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심사에서 마애삼존불상까지 서산아라메길
글/사진:이종원
지리산 둘레길, 제주도 올레길, 북한산 둘레길 등 전국은 지금 걷기 열풍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풍경이 좋은 곳이 주목을 받았지만 우후죽순 늘어나다보니 트레커도 취사 선택을 해야할 고민에 빠졌다. 미친 듯이 걷는 것이 아니라 삼국시대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걷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면 서산의 아라메길에 몸을 내맡겨보라.
마음이 열리는 절집인 개심사에서 코끼리 닮은 상왕산 능선을 넘어 불교문화의 보고인 보원사터를 둘러보고 백제의 미소 서산마애삼존불상과 강댕이미륵불까지 내포문화의 진수를 체험하는 길이다. 서산의 문화제가 국보 1점, 보물 7점인데 아라메길은 서산의 국보와 보물 8점을 모두 섭렵하게 된다.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메'를 합친 말로 '서산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길'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이런 길은 느릿하게 걸어야 제맛인데 총 6.5km, 쉬엄쉬엄 걸어도 3시간이면 족하다.
개심사 예찬
나는 개심사의 자연미를 참 좋아한다. 불도저로 산을 깎아내고 중창불사를 당연시하는 요즈음의 절집과는 달리 자연미를 고루 갖추었기 때문이다. 산에 동화되며 함께 숨 쉬는 절집이다.
입구엔 '洗心洞(세심동)'과 '과 '開心寺 入口(개심사 입구)'란 작그만 선돌이 있어 답사객을 맞이하고 있다.
'먼저 내 마음을 씻어야 마음의 문이 열린다. '
억지로 마음을 씻으려고 하지 않아도 홍송이 빼곡한 비탈길을 오르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번뇌가 씻겨 나간다.
코끼리 물통인 개심사 경지
쉬엄쉬엄 길을 밟다보면 네모난 연못인 '鏡池(경지)' 가 나온다. 개심사 뒷산인 상왕산의 형상이 코끼리 형상을 하고 있는데 네모난 연못은 코끼리가 마실 물통이라고 한다. 연못의 거울에 마음을 씻었는지 확인해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연못에 얼굴을 비춰보았더니 세파의 때를 씻어 낸 것인지 제법 맑게 보인다.
연못은 소박하기보다는 오히려 투박하다. 경지를 다녀간 중생들이 오염된 마음을 던졌기에 탁해진 듯하다.
요르단강을 건너듯 연못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에 살포시 발을 들여 놓는다.
아마 딸 정수가 왔다면 이런 말을 내뱉었을거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아스라이 계단을 오르니 범종루가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굽은 기둥은 허리가 잔뜩 휜 노파을 보는 듯하다. 범종 아래는 지하세계에서 종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큼직한 구멍이 뚫려 있다.
안양루의 장중한 현판 글씨가 조용한 개심사와 조화를 이룬다. 전서체의 대가인 해강 김규진의 시원스런 글씨다.
종루 기둥에 기대면 안양루 창을 통해 탑과 대웅보전이 살포시 보인다. 반대편으로 시선을 던지면 확 트인 내포 땅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 시원스런 눈 맛에 취해 잠시 눈을 감아보았다.
대개 절이 누각 아래로 들어가는 가람배치를 하고 있지만 개심사는 오른쪽으로 돌아 작은 해탈문을 통해 부처님을 만나게 했다. 이런 동선의 미학이 개심사의 깊은 속 맛이며, 내포 사람들의 천진난만한 심성이 아닐까 싶다.
원목기둥을 다듬지 않는 모습은 유약을 넣고 바로 꺼낸 분청사기 같다. 이런 도발적인 시도가 불가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 마냥 신기하다. 좌측에 심검당 우측에 무량수각이 서 있고 가운데 대웅보전이 자리한다.
대웅보전은 주심포와 다포식의 퓨전 형태로 두 개의 양식이 함께 공존하는 귀한 건물로 보물 제143호로 지정되어 있다. 꽤 무겁게 느껴지는 지붕이 예쁜 선을 그려내고 있는데
일렬로 늘어서 있는 자개 연봉은 기와장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연봉들의 크기가 제 각각이어서 자꾸 시선이 쏠린다. 스님이 거처하는 무량수각에는 하얀 고무신이 가지런히 놓여있어 정갈한 개심사의 분위기를 말해준다.
개심사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심검당의 굽은 기둥이야말로 개심사의 자연미를 말해주는 가장 큰 보물이다.
'요새 강남룸에 가면 자연산을 찾는다' 불자인 여당의 모 대표는 개심사에 찾아 진정한 자연산을 느껴보면 어떨까 싶다.
