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파리의 환락가를 누비던 난쟁이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앙리 마리 레이몽 툴루즈 로트랙 이었다.
그의 부친은 아델 드 보크스 성을 지배하는 명문가의 사촌이었으며 근친혼으로 태어난 로트랙은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
또한 사고로 부러진 다리는 회복되지 않아 15세 때 부터152cm로 생활하였다 .
그후 귀족의 난쟁이 로트랙은 성을 떠나 파리의 몽마르트에 자리잡았다.
그는 카바레 물랑루즈(Moulin-rouge)에서 술을 마시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환락가의 단면을 표현한 독특한 캐릭터의 작품은 인기를 얻으며서 석판화 기법을발전시켜서 대량으로 컬러 포스터를 제작하면서 몽마르트의 인기 작가로서 명성을 누렸다.
[쾌락의 여왕] 1892년 석판화로 제작.
그의 주위에는 친구가 끊이지 않았다.
그와 교우하였던 "반 고흐"도 로트랙과 가까운 사이였으며 고흐가 아를르로 떠나기 전 몽마르트에서 지냈는데 부유했던 로트랙은 가난한 고흐를 도와주었다.
[빈센트 반 고흐] 1887
로트랙은 난쟁이가 되었다는 절망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로트랙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창녀촌에서 주로 밤을 보내는데 창녀들은 로트랙을 손님이라기 보다는 친구로서 받아들렸다.
로트랙을 받아준 여자는 그녀들 뿐이었다.
연애를 하기에는 왜소한 몸을 가진 그는 술에 취해 그녀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그녀들을 위로했고 또 위로 받았다.
로트랙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드디어 내 키에 맞는 여자들을 발견했다."
[물랑루즈에서] 1892
[라 모르(Rat Mort)] 1899
로트랙은 물랑루즈의 여자들을 그린 작품을 많이 남겼는데 여자들은 그의 그림을 보고 "대체 왜 여자들을 이렇게 추하게 그리느냐?"는 질문에 로트랙은 이렇게 답했다.
"그녀들이 추하기 때문이다"
로트랙은 섹스를 매개로 남자의 주머니에서 돈을 긁어가는 그녀들을 조롱하고 비웃었다.
그렇게 하는것이 로트랙의 사랑 방법이었다.
로트랙은 창녀와 사랑을 나누면서 사랑을 미화 하지 않았다.
그의 작품 속에는 창녀들의 일상이 무심하게 드러난다.
[스타킹을 올리는 여자] 1894
[성병검사] 1894
스타킹을 신는 모습과 성병검사를 받기 위해 줄서서 있는 모습 그리고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춤추는 모습 등..
그녀들의 일상을 담았다.
[La Clownesse assise] 1896
아래 작품은 자신의 여동생 프로마주의 팔짱을 끼고 물랑루즈로 들어오는 댄서 라 굴뤼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물랑루즈-라 굴뤼 1892년)
[La Goulue Arriving at the Moulin Rouge with Two Women]1892
알사스 출신의 시골뜨기 라 굴뤼는 파리로 와서 캉캉춤을 변형시킨 독특한 춤으로 인기를 끌기까지 고생스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로트랙은 그녀의 전성기부터 은퇴 이후까지 그녀를 모델로 수십점의 작품과 습작을 제작하였다.
the-kiss
그는 언제나 친구 또는 창녀들과 함께 하였으며 혼자 있는 것 두려워 하였다.
술은 외로움을 달래는 약이며 생활의 일부였다.
진과 압생트 브랜디와 위스키 등을 혼합하여 마시던 로트랙은 서른 다섯살의 나이에 알콜중독으로 정신병원에 수감되었으며 퇴원후에도 계속 술을 마셨다.
결국 그는 서른일곱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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