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글/시

장구목에서 이형권

조용한ㅁ 2008. 6. 29. 01:09
 


    
    장구목에서
    이형권
    검은 강물 위에 피는 붉은 매화꽃
    나는 해마다 그 꽃을 보기 위해 
    장구목에 간다
    꽃이 피기를 기다렸다가
    흙빛으로 어두워져버린 강물과
    잔망스러운 계집아이처럼 
    붉어지는 꽃
    그런 날 밤 강물소리는
    수백년을 그러하였듯이
    요강바위 돌섶길에서 멈쳐서
    길고긴 탄성곡을 늘어놓는다
    물 비린내가 배인
    허름한 장구목 가든 빈방에 앉아서
    수줍게 웃는 시골 아낙
    정순씨가 밀봉해둔 꽃술을 뜯어내 
    강물에게 한 잔 건네고
    두 잔을 내가 마신다.
    강물이여 알겠느냐
    다시 핀 매화꽃이여 
    어스름 저녁답에 찾아온
    길손의 마음을 알겠는가 
    뒤척이는 어둠 너머
    매화꽃 향기, 가슴에 번지는 밤
    설운 것들이 몰려와 
    소용돌이치는 장구목 강변에 앉아
    돌 항아리처럼 깊어진 
    세월의 상처를 바라보나니
    세상의 모든 것들이 저마다의 
    외로움을 간직한 채
    홀로 저물어 어두어져 가는 밤
    울지마라 강물이여
    캄캄한 어둠 속에서
    저렇게 붉은 꽃이 피어 있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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