예전에는 개심사 해우소 가는 길이 참 예뻤다. 굽은 기둥에 판자로 이어 만든 해우소, 화장실이 무너지면 어떻하지, 벽을 꼭 붙들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일을 본 적이 있어 속인들에겐 근심을 푸는 곳이 아니라 또 다른 근심을 얻어가는 곳이었다. '용변 후 낙엽을 뿌려주세요'라는 스님의 글귀가 눈물겹도록 고마웠는데 지금은 번듯한 건물이 대신하고 있어 섭섭함을 감출 수 없다.
대웅전에서 오른쪽으로 스쳐가면 '명부전'이 나온다. 스님들이 울력을 했을 텃밭이 서 있다. 이 터에 전각이 들어설 만한 자리였지만 노동 속에서 해탈을 찾고픈 마음씀씀이가 고맙다.
명부전, 기다란 창살도 눈에 들어오지만 그 안에 모셔진 지장보살상과 시왕상들이 명작이다. 작은 눈에 고개를 살며시 돌리는 모습이 참 생동감이 넘친다. 특히 금강역사상은 격투기 선수처럼 다부지고 표정 또한 생생하다.
산등성이에 조금 올라가면 상왕산을 지키는 산신각이 보인다. 12진산을 산신령과 호랑이가 지키고 있다.
이곳에서 내려다 본 개심사 옆의 모습이 참 아늑하다. .
경내만 둘러봐도 마음이 활짝 열리는 절 개심사. 자연의 거스름 없이 부처님의 마음을 가득 담은 가람의 모습은 거대한 경전처럼 보인다.
상왕산을 따라 아라메길
아라메길은 개심사 신산각 뒷편으로 길이 이어졌다. 부드러운 경사길을 따라 0.8km 20분만 오르면 삼거리가 나온다. 우측으로 500m 쯤 걸으면 가야산을 훤히 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오고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3km쯤 걸으면 보원사지가 나온다.
아라메길을 조성하기 위해 나무를 베어 길은 임도처럼 넓어졌다. 길이 좁을수록 정감이 넘치는데 또다른 서해안고속도로를 보는 것 같아 못내 씁쓸하다.
보원사터
폐사지는 겨울에 찾아가야 제 맛이 난다. 황량한 들판에 외롭게 탑이 치솟고, 석물들이 나뒹구르는 모습을 보면 스산한 느낌마져 들 것이다.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 나듯 폐사지는 황량할수록 진한 감동을 준다.
좁은 협곡에 비하면 절터는 생각보다 넓다. 저 멀리 가야산이 보이고 실개천이 졸졸 흐르는 명당자리임을 알 수 있다.
법인국사 부도 (보물 제105호)
팔각원당형의 부도로 늘씬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다. 화려한 조각이 유려하다. 하대석 각 면마다 안상이 새겨져 있으며 그 안에는 사자가 희죽 웃으며 웅크리고 앉아있으며 그 위에 꿈틀거리는 용이 석물을 한 바퀴 휘감고 있다.
장식이 없는 중대석에서 여백의 미학을 보고 상대석에는 앙련이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있으며, 몸돌에는 살아있는 듯한 사천왕상이 부도를 지키고 있다. 상륜부도 비교적 잘 보존 되어 있다. 고려 석조예술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법인국사 부도비 (보물 제106호)
구름 속에서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는 이수는 입체감이 떨어진다. 반면 비를 바치고 있는 귀부는 상대적으로 강렬하다. 여의주늘 물고 희죽 웃으며 코를 벌름거리며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굵은 발톱을 땅에 굳건히 붙이고 꼬리는 뱀이 또아리트듯 살포시 돌려 놓아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린다.
보원사 오층석탑 (보물 제104호)
보원사터에서 가장 웅장한 감동을 주는 것이 이 탑이다. 9 m가 훌쩍 넘는 거인이며 찰주까지 남아 있어 더욱 상승감을 돋보인다. 하층기단에는 12마리의 사자가 탑을 호위하고 있으며, 상층기단에는 각면에 팔부신중이 두 분씩 새겨져 있다. 그 중 마징가제트에 나온 아수라상도 보인다.
낙수면과 지붕돌의 반전도 경쾌하다. 주변 산세와 너무나 잘 어우러져 있다.
