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연주곡

맨발의 이사도라

조용한ㅁ 2014. 6. 10. 03:41

 

 

 

  이사도라 던컨(1878년-1927년)

 

 



20세기 초 유럽의 예술계는 혜성같이 등장한 한 여인으로 인해 술렁거렸다.

아름다운 무대 장치도 없이, 몸에 딱 붙는 무용복도 없이, 결정적으로이제까지 춤을 춘다면 반드시 신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토슈즈도 없이, 맨발에 헐렁하고 속이 비치는 드레스를 걸친 무용수는 처음 보는 춤을 사람들에게 선보였다.

아름답고 기교가 뛰어난 전통 발레와는 전혀 다른 춤이었다. 하지만 그 춤을 보고 있노라면 춤을 추는 무용수의 절절한 마음이그대로 다가왔다.

신대륙 미국에서 건너온 무용수 이사도라 던컨(1877~1927)은 맨발의 자유로운 춤으로 유럽 예술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그녀는 영국과 독일, 러시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의 춤으로 인해 무용에 대한 인식은 180도전환되었으며 토슈즈의 발레를 떠나 자유롭게 인간의 몸과 마음을 표현하는 현대 무용이 등장하였다.

  


이사도라 던컨, 그녀는 맨발로 고전적 무용세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어머니 슬하에서 자란 그녀는 한번도 제대로 된 무용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생각한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10세가 되기 전에 동네 아이들을 모아 놓고 마음속의 생각과 느낌을 몸으로 표현하는 법을 가르쳤다.

15세가 되자 시카고로 간 이사도라 던컨은 프로 무용수가 되고 싶었지만 아무도 그녀의 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이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먹고 살기 위해 술집에서 캉캉과 비슷한 것을 추면서 돈을 벌었다.

돈벌이는 괜찮았지만 이사도라 던컨은 이 일을 1주일만에 그만두었다. 그것은 춤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후 뉴욕으로 건너간 이사도라 던컨은 2년 간을 더 삼류 무용수로 보낸다. 아무도 그녀의 춤을 제대로 바라봐 주지 않았다. 마침내 20세기를 1년앞둔 1899년, 이사도라는 가축수송선을 타고 유럽으로 건너간다.

▲ 유럽에서의 열광 

편협한 청교도 사상에 사로잡혀 그녀의 춤을 이해하지 못했던 미국과는 달리 세련되고 폭이 넓은 유럽의 예술계는 그녀의 춤을 단번에 받아 들였다. 많은 예술가들이 그녀의 춤을 보고 감명을 받았으며, 찬사를 보냈다.

이사도라 던컨의 성공은 특히 독일과 러시아에서 눈부셨다. 특히 정통 발레의 본고장이었던 러시아에 던진 충격은 대단했다. 새로운 무용에 대한 전폭적인 관심으로 그녀는 무용 학교를 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자유로운 사상과 영혼에 깊이 감명받은 그녀는 그것을 춤으로 표현하기위해 그리스에서 자신의 춤을 더욱 발전시키기도 했다.

열정적인 무용가였던 만큼 이사도라 던컨의 사랑도 열정적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어머니를 보며 자란 그녀는 결혼 제도를 믿지 않았다.

그녀는 독일에서 무대 감독 고든 크레이그와의 사이에 딸 디어드리를 얻고, 미국의 재력가 패리스 싱어와의 사이에 패트릭을 얻었지만 결코 그들과 결혼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유롭게 춤을 추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자신이 추고 싶은 춤을 추며 두 자녀를 둔 어머니의  

행복을 느끼던 그녀에게 닥친 첫 번째 불행은 너무나 끔찍한 것이었다.

보모와 함께 나들이 나갔던 아이들을 차 사고로 인해 모두 잃은 것이다. 이사도라 덩컨에게 이제남은 것은 춤밖에 없었다. 그녀는 미친 사람처럼 춤을 추며 전 유럽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자유롭고 강인했던 그녀는 춤을 통해 실의로부터 점차빠져 나올 수 있었다.

1차 대전이 일어나고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이사도라 던컨은 파리에서 새빨간 튜닉을 입고 ‘마르세예즈’를 무대에 올린다. 그녀는 이 공연 마지막에 “시민이여! 무기를”이라고 외치며 전쟁에서 밀리고 있던 프랑스인들의 용기를 북돋우었다.

1922년 러시아를 다시 방문한 이사도라는 그곳에서 17년 연하의 천재 시인 세르게이 에세닌을 만나 전격적으로 결혼을한다. 그러나 그 결혼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녀의 재능과 사랑을 질투한 에세닌이 자신의 감정을 이기지 못해 자살해버리고 만 것이다. 

 

인생에 닥친 고통을 춤으로 극복하며 살아가던 이사도라 덩컨은 1927년 프랑스 니스에 있었다. 최근에 사귄 젊은 벗이 그녀에게 스포츠 카 드라이브를 제안했다.

빨간색의 길고 긴 머플러를 두른 그녀는 가볍게 차에 오르며 친구들에게 “안녕, 나는 영광을 위해 떠나!”라고 외쳤다.

그리고 머플러자락을 뒤로 넘기고 차가 출발했다. 그 순간, 유럽 무용사의 혁명가이자 자유로운 여성의 삶을 온 몸으로 살았던 이사도라 덩컨에게 죽음이 왔다. 빨간색 머플러가 자동차 바퀴에 끼면서 그녀의 목이 부러진 것이다.

그녀의 춤은 그 춤이 너무나 자유로워 후대까지 춤사위 하나 하나가 전해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가 20세기 초반 발레 위주의 무용계에던진 자유로운 정신만은 길이 남아 현대 무용의 효시가 되었다.

여성에게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요구하고 순종적인 삶을 기대하던 20세기 초반, 이사도라 던컨은 자신의 온몸으로 참다운 여성을 살아낸 사람이었다.


김정미 .. 방송ㆍ시나리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