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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매는 할매되고/허 홍구

조용한ㅁ 2008. 3. 19. 11:20

 

아지매는 할매되고/허홍구



염매시장
단골술집에서
입담 좋은 선배와 술을 마실 때였다


막걸리 한 주전자 더 시키면 안주 떨어지고
안주 하나 더 시키면 술 떨어지고
이것저것 다 시키다보면 돈 떨어질 테고
그래서 얼굴이 곰보인 주모에게 선배가 수작을 부린다
"아지매, 아지매 서비스 안주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주모가 뭐 그냥 주모가 되었겠는가
묵 한 사발하고 김치 깍두기를 놓으면서 하는 말
"안주 안주고 잡아먹히는 게 더 낫지만
나 같은 사람을 잡아 먹을라카는 그게 고마워서
오늘 술값은 안 받아도 좋다" 하고 얼굴을 붉혔다


십수 년이 지난 후 다시 그 집을 찾았다
아줌마 집은 할매집으로 바뀌었고
우린 그때의 농담을 다시 늘어놓았다
아지매는 할매되어 안타깝다는 듯이
"지랄한다 묵을라면 진작 묵지"


늑대야 늑대야 / 허홍구 

 


남자는 모두 도둑놈, 늑대라며
늘 경계를 하던 동창생 권여사로부터
느닷없이 소주 한잔 하자는 전화가 왔다

 

"어이 권여사 이젠 늑대가 안 무섭다 이거지"
"흥 이빨빠진 늑대는 이미 늑대가 아니라던데"
"누가 이빨이 빠져 아직 나는 늑대야"
"늑대라 해도 이젠 무섭지 않아
나는 이제 먹이감이 되지 못하거든"

 

이제는 더 이상 먹이감이 되지 못해
늑대가 무섭지 않다는 권여사와
아직도 늑대라며 큰소리치던 내가
늦은 밤까지 거나하게 취했지만
우리 아무런 사고 없이 헤어졌다

 

그날 권여사를 그냥 집으로 돌려보낸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아- 나는 아직도 늑대가 분명하다 

 

 

 

/ 허홍구 

 


꽃망울 터지는 봄날

 

"선생님은 참 재밌고 젊어 보여요."

내 팔에 매달리는 꽃이 있다

 

스물 한 살 젊디젊은 여인

 

묵은 가지 겨드랑이 가렵더니

새 순  돋는다.

 

아무래도 이번 봄에는

꽃밭에 넘어 질 것 같다

 

꼭, 넘어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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