 것이다.

 

 

 화가명 :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작품명 : 곱슬머리 소녀
제작년도 : 1926
작품재료 : 유채

 화가명 :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작품명 : 절벽
제작년도 : 1926
작품재료 : 유채
작품설명 :

달리의 초기 작품에서부터 등장하는 암푸르단 평원이나 이 그림에서 표현한 카다케스 부근의 노르페우 케이프와

같은 친숙한 풍경들은 이 시기에 그의 초현실주의적인 시각하에 환영의 분위기를 띠기 시작한다.

 


화가명 :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작품명 : 알게르 항구
제작년도 : 1924
작품재료 : 유채
작품설명 :

피카소의 작품으로부터 받은 뚜렷한 영향은 무엇보다도 사실성이 뛰어난 회화적 기법 습득과

 세련된 표현 방법의 수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양감과 공간, 형상과 색채의 질서정연하고 통제된 배치는 특정한 양식을 뛰어너머 매우 탁월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화가명 :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작품명 : 바르셀로나의 인형
제작년도 : 1927
작품재료 : 유채
작품설명 :

불과 일 년의 세월이 이 두 그림을 가르고 있다.

 이 그림들 안에서 인간의 형상들은 큐비즘적 요소가 적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그림에서의 마네킹과 미래주의에서 유래된 기계-인물(형상)에 대한

그의 관심은 이미 초현시리주의에 감염되어 있음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화가명 :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작품명 : 달빛 아래의 정물화
제작년도 : 1927
작품재료 : 유채
작품설명 :

달리는 탁자 위에 놓인 두상과 화병, 또는 물고기와 괴상한 기타와 같은 초현실주의적 전통의 요소를

도입시키기 위해 큐비즘적 화면을 이용하고 있다. 달은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 세계에서 반복되는 이미지로 직각으로 배치된

 두 개의 선을 통하여 우리의 시선을 펜으로 인도하는데 이 펜은 시인을 직접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화가명 :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작품명 : 보이지 않는 남자
제작년도 : 1929-33
작품재료 : 유채
작품설명 :

달리는 형상을 다양한 오브제의 묘사로 대체하여 그림을 그린 16세기 매너리즘

화가 아르침몰도의 영향을 받는다. 여기서 그는 처음으로 이중 이미지 또는 보이지 않는 이미지의 주제를 접목시키고 있다.

이 작품은 1933년 완성하지 못하고 포기하였으나,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을 인용하면서 꿈의 내용을 적용시킨 완전한 예이다.

 

 화가명 :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작품명 : 비온 뒤의 격세유전의 흔적
제작년도 : 1934
작품재료 : 유채
작품설명 :

공동을 가지고 있는 매끄럽고 꽉 짜여진 형태들은 크레우스 케이프를 기억하게 한다. 화면 전반부에

등을 돌리고 서 있는 성인 남자와 소년 위에는 유기적 형태가 목발에 지탱되고 있으며 신비스러운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화가명 :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작품명 : 메조키스트적인 도구
제작년도 : 1933-34
작품재료 : 유채
작품설명 :

대상의 부드러움은 꿈이 생산해 내는 변형이다. 실제적 대상의 환상으로 보편적 기능을 불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임시한다. 이렇게 하여 이 작품에서는 상처받은 삼나무와 연관된 상처받은 바이올린 이미지가 나타난다.


 

화가명 :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작품명 : 구운 베이컨 조각과 함께 있는 부드러운 자화상
제작년도 : 1941
작품재료 : 유채
작품설명 :

받침대는 얼굴을 환각적인 흉상으로 변화시켰다. 얇게 썬 베이컨 조각은 미국의 음식문화가

그의 작품에 베푼 회화적 재료로, 이 시절 미국에서 달리의 작품은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화가명 :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작품명 : 천사가 있는 풍경 속의 부드러운 괴물
제작년도 : 1977
작품재료 : 유채
작품설명 :

이 작품에서의 특징은 불구의 모습 같기도 하고 어쩌면 신발이나 바나나 껄질과도

같은 환영으로 보이는 부드러운 괴물과 그 괴물이 놓인 단단한 받침대 사이의 대조에 있다.

 

 화가명 :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작품명 : 4차원을 찾아서
제작년도 : 1979
작품재료 : 유채
작품설명 :

아인슈타인의 공간과 시간은 이 작품에 있어서 볼록하고 오목한 굴 옆의 바퀴와 부드러운 시계에 의해 암시된다.

 등을 돌리고 있는 한 쌍의 인물들은 라파엘의 작품 <아테네 학당>에서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연상케 한다.


