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스크랩] 쓸쓸하고 더딘 저녁....황동규

조용한ㅁ 2008. 4. 8. 10:56

이제 컴퓨터 쓰레기통 비우듯

추억통 비울때가 되었지만,

추억 어느 길목에서고

나보다 더 아끼는 사람 만나면 퍼뜩 정신 들곤 하던

슈베르트나 고흐, 그들의 젊은 이마를

죽음의 탈을 쓴 사자(使者)가 와서 어루만질 때

(저 뻐개진 입 가득 붉은 웃음)

그들은 왜 비명을 지르지 않았을까?

밀밭이 타오르고

밀밭 한가운데로 달려오는 마차가 타오르고

사람들의 성대(聲帶)가 타오를 때

그들은 왜 신음소리에 몸을 내주거나

가슴에 피스톨 과녁을 그렸을까?

'왜 그대들은 이 세상에서 재빨리 빠져나가고 싶어

했는가?

시장 인심이 사납던가,

악보나 캔버스가 너무 비좁던가?

아니면 쓸쓸하고 더딘 지척 빗소리가

먼 땅 끝 비처럼 들리는 저녁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

왔던가?'


출처 : govi네 별채
글쓴이 : null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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