보원사 당간지주 (보물 제103호)
절터 입구를 지키는 당간지주를 좋아한다. 강릉 굴산사지 당간지주는 무지막지하게 크고, 속리산 철당간은 하늘을 찌르는 매력이 있지만 난 오히려 유려한 맛을 자랑하는 보원사 당간지주가 좋다. 늘씬한 몸매에 상승감이 보이는 띠문양까지 새겨 넣었다. 안흥항으로 향하는 백제나 고려의 사신들은 당이 펄럭이는 이곳을 지나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개울을 건너 석조 (보물 제102호)를 만났다. 어찌나 크던지 아이들이 수영을 해도 좋을 것 같다. 이것만 보더라도 보원사의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용연계곡을 따라 하얀 쌀뜨물이 흘러가겠지.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잘 생긴 철불이 있다. 손은 없어지고 가부좌를 튼 철불에 한없이 감명을 받았는데 바로 이곳에서 출토 된 철불이다. 앉은 크기만 150 cm가 넘는 철불이라면 그를 모실 금당은 또한 얼마나 컸을까 상상해본다. 보원사지는 폐사지에 남아있는 유물들이 전부 보물급일 정도로 대단하다.
이 우직한 아름다움을 오랜동안 간직하고 싶다.
마애삼존불상까지는 시간이 없어 걷지 못하고 버스로 이동했다.
서산마애삼존불상 (국보 제84호)
이런 멋진 유물을 보는 데 입장료와 주차비가 없다고 하니 다소 미안한 감이 든다. 근처 수덕사는 세리처럼 돈을 징발해 가는 기분이 들었는데 서산은 아주 쿨해서 좋다.
용현계곡을 건너 산길로 조금 올라가야만 백제의 미소를 볼 수 있다. 먼저 다리 위에 올라 산등성이에 달려있는 전각을 보라. 까마득한 절벽에 얼마나 어렵게 마애불을 새겨냈는지는지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 아늑한 계단길을 좋아한다. 오를수록 번뇌를 떨쳐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불상은 빛이 비치는 방향에 따라 미소짓는 모습이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불자들 사이에선 자신의 생각을 얘기해주는 불상으로 통한다
큼직한 손 바닥에는 손금마저 새겨있고, 수인 또한 승리의 V자 처럼 보인다. 치렁치렁 옷주름이 늘어져 있어 온화한 자비가 흘러내리는 것 같다.
좌측의 보살은 약사보살처럼 약합을 들고 있으며, 아이 처럼 작고 가느다란 눈을 가지고 있어 본존불과는 다른 미소를 띈다. 살짝 해가 비쳤는데 미소지으려는 찰나를 새긴 것 같다.
우측의 보살은 오른쪽 다리를 무릎에 얹어 깊이 생각하는 반가상의 모습을 하고 있다. 처음 이곳을 발견했을 때 이곳 사람이'용용 죽겠지'라고 말할 정도로 내포사람의 해학을 담고 있는 얼굴이다.
기교를 부렸건만 전혀 표나지 않는 자연미가 사랑스럽다. 백제의 조각 예술의 결정체가 틀림업다. .
당진, 태안땅은 백제가 당나라로 향하는 가장 빠른 길이고, 가야산은 부여로 향하는 길목으로 험난한 파도를 이기고 당나라로 가야만 하는 백제인들의 절박한 심정은 오죽했겠냐. 바로 그들은 이 부처의 미소를 통해 위안을 받았고 부처님의 보호아래 안심하고 배를 탔을 것이다.
아쉬움을 때문일까 몇 번을 고개를 돌렸는지 모른다. 백제의 미소를 마음 속에 고히 품고 2011년을 살아야겠다.
강댕이 미륵불
아라메길의 마지막 코스이자 시작은 강댕이 미륵불이다. 원래는 고풍리에 있었는데 고풍저수지가 축조되어 수몰되자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고향을 잃어버린데다가 세월의 풍파에 얼굴은 문드러졌지만 그 수인은 백제인의 염원이 담겨 있었다.
원래 코스는 강댕이 미륵불부터 시작된다. 총 6.5km 2시간이면 걸을 수 있는데 문화유물을 천천히 감상하면서 걷겠다면 3시간이 걸린다. 더 걷겠다면 개심사입구에서 임도를 따라 가면 오학리입구- 서해안고속도로 굴다리-오학리3거리-해미향교-해미읍성동헌까지 까지 걸으면 총 13..5km 4시간이 걸린다.
(맛집) 고목나무가든 날이 따뜻하면 근처 할머니들이 나물을 캐 개심사 입구에서 판다. 상왕산자락에서 캐온 질 좋은 나물과 바다가 가까워 해산물이 주종을 이룬다. 더덕을 얇게 썰어 고추장 양념을 입혀 불판에 구워낸다. 식당은 서까레가 훤히 보이는 한옥건물로 입구에는 상호답게 고목이 서 있다. 주 메뉴는 더덕정식 더덕정식으로 1인분에 10,000원이며 2인이상만 주문을 받는다. , 토종백숙 40,000원, 우럭젓국 소 25,000원, 우럭찜 소 25,000원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 19-1 041-688-7787 개심사 입구 일주문 옆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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