작가명 :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활동년도 : 1904~1989
작가소개 :

에스파냐의 대표적 초현실파 화가. 피게라스 출생. 살바도르 달리는 1904년 5월 11일 스페인 카탈로니아 북부의 작은 마을

피게라스에서 공증인의 둘 때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돈 살바도르 달리)는 예술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집안도

 중류층에 속하는 비교적 좋은 환경을 이루고 있었다.


달리가 태어나기 3년 전에 이미 죽은 그의 형 이름을 그대로 물려받은 그는 자신에게서 죽은 형의 모습을 찾으려는

 데에 강한 반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후일 그는"나는 결코 죽은 형은 아니며 살아 있는 동생이라는 것을 항시 증명하고 싶었다."

라고 말했다.

한편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너의 형은 십자가의 그리스도에 귀일 하였노라)고 들려주곤 함으로써 어린 달리를 신비의 혼란 속에

 빠지게 하였으며 그의 극히 내성적이며 수줍던 성격이 때로 격렬한 폭발을 보인 것도 이 사실과의 깊은 관련을 보인다.

 
 

 후일 달리는 종교화에 대해 대단한 집착을 보이는데 그의 대표작 (십자가의 요한의 그리스도)는 이때부터 받은 자극에서 기인하는 것이라 보겠다.


그는 어릴 적부터 하얀 암벽이라든가 심연의 바다 등에 경이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1922년 마드리드 미술 학교에 입학한 그는 학교의 수업에는 만족치 않고 인상파, 점묘파를 거쳐, 미래파, 피카소의 큐비즘 등에 관심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이듬해에는 이탈리아의 형이상 회화의 화가 키리코를 알고 나서 몹시 흥분하기도 했는데 그의 초현실적 성향은 그것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것이다.


14세 때부터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그러나 과격한 성품 때문에 1926년 퇴학당했다.

그는 보기 드문 조숙아로 일찍이 인상파나 점묘파·미래파의 특질을 터득하고 입체파나 형이상회화파 등의 감화를 받으며 작풍편력(作風遍歷)을 하였다.


강한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방법론적 의식적 태도가 농후하며, 젊어서 받은 프로이트의 영향이 일생을 지배했다.

그후 1925년 피카소의 신고적주의에 대한 관심을 가져 실험을 거듭했지만 엄격한 기하학에 이내 싫증을 느끼고 만다.

그 밖에도 베르메르, 벨라스케스, 라파엘로에까지 관심을 보여 달리의 고전화에 대한 집착은 평생 그의 생애를 통해 일관되어진다.


미술 학교 재학 시절 반정부 활동함으로 잠시 감옥에 갇힌 바 있는 그는 차츰 무정부적인 타락된 생활이 심화되어 그로 인해

1926년 퇴학 처분을 받고 귀향케 되었다. 1925년에서 1927년에 걸쳐 마드리드 및 바르셀로나에서 발표된 그림들은

다소 모순된 양식의 그림들이지만 매우 면밀하게 그려져있다. 1927년 그에게 있어 기념비적인 해가 되었다. 파리로 나온

그는 피카소를 만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그의 그림은 여태까지와는 달리 놀라운 변모를 보인다.


이 시절 그는 피카소의 영향을 직접 받으면서도 그에 구애되지 않았고 미로와의 접촉을 갖고 초현실주의 화가들과도 인연을 맺게 된다.

 드디어 그는 초현실주의 화가로서 본격적인 활약을 하기 시작한다. 그 외에도 큐비즘, 미래파, 형이상 회화파

등에서 얻은 영향이 그나름의 독특한 회화로 이르는 바탕이 된다.


1929년 카다퀘스의 집에는 많은 손님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들 중 러시아 태생 폴 엘뤼아르의 부인 엘레나(갈라)에게서

 운명적인 만남을 직감하고 그녀에게 짙은 연민의 정을 느낀다. 파리에서 한 번 만나 본 적이 있는 그들을 카다퀘스에

방문토록 초청한 것이다. 두 번째의 만나마에서 달리는 돌발적인 웃음과 이상한 행동 등으로 그녀의 주의를 끌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그녀 역시 그러한 그의 열정에 못이겨 그에게 이끌리고 만다. 극도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에서 벗어나려던 그는

(그녀야말로 나를 치유해 줄 것이다.)라고 믿었으며 그녀에게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자 했던 것이다.


