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도 보테로 Fernando Botero - 꽤 사랑스러운 통통함
보기 좋게 살집이 붙은 둥글둥글한 얼굴에 조그맣고 동그란 두 눈, 귀여운 이중턱, 갓 구운 식빵처럼 부푼 팔다리에 뱃살은 삼겹! 작품은 마치 고무풍선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은 듯 과장되게 부풀려졌지만, 무척이나 매력적인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뚱뚱한 몸을 가볍게 움직이며 신나게 탱고를 추거나, 왁자지껄하게 파티를 즐기는 활기찬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지난 해 <덕수궁 20세기 라틴 아메리카 거장>展을 통해, 뚱뚱함의 미학’을 화폭에 담는 콜롬비아의 대표 작가로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1931~)가 소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6월 29일 그는 자신의 회고전인 덕수궁미술관의 <페르난도 보테로>展 오픈을 기념해서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저 역시 세계적인 작가를 만나러 부랴부랴 덕수궁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생각 외로 사람들이 많이 몰렸기 때문에, 기대했던 작가와의 대화 시간은 참석하지 못했고 그저 먼 발치에서 그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죠. 잘 알려져 있는 그의 자화상과는 달리 보테로는 의외로 ’날씬한’ 몸매였습니다. 하지만 하얀 머리와 수염에서는 그의 연륜이 묻어 나왔습니다.
보테로는 유럽 사조에 휘말리지 않는 라틴 아메리카식 표현 방식의 신형상주의(Neo-Figuration)을 구사하며, 라틴 아메리카 일상 문화 체험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특히 터질듯한 절대적 볼륨, 보테로식 패러디 등 자신만의 독특한 미술 세계를 선보이며 전 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죠.
이번 전시는 4개의 챕터로 나뉘어 보테로의 작품을 시대별, 특징별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정물과 고전의 해석’에서는 그의 1950년대 작품들을, ’라틴의 삶’에서는 그의 고향이자 정신적 토대인 콜럼비아를 비롯한 라틴 문화의 향기를, ’라틴 사람들’에서는 라틴 사람들의 소박한 정취와 역사적인 비애를 또한 ’투우와 서커스’에서는 투우 시리즈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 저를 사로잡은 것은 바로 ’정물과 고전의 해석’이었습니다. 보테로는 1950년대부터 마치 르네상스 거장들이 그 이전의 회화와 조각을 재응용 하듯이, 거장들에 대하여 연구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했습니다.
한눈에 봐도 누구의 작품을 패러디했음을 알 수 있을 만큼 유명한 작품인 다빈치, 라파엘 같은 르네상스 거장에서부터 고야, 루벤스, 벨라스케즈, 뒤샹,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많은 거장들의 작품이 보테로식으로 패러디 되었습니다.
뚱뚱한 모나리자는 아쉽게도 이번 전시에서는 빠졌지만 너무 오통통해서 뒤뚱거리는 느낌을 주는 벨라스케스의 <마르가리타 공주>나 얀 반 에이크의 유명한 작품 <아르놀피니의 결혼> 등 거장들의 패러디 작품이 너무 귀엽고 또 유쾌했습니다.
이번 전시회는 페르난도 보테로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총 89점이나 되는 작품들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문학, 미술, 영화, 음악 등 라틴아메리카의 다양한 문화를 살펴보는 강연회와 영화제가 개최되어 무척이나 알찬 느낌이었습니다. 또 가고 싶을 정도로 말이죠.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 1931~)
"나는 항상 내가 그리는 모든 것들이 라틴 아메리카의 정신이 깃들여지기를 바란다."
1932년 콜롬비아 메데인(Medellin)에서 태어난 페르난도 보테로는 풍만하게 과장된 신체와 똑같은 표정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서, 독특한 조형 감각과 함께 현대 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보여주며 이 시대의 살아있는 거장의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는 중세, 이탈리아 문예부흥 초기, 라틴아메리카 식민지시대의 예술에서부터 20세기 현대 경향에 이르는 모든 예술사에서 주제를 끌어냈고, 그것들을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로 변형시켰습니다. 사실 그는 콜롬비아 작가로는 거의 전례가 없을 정도로 미술사적 위치와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이룬 작가입니다.
