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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그림들/외국의화가의 작품

Mark Rothko 2

Mark Rothko

American Painter Abstract expressionism

(1903.9.25.~1970.2.25.)

 

 

 

 

 

 

Black on maroon     1959

Oil on Canvas

 

‘비극적 서사의 예술적 승화’

바로 그의 삶이자 예술이 아닐까 한다.

 

‘ 비극이라는 감정은 그림을 그릴 때 늘 나와 함께 했다’

 

그는 그의 고백과 함께 그가 느끼는 비극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 앞에 서면 할 말을 잃게 하고 시선을 사로잡는 색면,

관람자를 흥분시키며 감동으로 몰아가는,

모든 감성을 압도하듯 깊고 무거운 작품이 탄생하게 되었을 것이다.

자기방식대로, 고집스럽고 집요하게, 괴팍하고

비상식적으로 풀어나간 20세기 미국 현대미술의 자존심 Mark Rothko.

고뇌 속에서 치열하게 온 열정을 쏟아 부었던 그의 작품들.

그의 작품 앞에서면

어둡고 단순한 색의 요동치는 생명력과 거스를 수 없는 숭고함에

경건해 지는 내 마음, 어쩔 수 없다.

 

 

 

 

 

Four darks in Red      1958

Oil on Canvas

 

1950년경 마크 로스코는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구축하여

‘단순한 표현 속의 복잡한 심정’이라는 그의 이상을 실현하여 ‘색면 예술’이 시작 되였다.

 

 

 

 

 

Black on Maroon     1958

Oil on Canvas

 

Mark Rothko는 잭슨 폴록과 함께 추상표현주의 양대 산맥으로 평가되어 왔으며

20세기 미술사에 한 획을 긋는 화가로 자리매김 하였다.

 

 

 

 

 

Untitled     1958

Oil on Canvas

Kawamura Memorial Museum of Art   Japan

 

Mark Rothko는 추상 이미지가 인간사의 근원적 속성을 직접 반영할 수 있고,

회화가 비극, 환희, 숭고함과 같은 영원한 주제들과도

때로는 맥을 같이 할 수 있다고 믿었다.

 

 

 

 

 

       Black on Maroon     1959

Oil on Canvas

 

       그는 그림의 제목을 붙이는데 있어 숫자나 색깔로 작품을 표시했는데,

     그 이유는 단어의 의미가 관객의 마음과 상상을 마비시키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No. 19     1958

Oil on Canvas

MOMA(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붓 자국이 거의 없는 그의 작품은 어떤 주제를 표현하는 것도 거부하고 있다.

 

 

 

 

 

No.16 (Red, Brown  and Black)     1958

Oil on Canvas

 

Mark Rothko는 그의 그림앞에 서는 모든 감상자에게 자신을 몰입시켜

몰아의 경지에 들어서고 신비적 공허와 숭고를 체험하게 한다.

 

 

 

 

 

Earth and Green

 

Mark Rothko의 작품은 1950년대 후반부터 상당히 어두워졌다.

1958년 무렵에는 화려한 색상 대신

붉은색, 갈색, 고동색, 검은색 등 어두운 색을 선택하여 사용하였고,

특히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몰두했던 벽화작업에서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진다.

 

 

 

 

 

 

 

Blue Green and Brown

Oil on Canvas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No. 14

Oil on Canvas

 

한 비평가가 그의 작품을 혹평을 한데 대해

“나는 내 작품에 관하여 변호할 의도가 없다. 내 작품은 스스로를 방어한다.”

Mark Rothko는 그의 작품을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았기에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의 작품이 스스로 이야기하니까...

 

 

 

 

 

Untitled    1958

Oil on Canvas

 

 

 

 

 

Ravenda and Mullberry     1959

Oil on Canvas

 

Mark Rothko의 Seagram 사건

 

1958년 Rothko는 뉴욕의 Park Avenue에 있는

주류회사에서 새롭게 지은 Seagram Biulding에 장식할 벽화를 35000달라에 주문 받았다.

지금의 250만달라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그 당시 최고의 건축가의 설계로 지어진 최고급의 빌딩에 걸맞게

최고의 화가였던 그에게 의뢰한 것이다.

자신의 그림을 많은 사람에게 경험을 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Rothko는

모든 열정을 쏟아 부으며 열심히 작업을 하여 30점을 완성했지만

호화판 레스토랑 ‘Four Season'에 오는 많은 손님들의 허영심이

자기 그림을 가치 없게 만들 거라는 염려 때문에 결국 계약을 파기했다.

250만 달라의 큰돈도 그의 예술 속에서는 전혀 유혹이 될 수 없었다.

