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사라진 계절 - 천양희

조용한ㅁ 2014. 3. 8. 10:30

                                                                                        

 

   사라진 계절 -   천양희

 

 

  사자별자리 자취를 감추자 봄이 갔다

  꽃이 피었다고 웃을 수만은 없는 그런 날이었다

  쾅 문을 닫는 순간 내 안의 무엇인가 쾅, 하고 닫혔다

  고통이란 자기를 둘러싼 이해의 껍질이 깨지는 것이었다

 

 

 

 

 

 

 

 

  전갈자리별 자취를 감추자 여름이 갔다

  초록 나무에도 그늘이 짙은 그런 날이었다

  종이 위에 생각을 올려놓는 순간 말할 수 없어 나는 침묵을 썼다

  외로움은 내 존재가 피할 수 없이 품은 그늘이었다

 

 

 

 

 

 

 

  노랑발도요새가 자취를 감추자 가을이 갔다

  고독이 지쳐 뼈아프게 단풍드는 그런 날이었다

  잃다와 잊다가 같은 말이란 걸 아는 순간 내 속에 피가 졌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것이 내가 살아남은 유일한 이유였다

 

 

 

 

 

 

 

  흰꼬리딱새가 자취를 감추자 겨울이 갔다

  몸이 있어서 추운 그런 날이었다

  안다고 끝나는 게 세상일이 아니란 걸 깨닫는 순간 내 안의 어둠이 쏟아졌다

  이 세상에 와서 내가 없는 계절은 없을 것이다

 

 

   * Giovanni Marradi / Anna's Theme                         

 

           최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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