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관 중 (china)
우관중(吴冠中) 소개
우관중(吴冠中), 필명:도(荼)- 씀바귀, 독, 불꽃같은 맹렬함.
1919년 장쑤성(江苏) 이싱(宜兴) 농가에서 출생.
1942년 항저우(杭州) 국립예술전문대학 졸업. 국립총칭(重庆)대학 건축과 교수직 역임.
1946년 국비회화유학생 전국 수석으로 선발되어 1947년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유학.
1950년 귀국 후 중앙미술학원 교수직 역임.
1953년 칭화(清华)대학 건축과 부교수직 역임.
1956년 베이징 예술학원 교수직 역임.
1964년 중앙공예미술학원에서 교수직 역임.
1970년 문화대혁명 기간에 허베이(河北) 농촌으로 하방되어 노동.
1973년 베이징으로 돌아온 그는 호텔화창작에 참가.
1978년 중앙공예미술학원에서 “우관중 작품전” 개최.
1979년 중국미술협회상무이사직 역임.
1987년 홍콩예술센터에서 “우관중 회고전” 개최.
1991년 프랑스문화부에서 “프랑스문예 최고훈장” 수여.
1992년 대영박물관에서 최초로 고대문물만 전시한다는 관례를 깨고 화가 우관중을 위한 “우관중-20세기 중국화가”란 타이틀로 전시회 개최. 또한 우관중의 수묵채색 신작인 ‘작은새의 천당’이라는 그림 소장.
1993년 프랑스 파리 싸이니우치 박물관에서 “세계로 나아가는-우관중 유화수묵 스케치전” 개최, “파리시금마장” 수여.
1994년 전국정치협회상임위원회 당선.
1999년 국가문화부에서 “우관중 예절전” 개최.
2000년 프랑스학원 예술아카데미 통신원사 역임. 이는 중국계 예술가로서 최초였으며 개원 이후 약 200년 동안 아시아인이 처음으로 추대되는 쾌거 이룩.
‘우관중 연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1939년 당시 20세였던 우관중은 국립예전에 머물렀었다. 평소 반고흐와 고갱을 흠모해왔던 그는 적·붉은색의 강렬한 색채를 많이 사용했다. 초기에는 “오도차”라는 필명을 사용했으며 후에 서명을 위해 “도”라 수정하게 되었다.
우관중은 미술창작과 미술교육분야에서도 눈부신 업적을 남겼으며 유화 민족화와 중국화의 현대화를 위해서도 헌신했으며 국내외에서 최고의 찬사를 받아왔다. 중국미술관과 전국 10여 개의 대도시에서 개인전을 가졌었다. 뿐만 아니라 싱가폴 국가박물관, 홍콩예술센터, 미국 샌프란시스코 중화문화센터, 영국 버밍엄박물관, 캔사스대학 예술관, 뉴욕주 세인트존박물관과 디트로이트박물관, 대영박물관, 파리시 싸이니우치 박물관 등에서 각각 전시회를 열었다. 또한 50여 종 이상의 개인화집을 출간하였다.
[출처] 우관중 작품집, 탄생기|작성자 아이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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