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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의 신부(the jewish bride)-렘브란트

조용한ㅁ 2016. 4. 16. 14:35
유태인의 신부(the jewish bride)-렘브란트

이 작품은 렘브란트의 만년작품이다. 그의 배필 헨드리케가 1662년에 죽고 홀로 남은 그는 만년을 슬픔과 생활고로 어려움을 겪지만 열정적인 작품제작과 아들 티투스에 관심으로 살아갔다.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 근처의 유태인 지역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들이 겪는 박해에 대한 희생에 특별한 동정을 갖고 있었고 또한 유태인들도 그의 모델이 되어 주었다. 작품에서 보듯 남녀 간의 인간적인 신뢰와 포근함 그리고 인물에 대한 명도가 신비하리만치 안정감을 준다. 아마도 렘브란트는 고독한 삶을 살던 시기에 가슴속에 품고 있었던 안타까움을 표출했다고나 할까. 그림속의 인물은 그의 아들 티투스라는 설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티투스는 1668년에 결혼했고 그 해 사망했다. 


Rembrandt (1606-1669)
The Jewish Bride
1665-67
Rijksmuseum, Amsterdam
 
 
 
렘브란트의 후기 작품 중에서도 많이 알려진 작품으로 애초에 이그림의 제목이 <유태인의 신부>였느냐에 대해서는
이론이 많다. 이 일반화된 제목의 유래는 '유태인의 신부이다. 그녀의 부친이 딸에게 목걸이를 걸어주고 있다.' 라는
해석에 의한 것이다. 물론 여기에 성서(聖書)의 이야기가 깔려 있을 수는 있으나, 언제나 처럼 그 이야기가 서술적으로
그려지고 있지는 않다. 여러모로 보아 이 작품은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야 어떻든 화면 전체에 풍기는 엄숙함, 즉 인간 본연의 사랑의 엄숙함이 배어 있으며, 이를테면 성서
속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과 실제의 인물과의 통합이라는 문제를 이 작품은 어떻게 생각하면 종교적인 차원에서
해결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가 이 작품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이다.
 
모델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죽기 직전 63세 (1665) 렘브란트 (1606-1669)의 아들 타투스의 신부라고도 하고,
이 그림은 성경에 등장하는 이삭과 레베카를 그린 것으로 모델이 화가의 엄마라고도 한다. 
 
그러나 갠적으로
이 시기에 렘브란트는 젊고 아름답고 이해심 넓었던
2번째 아내(사실은 정부였지만) 헨드리케가 죽은 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이다.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어려웠던 시기에 가정부로 찾아온 젊은 헨드리케는
당시의 교회법에 따라 정식으로 결혼도 하지 못한채 세 아이를 출산하게 되고
더불어 전부인의 유일한 자식인 타투스를 헌신적으로 보살펴 원양한 청년으로까지 키워낸 여자이다.
이런 어린 아내를 정식결혼도 못한채 사회적으로 매장까지 당하게 만든
화가는 항상 그녀에 대한 죄의식과 연민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그녀의 사후라도 그녀가 그렇게 원햇던(물론 말을 하지 않았지만..) 
아름다운 결혼식을 화가의 진정과 사랑, 그리고 먼저가 아내를 그리는 애틋한 심정으로
그려낸 그림이 아닐까 한다.
 
남편이 신부의 어깨에 한 손을 얹고 다른 손을 가슴에 부드럽게 얹고서 사랑을 전한다.
신부 역시 신랑의 손에 자기의 손을 살짝 얹고서 조용히 답례하는 이 부부 초상화는 어느 신혼사진보다 더 감명 깊다.
 남자의 왼손이 그를 향해 서 있는 젊음 여인의 어깨에 가있다.
그의 오른손은 그녀의 가슴을 만지고 있다.
그녀는 왼손을 가슴 위에 올려진 남자의 오른손에 대고 있다.
이 부드럽고 고요하며 관능적인 그림의 모델들은 누구일까?
 
이렇게 당시의  렘브란트의 사생활을 조금만 들쳐보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그림을
무슨 종교니 야곱이니, 이삭이니 하며 해석하는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한번 보고 싶다.
당시 렘브란트는 헨드리케와 그렇게도 원했던 결혼을 종교에 의해 막혔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아내를 잃은 늙은 화가의 가슴에 어지간히도 종교을 승화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겠냐고
한번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