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카유보트 Gustave Caillebotte <오르막길 >
전문가들은 그림속의 여주인공이 화가와 동거 중이었던 샬로트 베르티에(본명은 안 마리 아장)일 것이라는 심증을 갖고 있다. 바로 이런 심증이 이 그림에 특별한 매력을 보태 준다. 화가 자신이 겪고 수용한 사랑의 방식을 거울처럼 비쳐 내기 때문이다. 어느시대에나 화가, 그것도 최상급 화가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분명 불운은 아니다. 하지만 무능한 데에다 가난하기까지 한 화가의 애인으로서 모델이 된다면 사정은 판이하다. 종종 허영심이 많고 자기 도취가 심한, 시쳇말로 일종의 공주병 증세라도 있는 여인이라면 자신의 모습을 영원히 한폭의 화면 속의 이미지로 새겨 줄 화가를 일시적으로라도 유혹하혀 하지 않을까? 도구나 카유보트처럼 부유하고 재능 있는 화가의 애인으로서 그의 모델이 된 경우라면 그녀의 걸작 속의 여주인공으로 세속적 욕심 이상을 채울 테니까.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그녀의 나이는 열여덞 살이었다. 그녀는 그다지 내세울 만한 집안 출신이 아니었다고 하며, 건강이 좋지 않았던 화가가 사망할때까지 함께 생활했다. 화가는 이 그림이 그려진 때로부터 단 두해를 더 살았다. 그녀에게는 또 다는 축복도 있었다. 화가와 절친한 동료 화가로 여인의 초상화가로서는 애호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르누아르가 친구의 동거녀였던 그녀의 초상을 그려 주었기 때문이다.
1880년대에 프랑스에서는 결혼의 결정권은 여전히 가문의 문제였기 때문에 정식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동거에 들어가는 일이 심심치 않았었다. 우리가 그 이름을 알 만한 화가들 가운데에서도 가문의 반대를 무릎쓰고 동거 생활을 하고 사생아를 낳은 이들이 여럿 있었다. 카유보트는 부친의 스무 살 어린 세 번째 부인과의 결혼으로 얻은 아들이었고 그의 이복형은 파리 주교를 지내기도 했으므로 그 완고한 분위기를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화가 자신은 이복형인 마르시알과 늘 우애 좋게 지냈고 형수의 초상을 그리고 함께 집안과 정원 손질을 즐기곤 했던 가족적인 타입이었다.
그러나 이 그림에서는 그 시대의 분위기와 그의 인격과 또 그의 삶의 그림자라면 그림자가 잔잔하게 출렁인다. 비극적이었던 파리 코뮌의 여파도 가라앉고 그 상처도 점점 아물어 해외로 도피했던 인사들이 속속 귀환하고 공화정도 안정을 되찾고 경제 역시 활기를 되찾아 가던 그때, 화가는 출신도 분명치 않고 거의 알려진 것이 없는 단 한 사람의 여인과 더불어 담담한 일상을 지내면서 또 바로 그렇게 담담한 일상을 재현하는 데로 돌아섰다. 요란한 파티와 논쟁과 애증과 질시, 출세와 몰락이 엇갈리는 파리 사교계를 뒤로하고서, 덧없는 햇살만큼이나 덧없는 사랑의 그림자를 그리면서 말이다. 결국 그는 세속성의 한복판에서 그런 것들을 뛰어넘었다. 세간의 윤리적 잣대가 어찌되었건 간에 그는 자신의 예술속에 자신의 시각과 삶, 그리고 어떤 것도 문제될 것이 없는 사랑에 대한 신념을 그의 성품만큼이나 차분하게 그려 나갔다. 마구 끌어 안고 좀 더 가깝게 밀착되길 바라는 방식이 아니라, 이 그림에서처럼 적당한 거리를 둠으로써 그는 더 큰 사랑을 키웠을까?
사랑의 이미지 中에서- 정진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