콜롬비아의 안데스 산맥 깊숙한 곳, 메데진이라는 스페인 식민 문화의 잔재가 남아있는 시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보테로는 세상과 고립되어 정통 미술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어린 시절,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여 17살이 되던 해 고향 신문인 엘 꼴롬비아노에 삽화를 기고하면서 뛰어난 예술성을 나타냅니다.
‘피카소와 예술의 불일치’ 라는 제목의 당시 기사는 현대 미술에 대한 보테로의 성숙한 시각을 보여주었죠. 그 후 1951년 첫 번째 전시회를 가진 보테로는 다음해인 1952년 스무 살의 나이로 보고타의 National Salon에서 2등 상을 받았습니다.
상금과 전시회를 통해 번 돈으로 보테로는 대가들의 작품을 연구하기 위해 유럽을 방문합니다. 그리고 그는 정통 교육 과정 대신 대가들의 작품을 모사하거나 분석하는 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현재까지도 미술사 전통 속에 자신을 확인하는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는데요. 특히 벨라스케스의 견고하고 세밀한 묘사 기법과 고야의 위트 있는 풍자적 표현에 매력을 느꼈다고 합니다.
1957년 보테로가 미국에서 활동을 시작할 무렵 국제미술계는 추상표현주의가 유행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무의식과 의식 그리고 영감에 기반을 둔 추상표현주의의 양식적 특징은 형체가 해체되었고, 붓질의 우연한 효과가 강조되는 것이죠.
이러한 추상표현주의와는 달리 그의 작품은 확고한 형태감을 추구하였던 점에서 확연한 차이를 드러냈습니다. 또한 당시는 대다수 유럽과 미국 미술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라틴아메리카 미술이 새롭게 주목 받고 있을 때였습니다. 유럽과 미국은 앞다투어 라틴아메리카 미술 전시를 개최했고 보테로는 자유롭고 혁신적인 상상력으로 유럽과 미국의 미술계를 사로잡았죠.
가장 대표적인 그의 작업 특징인 데포르마숑 형태는 풍선처럼 터질듯한 형태의 풍만함에서 오는 볼륨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형태를 증대시키는 것은 더 많은 색을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을 넓히고, 표현하고자 하는 형태의 관능미와 풍부함을 잘 전달하는 그만의 방식이었습니다.
또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무표정과 부동 자세 또는 정면을 향한 시선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물의 개성이 아닌 단지 극단적인 불륨에만 집중했던 그의 조형세계를 나타냅니다. 또한 비현실적인 배치를 통해 풍만함을 더 강조하기도 하고 애매모호한 비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1961년 보테로는 뉴욕의 현대 미술 박물관에 ’Mona Lisa Age Twelve’를 공개하면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보테로의 과장되게 부풀린 모나리자는 당시 뉴욕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죠. 1970년대 말 보테로의 명성은 세계적이 되었습니다. 현재는 그는 전세계 옥션 작품 판매 순위에서 피카소, 샤갈, 미로에 이어 4위를 차지하고 있는 라틴 아메리카의 가장 유명한 인기 작가입니다.
‘보테로’하면 뚱뚱한 사람들의 이미지부터 먼저 떠오릅니다. 왜 뚱뚱한 사람들을 그리냐는 질문에 대해서 그는 ‘절대 뚱뚱한 사람을 그린 것이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13세기 이탈리아 미술에서는 볼륨과 형태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여기서 굉장히 강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죠. ‘인체의 볼륨’을 표현하려 했던 것이지, 절대 뚱뚱한 사람만을 그리려 했던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미술작품을 감상하러 가는 일은 마치 다른 세계의 언어를 통하여 이 세상에 대하여 작가와 소통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일상세계에서는 접할 수 없는 무언가 신비하고 묘한 미지의 곳을 탐험하는듯하여 마음이 설레기도 하죠.
보테로가 선보이는 라틴 아메리카의 미술은 그동안 익숙하게 보아 왔던 유럽과 미국 중심의 미술과는 무척 다릅니다. 그런 그의 작품은 감상하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보테로에 관해서는 2008년에도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 그에 대한 관심이 더욱 많아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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