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수필.기타

[스크랩] 신영복교수별세,감옥으로부터의사색

조용한ㅁ 2016. 1. 29. 00:34

 



약속이 버려지는 시대


[앵커브리핑] '신영복, 매월 마지막 토요일' (04:21)

이별은… 마음 한 켠에 미뤄뒀던 오래된 추억들을 되살리곤 합니다.

지난 주말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신영복 선생의 수필 <청구회 추억>을 문득 떠올렸습니다.

< 청구회 추억 >은 감옥에 들어가기 2년 전인 1966년 스물다섯의 청년 신영복과 당시는 국민학생이라 불리었던 초등학생 또래 꼬마 6명의 이야기입니다.

1966년 봄. 서오릉으로 문학회 소풍을 갔던 젊은 신영복은 허름한 옷차림의 꼬마들을 만나게 됩니다.

꼬마들 역시 왕복 버스회수권 두 장, 일금 10원, 점심밥 해먹을 쌀과 찬을 보자기에 싸서 소풍을 가는 길이었지요.

아이들과 친해진 선생은 사진을 찍고 주소를 적어주고 한 묶음의 진달래꽃을 선물받은 뒤 헤어집니다.

이 짧은 한나절의 사귐은 보름 뒤 배달된 편지 한 통으로 인해 계속 이어지게 되지요.

"요즈음 선생님은 안녕하십니까. 우리가 말하던 클럽 이름 좀 지어주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답장 바람"

신영복 선생과 청구국민학생 여섯 명.. 청구회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 오후 장충체육관 앞이 만남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매달 자신의 힘으로 번 10원씩을 함께 모아 저금했고 거지왕자, 플루타크 영웅전 같은 책도 함께 읽었던 청구회의 추억.

그러나 만남은 선생이 영어의 몸이 되면서 중단돼야만 했습니다.

사형선고를 받고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때 쓴 이 글은 어느 헌병의 도움으로 세상 밖으로 전해졌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혹시 아직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지나 않을까..

염려하던 사형수는 하루 두 장씩 지급되는 재생종이로 된 휴지 위에 한 장 한 장 그 시절을 회상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할 당연한 무엇이었고 나이와 가진 것의 많고 적음. 배움의 차이 같은 세상의 기준은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약속이 버려지는 시대.

사람의 선의가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왜곡되고 각자도생이 운위되는 비정한 시대를 사는 많은 이들은 어쩌면 그래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고 또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먼 훗날 나는 서오릉으로 봄철의 외로운 산책을 하고 싶다. 맑은 진달래 한 송이 가슴에 붙이고 천천히 걸어갔다가 천천히 걸어오고 싶다"

머지않아 봄이 다시 찾아오면 서오릉에는 맑은 진달래꽃이 다시 필 겁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매월 마지막 토요일 장충체육관 앞 눈앞에 선한 그 처마 밑과 층층대 아래에 서서 그와의 약속을 기다릴 것만 같습니다.

오늘(18일)의 앵커브리핑입니다.



 

 

사진으로 돌아본 신영복 교수의 생애

경향신문 | 디지털뉴스팀 | 입력 2016.01.15. 23:52
 

[경향신문] 감옥에서 20년을 보내면서 가진 생각과 소회를 담은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으로 유명한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15일 밤 별세했다. 향년 75세.

신 교수는 시대의 고통을 사색과 진리로 승화시킨 시대의 지성인이었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20년 옥살이를 한 신 교수가 1988년 출소 후 옥중서간집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보여준 반듯한 모습은 같은 동시대 아픔을 겪은 이들의 위안이자 심적인 지지대가 됐다.

27세부터 47세까지, 옥 안에서 살아야 했던 새파란 젊은 시절을 그저 흘려보내는 대신 끝없는 자기 성찰로 채워나간 고인은 ‘87년 체제’와 함께 사회로 나와 정권교체와 외환위기 등으로 이어진 숨가쁜 30년을 지켜봤다.

경향신문 데이터베이스에 남아있는 신 교수의 사진으로 그의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봤다.

 

1995년 8월12일 자신의 한글 서예작품 “서울”을 조순 서울시장에게 전달하고 있는 신영복교수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3년 3월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는 신영복 교수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4년 1월 신영복 교수와 한승헌 변호사가 경향신문 회의실에서 신년대담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신영복 교수가 2006년 8월8일 정년퇴임을 앞두고 고별강의를 하고 있다./김문석 기자

 

 

2006년 9월25일 경향신문 창간 60주년을 기념해 특집 대담을 한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이상훈 기자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가 동료교수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8년 3월 자신이 복역했던 서대문 형무소를 찾은 신영복 교수 /서성일 기자

 

 

2008년 6월 성공회대 교수들의 소통공간인 새천년관 6층 교수휴게실에서 신영복교수(오른쪽)가 동료교수에게 붓글씨를 가르치고 있다 /서성일 기자

 

 

2008년 8월27일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왼쪽)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출간 20주년을 맞아 열린 북콘서트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오른쪽은 ‘청구회 추억’(신영복 지음) 영역자인 조병은 성공회대 교수 /박민규 기자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가 2008년 12월29일 서울 경희궁터를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우철훈 기자

 

 

2009년 6월18일 신영복 성공회대 명예교수, 윤여준 한국지방발전 연구원 이사장,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회의실에서 좌담회를 열기에 앞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서성일 기자

 

 

2011년 2월 방송인 김제동과 만나 담소를 나누는 신영복 교수/권호욱 기자

 

 

2011년 9월9일 신영복교수가 해남 송지초등학교 서정분교 학생들과 축구를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신영복 교수가 2011년 12월2일 김해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한 뒤 문재인 당시 노무현 재단 이사장과 김경수 사무국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정지윤기자

 

 

지난해 4월23일 10년만에 신간 ‘담론’낸 뒤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는 신영복 교수/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디지털뉴스팀>

 

출처 : 학 마 을
글쓴이 : 천마리학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