Rothko는 자기 작품의 순결성을 지키고, 영합을 마다함으로써

화가의 자존심을 지킨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그의 작품의 가치는 더욱 치솟게 되었고

Rothko 작품은 작품이 구매자를 결정한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래서 더욱 유명해진 ‘Seagram Mural(씨그램 벽화) Series’이다

 

 

 

 

 

Seagram Mural

Black on Maroon     1958 

  

 

 

 

 

Seagram Mural Series     1959

Oil and mixedmedia

  

 

 

 

 

Seagram Mural      1959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Seagram Mural Section 3

Black on Maroon

 

 

 

 

 

Seagram Mural Section 4    1959

 

 

 

 

 

 

Seagram Mural Section 3

Black on Maroon     1959

 

 

 

 

 

Seagram Mural for End Wall Untitled  1959

 

 

 

 

 

Seagram Mural Section 1

Untitled

 

 

 

 

 

Seagram Mural Section 4

Red on Maroon     1959

 

 

 

 

 

Seagram Murral

No.6 (Black on Maroon)     1958

 

 

 

 

 

Seagram Mural Section 4

Red on Maroon    1959

 

 

 

 

 

 

Black on Dark Sienna on Purple     1960

 

"만일 내 그림 앞에서 감정을 터뜨리고 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순간이 바로 내가 그림을 매개로 그들과 소통한 순간이다."

 

 

 

 

 

No.3 (Bright Blue, Brown, Dark Blue on Wine)     1962

 

 

 

 

 

No.8 Gray, Orange on Maroon     1960

Oil on Canvas

 

 

 

 

 

Untitled     1962

Leeum Gallery of Art  Seoul

 

이작품은 '리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즈음의 Rothko는 어머니의 죽음과 자신의 건강상 문제 등으로 인한 심한 우울증으로

상당히 어려웠던 시기였다.

Rothko의 작품은 말년으로 갈수록 화면은 점점 어두워져 갔고

암울하고 사색적이며 절제된 작품들을 남겼다.

 

 

 

 

 

Untitled     1962

 

 

 

 

 

No.7     1964

 

많은 사람들이 나의 그림을 보고 울거나 나약해지는 것은

나의 인간적 감성이 그들에게 전해진 까닭이다.

 

 

 

 

 

No.10  Brown Black Sienna on Dark Wine     1963

 

 

 

 

 

No.14 Horizontal White over Darks     1965

 

 

 

 

 

No.6    1964

 

Rothko의 회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 실존의 비극과 이것을 이겨내는 숭고한 정신을 표현하고자 했다.

 

 

 

 

 

No.14    1960

 

굉장히 큰 그림을 주로 그렸던 그의 그림은

압도하는 깊고 경건한 감동에 그 어떤 종교벽화를 못지않은 숭고미가 느껴지게 한다.

그가 말년에 심적 고통과 함께 파고들었던 예술세계가 함축된 때문이 아닐까.

 

 

 

 

 

Black Form

 

색면의 경계에 서서 또 다른 경계를 바라보는 경험

그것이 Rothko와의 만남이다.

 

 

 

 

 

Untitled     1968

Private Collection

 

 

 

 

 

Black Red and Black     1968

 

붓 대신 스펀지를 사용하기도 한 마크 로스코의 그림은

단순하지만 신비스런 느낌을 준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유화 900여점, 파악된 종이 작품만 2천500여점이라는 엄청난 양의 작품을 남겼다.

 

 

 

 

 

Untitled     1969

Private Collection

 

1969년 작 "무제"를 비롯하여 Rothko가 생애 마지막에 그린 그림들은

고동색 혹은 검은색과 회색의 색면으로 거의 이루어져 있다.

내면에서 요동치는 우울, 고립...고독이 표현이었을 것 같다.

 

 

 

 

 

Untitled     1969

Private Collection

 

 

 

 

 

Untitled     1969

Tate Modern Art   London

 

 

 

 

 

Untitled     1969

Tate Modern Art  London

 

 

 

 

 

Untitled     1969

 

 

 

 

 

Untitled     1969

 

그는 인간의 감성문제, 즉 인간적 고뇌나 비극, 희열, 그리고 운명 등을

그의 그림에서 표현하고자 했으며,

사람들과 함께 종교적 체험까지 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No.8 

Oil Acrylic and Mixed Media

 

내 그림 앞에서 우는 사람들은 나와 함께 종교적 경험을 하는 사람들로서

나는 그림을 그릴 때 그런 경험을 한다."

 

 

 

 

 

Untitled (Brown and Gray)    1969

 

말년의 Rothko는

가족에 대한 애착, 불안과 신경쇠약, 우울...심적 고통으로

명예에 대한 병적인 집착과 경쟁 심리의 질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결국 자살이라는 절박한 수단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만

그 후 그는 더 유명해져

로스코의 작품에 대해 "초월적 힘을 가진 색채"라고 평하기 시작했다.