다시 파리로 돌아온 그들은 1929년 말 파리에서의 작품전이 열리는 도중, 홀연히 그곳을 잠적, 사랑의 도피 여행을 더나

 갚은 사랑에 빠져들었으며, 달리는 그때 요람 속의 기쁨을 재음미하기에 이른다. 한때, 달리는 기억의 근원은 태아 적부터

시작되었음을 암시하는 듯 그 요람의 세계를, (거기는 정말 성스러웠다. 그야말로 천국이었다.)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는 폐쇄된 그 호텔의 방 속에서 갈라와의 생활을 통해 태아의 아늑한 꿈을 만끽한 것이다.

그들은 곧 카다퀘스로 돌아와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리가크 항에 조그만 방을 구해 새 생활을 시작하였다. 타인의 아내를

가로챈 아들의 부도덕에 노한 아버지는 결국 그에게 절연장을 보내기에 이르렀고 달라는 그 충격으로 삭발하나 채,

먹다 남은 섬게 껍질과 함께 그 깍아버린 머리카락을 흙 속에 묻고 말았다. 그 매장은 곧 그를 낳고 기를 아버지와 가정이었으며

결국 그는 혈연을 잃은 대신 보다 정신적이며 숙명적인 갈라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그는 그녀로 친해 참다운 달리로서 성장하게 된 것이다.


달리의 수많은 작품 속에는 갈라가 출현케 되고 모든 여성의 모습이 갈라로 변신되었다. 심지어 성모 마리의 모습에 이르기까지도

 갈라의 형상으로 대신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정신적 노이로제에서 고통받는 그를 구하고 치유한 것이 갈라였기 때문이다.

아마 수많은 화가들 중 달리만큼 여자의 내조와 영향을 받은 사람도 드물 것이다.


또하나 달라의 예술에 큰 영향을 준 것은 그가 성장한 카다퀘스의 해안과 리가트 항이다. 태양이 불타고 바닷물이 섬, 바위들

사이로 넘나드는 곳에서 변덕스로 그의 기분을 억제하였던 것이다. 그의 리가트 하아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불모의 고장이요,

아침은 난폭하고 거친 명랑함을, 저녁은 기분나쁜 비애를 가끔 느끼게 하는 곳이다.)라고 하였다. 이런 특이한 환경이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데 그것은 황량한 땅이지만 깊숙히 위치한 마치 자궁 안과 같은 평안함을 주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살바도르 달리는 금세기의 가장 특이하며 괴이한 화가로서 그의 작품 속에는 현대의 작품들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의 회의,

 압도하는 무의식의 위력 등이 내재되어 있다. 즉, 그의 작품 속에는 통속적 경험과 상식으로써는 전혀 감지키 어려운 기묘한 것들로써

 이루어져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초현실의 세계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한 그들 두고 어떤 비평가들은 병적인 그림, 또는 광인의 그림이라고들 평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식과 개성이 무의식적인

 내용물의 홍수 속에 빠져들어 잠적하는 현상은 마치 정신 분열의 증세와도 같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의 그림을 두고

광인의 그림이라고 평할 수 있었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달리 자신의 언급처럼 광인과 자신 사이의 유일한 차이점은 그가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가 광인이라면 그의 작품에서

어떤 공감을 느끼겠는가? 만일 그것을 느낀다면 "그것 역시 모순이 아니겠는가?"라는 문제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식적인 관점에서 살펴볼 때 그의 손이 광인의 손이라 친다면 그의 괴이성을 체외하고라도

극사실적인 기법과 기발한 짜임새의 구성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달리는 철저한 자기 본위의 독특한 화가지만 그의 작품 속에는 현대인이 지닌 갖가지 고민, 불안, 모순, 공포, 절망 등이 숨김없이 표현되고 있다.

 1928년 파리로 가서 초현실주의 화가나 시인들과 교유하였다. 이듬해 최초의 개인전을 열었고,

이때 A.브르통에 의해 정식으로 이 파의 일원으로 인정되었다.


그 스스로 ‘편집광적·비판적 방법’이라 부른 그의 창작수법은 이상하고 비합리적인 환각을 객관적·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하나의 대상을 2중 3중으로 다른 이미지로 보는 병적인 착각을 이용했다. 즉 말이 여인의 나체로 보인다거나 하나의 풍경이

사람의 얼굴로 보인다거나 하는 중복상을 교묘하게 화면에 표현했다. 그는 <그림이란 많은 비합리적 상상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천연색 사진이다>라고 정의하고, 이상한 환상을 객관적·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현대는 인간의 내적 상상력을 제어하고 인간의 추억이나 향수, 신앙, 전설,

영웅, 꿈들을 과감히 매도한다. 달리는 그러한 상상력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편집광적 비판 방법을

연마하여 자신만의 자유로운 길을 개척해 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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