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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화 대장 - 비제 르브랑|

조용한ㅁ 2011. 3. 13. 09:00

초상화 대장 - 비제 르브랑 

 

 

자화상 - 연대미상 

 

한 사람의 생애를 드려다 보는 일은 영화를 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안타까운 대목과 속 시원한 일 그리고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인 일들이 이어지다가

비극으로, 헤피 엔딩으로 막을 내리게 되죠. 물론 주제에 따라 전체적으로 로맨틱 코미디가

되기도 하고 액션물이 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비제 르브랑 (Vigee Lebrun)의 인생을 영화로 친다면 흥행에서 대단히 크게 성공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초반과 중반까지는 긴장과 흥분이 교차되어 눈길을 다른 곳으로 옮기기가

어렵지만 중반 이후로는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660점의 초상화와 200점의 풍경화를 남겨 놓은 프랑스 여류 화가의 삶을 느긋하게

쫓아 가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자화상 – 1782

 

자화상 – 1782 (소품)

 

루벤스 - 밀짚모자를 쓴 여인

 

비제 르브랑의 가장 유명한 자화상 이야기를 먼저 해 보겠습니다. 1782년 그려진 자화상은

르브랑이 플랑드르로 여행갔을 때 본 루벤스의 밀짚 모자를 쓴 여인이라는 작품을

보고 영감을 얻어서 그린 것인데 두 점을 그렸습니다. 생명력이 꽉 찬 이 그림은

어디에 걸어 놓아도 공기 청정기처럼 생명력을 뿜어 낼 것 같다는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자화상 1778

 

르브랑의 아버지도 초상화가였던 모양인데 그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다만 딸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딸이 어렸을 때 장사에

재주가 있는 걸 알아차린 것도 아버지였고 딸 역시 장사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음을 보여

주기도 했습니다. 르브랑의 인생 전체를 돌아보면 그녀에게는 죄송스러운 표현이지만 실제로

대개 남는 장사를 했던 것 같습니다.

 

 

 

자화상 1781 -1

 

 

자화상 1781 -2

 

 

자화상 1781-3

 

이 자화상은 3점이 순서대로 제작되었습니다. 동일한 작품을 르브랑 자신이 복사한

것입니다. 그림 속에서 그녀는 붉은색과 흰색, 검은색으로 완벽하게 자신을 나타냈습니다.

자연스러운 머리결과 보석 같은 눈 그리고 감각 있는 옷차림을 보고 있으면 그녀가

훗날 프랑스 사교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은 아닙니다.

 

 

 

 

자화상 1782 (파스텔)

 

 

자화상 1787

 

그러나 르브랑이 신으로부터 받은 가장 큰 달란트는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었습니다.

그녀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기억은 어려서 수도원에 관한 것인데 수녀들이 벌을 줄 때

이용하던 기숙사 벽에 그려진 그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12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 납니다. 아버지는 딸이 그림에 대한 재능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어려서 르브랑이 수염이 있는 남자의 얼굴에 램프의 불 빛이 비추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는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빛과 그림자까지 묘사했던 모양입니다.

이 그림을 본 아버지는 딸이 화가가 될 것이라는 말을 남깁니다.

 

 

 

자화상 1789

 

15살이 되던 해부터 르브랑은 어머니와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영화로 치면 주인공의 고난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미용사였던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이

죽고 난 후 몇 년간 지내다가 재혼을 하는데 르브랑의 새 아버지는 못된 남자였던 모양입니다.

르브랑이 벌어 온 돈을 탕진해버리는데 르블랑이 서둘러 결혼을 한 것도 빨리 그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영화 같습니다. 르브랑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남자,

아버지와 남편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자화상 1790

 

20살이 되던 해에 화가이자 미술품 거래상인 장 밥티스트 피엘 르블랑이라는 사람의 집으로

식구들과 함께 이사를 갑니다. 미술품 거래상답게 집에는 수 많은 그림들이 있었고 그녀는

이 작품들을 모사하면서 많은 것을 얻습니다. 르브랑은 이 남자가 썩 마음에 내켰던 것은

아니었지만 빨리 생활의 안정을 찾고 싶은 생각에 이 남자와 결혼을 합니다.

사실 이 남자와의 결혼을 적극적으로 밀어 부친 사람은 그녀의 어머니였습니다. 남편은 훗날

비제 르블랑이 유명해지고 돈을 많이 벌자 그 돈으로 도박을 해서 탕진을 하기도 합니다.

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그녀가 어린 딸과 함께 외국으로 망명길에 오르자 프랑스 시민권을

유지할 생각으로 그녀와 이혼을 하는데, 참  치사한 남자입니다.

이 남자에 대한 감정이 있어서인지 660점이나 되는 초상화 중에 남편을 그린 초상화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안 그린 것인지, 제가 못 찾은 것이지 ----

하긴 자신의 안위 때문에 아내와 딸을 버린 남자가 뭐 예쁘다고 기억하겠습니까?

 

 

 

자화상 1790

 

그녀의 화가로서의 인생이 본격적으로 꽃이 피기 시작한 것은 마리 앙트와네트의 전속

초상화가 되면서부터인 것 같습니다. 10년간 30점의 마리 앙트와네트를 그렸을 뿐 아니라

왕비의 아이들을 그렸는데 곧 프랑스는 말할 것도 없고 유럽 전역의 왕실에도 그녀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합니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자 마리 앙드와네트와의 관계 때문에

프랑스를 떠날 수 밖에 없었는데 다시 프랑스로 돌아 오는 것을 허락 받는 12년 동안

유럽 전역을 돌면서 성대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역시 마리 앙트와네트와의 관계가

영향을 준 것도 분명합니다. 물론 르브랑 그녀 자신의 실력이 제일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자화상 1794

 

그녀가 프랑스 왕립아카데미 회원이 되면서 그녀를 시기하는 사람들로부터 그녀에 대한

몇 가지 안 좋은 이야기들이 흘러 나왔습니다. 원래 아카데미 회원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리 앙트와네트가 남편인 루이 16세에게 압력을 넣어 성사 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은 제가 생각해도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또 하나는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칼론느와 오랜 기간 동안 그렇고 그런 사이였고 칼론느가 왕궁의 보물을 르브랑에게 물쓰듯

썼다는 이야기인데 확인된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르브랑이 여왕과 왕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돈을 많이 모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자화상 1795 (파스텔)

 

1789 7 14 프랑스 혁명이 발생하고 그 해 10 6일 베르사이유 궁전으로 혁명군이

쳐들어 갑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르브랑은 딸과 함께 마차를 타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탈출합니다. 그녀의 자화상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일하는 여자로 변장을

해야만 했는데 여기가 영화로 치면 하이라이트가 되겠지요.

 

 

 

자화상 1800

 

 

자화상 1800

 

그 뒤로 이탈리아, 러시아, 영국 등 가는 곳 마다 왕실의 초상화를 그리고 현지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는 등 그녀의 발걸음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녀에 대한 이 이후의

이야기는 제 느낌으로 말한다면 이 한 줄이면 될 것 같습니다.

- 모든 것이 그녀를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

 

 

 

자화상 1803 (에칭)

 

 

르브랑은 당시의 여성 나이로서는 기록적인 나이인 87세에 세상을 떠 납니다.

, 마침내 쉬려 하네

그녀의 묘비명입니다 

 

 

 

자화상 1808

 

아무래도 르브랑 이야기를 좀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녀의 딸 줄리와 마리 앙트와네트를 지나치려고 했더니 두 여인의 눈초리가 따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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