   

 

 

 

 

Untitled

 

Rothko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지만 자신의 회화를 통해 인간의 유한성을 직시하고

실존과 마주하며 현세의 갈등을 극복함으로써

절대적인 영원에 도달하는 체험을 제공하고자 했던 그의 예술세계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숭고의 예술’이라고 한다.

 

 

 

 

 

No.8 Black form paintings    1964

 

많은 사람들이 Rothko 예배당에 앉아 그의 작품을 한없이 들여다보다가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Mark Rothko Chapel

 

                                      Rothko는 ‘명상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다.

그의 작업실에서 본 Seagram Builing을 위한 벽화에 매료되었던 두 사람,

즉 휴스턴의 미술품 수집가와 세인트 토마스 가톨릭 대학교 미술대학장이

1965년 초 Rothko에게 대학교의 예배당을 위한 작품으로

커다란 벽화연작을 25만 달러를 내 놓으며 주문하였다.

Rothko는 신도들이 벽화로 둘러싸이게 되도록 성당 모양과 비슷한 팔각형의 토대로 하고

성당 전면에 자신의 그림을 배치하는 단순하고 소박한 구조고

성당 중앙의 천장으로부터 은은하게 빛이 떨어지도록 했다.

어두운 색조의 세 점의 3면화와 다섯 점의 개별 작품으로 이루어진

14점의 대형 그림이 걸린 예배당.

그 결과 그 예배당 안에는 종교적 상징물 대신

그의 그림이 걸려 있는 독특한 예배당이 세워진 것이다.

 

 

 

 

 

휴스턴 예배당은 Rothko가 자살한지 약 1년 후에 공개 되었다.

휴스턴 예배당 작품의 절반은 단색처리하고 나머지 절반은

윤곽선이 선명한 검은색 사각형을 보여주는데

이는 이전에 작업했던 형식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도였다.

Rothko는 생의 마지막 2년 동안 이 어두운 색채실험을 계속했는데

예배당벽화의 음울한 분위기는

Rothko 말년의 심각한 우울증과 외로움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미술사가 바바라 로즈는 Rothko 예배당을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과 니스 생폴 드 방스의 마티스 성당에 견주며

“이들 성당에서는 그림들이 내부로부터 신비스럽게 빛을 발하고 있는 듯 보인다”라고 했다.

 

성당 봉헌식에는 각계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에서 추기경이 교황대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창조적인 사람들이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려 할 때마다

진정한 예술작품 속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감춰져 있으며,

고집과 용기에 의해서만 화가는 위대해 진다”

세인트 토마스 가톨릭 대학교 미술대학장의 봉헌사이다.

Mark Rothko는 고집과 용기로 영원한 예술의 안식처를 얻은 것이다.

 

 

 

 

 

 

라트비아 태생의 미국 화가.

예일대에서 철학, 심리학, 경제학, 물리학 등

여러 분야를 공부했지만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학자금이 지원되지 않아

가난으로 인해 학업을 포기하고 뉴욕으로 이주하여

독학으로 그림 작업을 하면서 색면 추상의 자신만의 독특한 양식을 만들어 낸다.

 

큐레이터 캐서린 커의 글을 인용하면,

Mark Rothko는 가족에 대한 애착, 불안과 신경쇠약, 우울...

명예에 대한 병적인 집착과 질투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당시 최고의 찬사를 받던 앤디 워홀이나 잭슨 폴록 같은 동시대의 경쟁자들 사이에서

정서적으로 힘들었던 그는 생의 50년간의 힘겨웠던 가난함도 끝난 말년에

최고의 명성과 부도 얻은 그였지만

67세의 원숙한 시기에 결국 자신의 손목을 그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생을 마감했다.

 

그 슬픔의 깊이는 이리도 어두웠을까. 그의 검정은 깊고...깊고...또 깊다.

캔버스의 화면을 모두 검정으로 서걱서걱 채워 넣었을 때의 그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심적 고통 때문에 더 치열하게 매달려서 그렸을 듯한 후기 작품들과 함께

그 많은 양의 작품과 대 걸작을 남긴 한 화가의 삶.

죽음과 무를 향했기에 그의 삶과 죽음은 처절하고 슬프고 어둡게만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가 종교적인 인물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그림 역시 종교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럼에도 Rothko의 작품은 깊고 무언가 가득 찬 충만감 같은 것,

쉽게 범접하지 못할 경건하고 영원한 침묵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숭고하고...그래서 예배당과 어울리는 것 같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필히 가서 그 교회 한 가운데 앉아

그의 영원한 침묵의 깊은 영혼에 빠져 들고 싶다.

 

기도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지금의 이 가득한 마음도 함께....!

 

 

 

2011.11.19.    편집 하늘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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