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모가 빼어나고, 재능도 뛰어나며, 인간적인 매력으로 뭇사람들로부터 상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모든 여성들의 꿈이요 바램일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최고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인 사포(기원전 610년경-580년경)가 그런 여성이었다.
그 이름을 Sappho 또는 Psappho로 쓰는 사포는 그리스 레스보스 섬의 미틸레네
태생이다. 명망 있는 귀족 집안 출신인 그녀는 역시 안드로스 섬 출신의 부유한 남자 케르콜라스와 결혼했다. 사포가 한때 다른 귀족들과 더불어
레스보스 섬에서 추방돼 시칠리아에서 살았다는 기록이 사실일 것으로 여기지지만, 어쨌든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자신의 고향에서 시를 지으며
지냈다.
무척 아름다운 시어로 누대에 걸쳐 칭송을 받았던 사포. 그녀는 아르킬로쿠스와 알카이우스를 제외하면 고대 그리스 시인 중 독자로 하여금 사적인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데 가장 뛰어났던 시인으로 꼽힌다. 그녀의 시어는 문학적이라기보다는 세속적이었고, 시구는 간결하고도 직접적이면서 회화적이었다. 마치 저 하늘 높이 떠서 자신의 사적인 환희와 고통을 비판적으로 내려다보는 것 같은 차분함이 엿보이지만, 그 차분함 속에서도 원초적인 감정의 힘을 결코 잃지 않는 탁월한 재능을 지녔다고 평가된다. 방대한 작품을 쓴 것으로 추정되나, 완전한 형태로 지금까지 전해지는 시는 28행 짜리 한 편뿐이고, 모두 합해서 700여 행에 이르는 인용이나 단편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처럼 레즈비언으로 그려진 사포는 그 시적 재능에 대한 찬미와 더불어 회화에서 매우 낭만적인 미인상으로 표현되곤 했다. 이를테면 수금을 든 비너스의 이미지 같은 것이 그것이다. 특히 누드의 경우 수금이 옆에 있어서 그녀인지 알 수 있지 그 모습 자체는 여느 비너스나 님프와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사포 주제는 이런 낭만적인 미인상보다 투신자살하는 그녀의 모습이다. 절벽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는 바로 그 파괴적인 결말로 자신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신화로 승격시켰다. 어떤 예술가라도 뜨거운 심장으로 형상화하지 않을 수 없는 주제로 삶을 마감한 것이다.
사포가 레우카스 절벽의 ‘연인들의 투신 바위(Lover's leap)’ 에서 뛰어내린 것은 그렇게 하면 죽지도 않고 상사병도 낫는다는 속설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포는 미틸레네의 선원 파온을 열렬히 사랑했으나 끝내 그 사랑을 이룰 수 없어 투신을 감행했다는 것인데, 이 이야기는 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사포는 상사병의 감정을 잘 알고 있었다. 다음 시구에 그 감정이 잘 나타나 있다.
사랑하는 어머니, 저는
더 이상 베 짜기를 할 수 없어요
차라리 아프로디테를
탓하세요
그녀처럼 부드럽게
저 소년에 대한 사랑으로 나를 거의 죽게 만들었으니까요
(사포, ‘아무 소용이 없어요’)
25.98 x 48.03 inches [66 x 122 cm], Private collection>
<사포와 알카이우스>는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시절 영국 화단을 풍미했던 대가
앨머-테디머가 그린 그림이다. 지중해의 푸른 물결과 소나무가 시원한 배경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당대 최고의 시인인 사포와 알카이우스가 서로 시를
교환하고 있다. 이 장면은 단순히 화가의 상상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실제로 두 사람은 이처럼 즐겨 시를 나눴다고 한다. 사포의 주위에는
아리땁고 순수해 보이는 소녀들이 앉아 있는데, 이는 레즈비언으로서 사포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한 화가의 연출이라 하겠다. 강독대 위에 턱을 괸
사포는 알카이우스의 시가 얼마나 감동적인지 깊이 매료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클리스모스라고 하는 고대 그리스 의자에 앉아 있는 알카이우스는
수금, 엄밀히 말해 키타라를 연주하고 있는데, 그 악기에는 음악의 신인 아폴로와 그의 누이 아르테미스가 조각돼 있다. 시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이
부드러운 노래처럼 다가오는 그림이다. 그 정점에 꽃처럼 피어 있는 사포의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내용 출처 : http://gallery.azoomma.com/hamsville/
<Gustave Moreau (1826-1898), Sappho, 1871-72
watercolor on
paper, Victoria and Albert Museum, London>
아무도 원망하지 않으리라
파온이여
멜리타여
내가 죽는 것은 생에 지친 까닭이다
더이상 살 의욕을 잃었고 이런 무의욕한 상태에선 한 줄의 시도 나오지 않는 까닭이다
녹슨 하프와 갈라진 심장을 내던지고 피안으로
나의 영혼의 고향에 휴식하러 돌아가고 싶어진 것이다
너희와 나는 다른 고향의 사람이다
그것이 우리의 죄의 전부이다
따라서 나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잘 있거라 (사포의 유언)
그녀는 이렇게 외롭고 먼길을 혼자 떠났다.
삶의 시간을 정해놓았던 신의 섭리는 그녀에게 더없이 갑갑한 일일뿐이었다.
훌훌...
처절했던 영혼의 방황을 뒤로한 채 어딘가에서 날고 있으리...
그녀의 흔적은 이렇게 남아있는 자들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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