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류시화
슬픔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안이 환하다
누가 등불 한 점을 켜놓은 듯
노오란 민들레 몇 점 피어 있는 듯
슬픔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민들레밭에
내가 두 팔 벌리고
누워 있다
눈썹 끝에
민들레 풀씨 같은
눈물을 매달고서
눈을 깜박이면 그냥
날아갈 것만 같은
소금별....류시화
소금별에 사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 수 없네
눈물을 흘리면
소금별이 녹아 버리기 때문
소금별 사람들은
눈물을 감추려고 자꾸만
눈을 깜박이네
소금별이 더 많이 반짝이는 건
그 때문이지
굴뚝 속에는 더 이상 굴뚝새가 살지 않는다....류시화
입을 벌리고 잠을 자는 것은
인간뿐
삶이 그만큼 피곤하기 때문이다
굴뚝 속에는 더 이상
굴뚝새가 살지 않는다
보라, 삶을
굴뚝새가 사라진 삶을
모든 것이 사라진 다음에
오직 인간만이 남으리라
대지 위에
입을 벌리고 잠든 인간만이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류시화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
전화를 걸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에게....류시화
당신은 마치 외로운 새 같다
긴 말을 늘어놓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당신은 한겨울의 저수지에 가 보았는가
그곳에는 침묵이 있다.
억새풀 줄기에
마지막 집을 짓는 곤충의 눈에도 침묵이 있다.
그러나 당신의 침묵은 다르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누구도
말할 수 없는 법
누구도 요구할 수 없는 삶
그렇다, 나 또한 갑자기 어떤
깨달음을 얻곤 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정작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라, 당신도 한때 사랑을 했었다.
그때 당신은 머리 속에 불이 났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은 외롭다
당신은 생의 저편에 서 있다.
그 그림자가 지평선을 넘어 전화선을 타고
내 집 지붕 위에 길게 드리워진다..
죽은 벌레를 보며
벌레 보다 못한 인생을 살았다고 나는 말했다....류시화
벌레 한마리가 풀섶에 몸을 웅크린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죽은 시늉을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며칠 뒤 가서 보니 벌레는 정말로 죽어 있었다
작은 바람에도
벌레의 몸이 부서지고 있었다
벌레만도 못한 인생을 나는 살았다
죽은 벌레를 보며
벌레만도 못한 인생을 살았다고
나는 말한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류시화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빈 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눈을 감고
내 안에 앉아
빈 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걸
바라봐야 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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