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플랫폼에서(on the platform), 1942
빈 가방 / 강연호
마지막으로 빈 가방을 버리기 전에 그는 무엇을 버렸을까 그가 버린 게 무엇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빈 가방을 버리기 전에 먼저 버린 것이 있을 것이다 증언에 의하면 언제나 가득 차고 무거웠던 그의 가방은 어느 날부터인가 조금씩 비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가 버린 것들 중에는 물론 그가 버리고 싶어서 버린 것도 있겠지만 세상에는 버리고 싶지 않아도 버려야만 하는 것이 있고 삶이란 또한 꼼꼼히 챙겨도 조금씩 새어나가게 마련이므로 불룩하던 그의 가방은 점점 가벼워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가방이 가벼워질수록 그의 어깨는 웬일인지 자꾸 쳐지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마침내 더이상 버릴 것 없어 가방이 텅 비었을 때 그는 결국 마지막으로 빈 가방을 버렸을 것이다 아니 지금 남은 것은 빈 가방이고 그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빈 가방 대신 그 자신을 버린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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